최근 몇 년 사이 이뤄진 인공지능(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전 세계 산업군 전반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예부터 AI 기술을 들여다봤던 게임업계도 앞다퉈 AI 기술 연구 및 관련 사업을 확장하며 레벨 업(Level Up)을 노리는 모습이다. AI를 이용해 업무 효율화를 꾀하는 것에서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처럼 생각하는 NPC(논플레이어블캐릭터) 개발 등 혁신을 꿈꾸고 있다. 게임업계의 AI 동행기를 디지털데일리가 소개한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문대찬기자] 2017년 출범한 반지하게임즈는 10명 남짓의 직원을 거느린 소규모 인디 게임사다. 게이머들에겐 ‘서울2033’, ‘수확의정석’ 등 작품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모바일 플랫폼으로만 게임을 출시해 왔던 이들은 현재 창립 처음으로 PC 게임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소재로 한 ‘페이크북’이 그것이다. 페이크북은 가상 SNS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사건 전말을 파헤치는 추리 어드벤처 게임이다.
페이크북은 오랜 기간 기획 단계에만 머물렀다가 올해 초부터 본격 개발이 진행됐다. 생성 AI(인공지능) 기술 보급이 활발해지면서, 비로소 준비가 됐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최근 마포구 소재 사옥에서 만난 반지하게임즈 이유원 대표는 “SNS를 주제로 한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었지만 어려움이 적잖았다”며 “SNS 계정이 자연스레 보여야 하는데, 실제 사진을 쓰기엔 양도 무척 많아야 하는 한계가 있었다. 계정을 많이 생성하는 부분에도 고민이 많아서 기획 아이디어로만 남겨뒀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서울2033: 방공호(2020)’를 개발하면서 AI를 통한 텍스트나 이미지 생성 등에 조금 익숙해졌다. 개발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올해 돌입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페이크북 계정에 사용되는 인물 사진은 몇몇 지원자의 실물 사진을 제외하곤 ‘미드저니’와 ‘스테이블디퓨전’ 등 이미지 생성 AI 도구로 대부분 제작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작업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많은 계정을 몰입도 있게 만들어야 하는 부분이 인디 개발사로선 지나치게 많은 소스를 필요로 한다. 실사 사진에 특별한 아트톤을 입히거나, 우리가 제작한 일러스트를 기계적으로 바꿀 수 있게끔 해야 하는데, 이 경우 몰입감이 떨어졌다”고 밝혔다.
이어 “2D 형태의 아트를 쓰자니 생동감이 부족했다. 어떻게든 실물 사진을 수집해 적용한다고 해도 그 양이 지나치게 적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 대표는 AI에 대한 인식 변화도 페이크북 개발에 힘을 싣게 된 배경이라고 전했다. 그는 “개발자와 게이머가 AI 작업물을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이 왔다. AI로 ‘이런 것도 할 수 있다’ 보다는, 몰입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AI가 사용됐고 그런 게임도 가능하다는 걸 이해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편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게임 내 사용되는 대부분의 텍스트는 개발진이 직접 작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AI가 학습해 만들어 내는 것보다는 아직까지 현실의 이야기가 더 적나라하더라”고 웃으면서 “이런저런 SNS를 탐방하면서 재밌는 소스들을 직접 찾아내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생성 AI 도구를 통해 업무 효율화를 이뤄냈지만, 이 대표는 도리어 디렉팅의 중요성을 실감한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생동감 있고 퀄리티 좋은 사진을 만들어 내려면 연출이나 구도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야 한다. 전문 직군의 미적 감각이 많은 도움이 됐다”면서 “AI가 단순 반복 작업을 도와주는 데 효과적이지만, 이로 인해 창의력을 발산할 새로운 길도 열리게 된다. 앞으론 생성 AI 자체보다는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이 대표는 “지금도 곳곳에서 GPT를 활용한 방탈출 게임 등을 볼 수 있는데, 막상 좋은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기획 의도에 따라 재미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 설정 등이 중요하다. 향후 AI가 어디까지 발달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게임의 재미 포인트와 트렌드를 파악하고 있는 디렉터나 기획자 역량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개발사들이 ‘게임체인저’로 꼽는 인간과 같은 NPC(논플레이어블캐릭터)에 대해서도 “단순히 AI가 세계관에 기반한 아무 말을 하기보다는, 기획자가 어느 정도 길을 만들어 두고 숨겨진 트릭 등을 유저에게 제공해야 비로소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 대표는 나아가, 생성 AI가 기술적인 문제로 세상에 나오지 못했던 게임들을 “잠금 해제”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완전히 새로운 게 열릴 것이다. 생성 AI가 가진 강점과 특성에서 출발하는 아이디어들이 나올 것”이라면서 “페이크북 역시 시대적 변화가 잠금 해제 조건을 충족해 탄생한 게임이라고 봐야 한다. 상상만 했던 재미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페이크북은 6월 스팀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대표는 끝으로 “AI로 개발했지만 관련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보다는, 이런 게임도 나올 수 있게 됐구나 정도로 봐주시면 좋겠다. 게임이 가진 독특한 매력을 즐겨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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