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이뤄진 인공지능(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전 세계 산업군 전반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예부터 AI 기술을 들여다봤던 게임업계도 앞다퉈 AI 기술 연구 및 관련 사업을 확장하며 레벨 업(Level Up)을 노리는 모습이다. AI를 이용해 업무 효율화를 꾀하는 것에서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처럼 생각하는 NPC(논플레이어블캐릭터) 개발 등 혁신을 꿈꾸고 있다. 게임업계의 AI 동행기를 디지털데일리가 소개한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문대찬기자] 넷마블은 지난 2014년부터 인공지능(AI) 기술 연구를 시작했다. 게임업계는 물론 IT 업계를 통틀어서도 선제적으로 AI 기술 영역에 발을 들인 것이다.
넷마블이 2018년 출범한 AI 센터 내 부서명을 과거 신항로를 개척한 인물인 ‘콜럼버스’와 ‘마젤란’의 이름을 빌려 붙인 이유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내겠다는 의지다.
넷마블은 AI 기술을 차세대 성장의 주요 동력으로 낙점하고 ‘사람과 함께 노는 지능적인 AI’를 목표로 기술 개발에 힘써왔다. 생성형 AI부터 빅데이터 분석 AI까지 다양한 분야의 기술을 연구하며 논문 발표, 특허 출원, 게임 프로젝트 활용 등 주목할 만한 성과도 내고 있다.
넷마블은 올해 초 AI 센터에 변화를 줬다. 그간 개별적으로 게임 관련 데이터를 다뤄왔던 빅데이터실을 새로이 합류시켰다. AI 기술로 뽑아낸 데이터를 게임 운영에 활용하는 콜럼버스, AI 기술을 개발하고 게임에 적용하는 마젤란실과의 시너지를 꾀하기 위함이다.
2일 서울 구로 지타워에서 만난 넷마블 오인수 AI 센터장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더 많은 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빅데이터실이 합류하면서 데이터부터 시작해 최종 AI 모델까지 볼 수 있는 보다 큰 규모의 조직으로 개편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직 혁신을 이룰 수 있는 기술을 AI에서 찾는 중이다. 해당 기술을 기반해 넷마블 사업의 본질인 게임에 기여하는 것을 AI 센터 미션이라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넷마블 게임 AI 핵심은 게임의 완성도 및 이용자의 재미 요인 극대화다. 마젤란실은 생성형 AI 기술과 강화학습 기반 AI 플레이어 기술, AI 번역 기능 등을 개발해 게임에 적용 중이다.
오 센터장은 “게임에서 밸런싱은 굉장히 중요하다. 기존에는 감에 의존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는 작업이 AI 기술을 활용하면 빠르고 정확해진다. 일종의 강화 플레이 봇(bot)을 만들어서 직접 게임을 시키고, 이를 통해 게임 균형을 체크하는 방식이다”라고 설명했다.
게임 플레이를 음성으로 가능하게 하는 음성 명령 기술도 마젤란실의 작품이다. 지난 2020년 5월 ‘A3: 스틸얼라이브’에 적용한 음성 AI 시스템 ‘모니카’가 대표적이다. 게임 실행 후 이용자가 “메인 퀘스트를 시작해달라”고 요청하면 퀘스트가 자동으로 실행되는 식이다.
마젤란실은 최근에는 음성 합성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게임 개발 과정의 효율성 증대는 물론, 게임 음성을 다양화하거나 감정을 조절하는 등 게임 퀄리티 증대에 기여할 목적이다.
콜럼버스실은 매크로나 작업장 등 ‘어뷰징(불법프로그램 등 허용되지 않은 행위로 부당 이득을 취하는 것)’을 감지하는 AI 기술을 활용, 보다 쾌적한 게임 플레이 환경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게임 내 이용자 생애구간(이용자 유입부터 이탈까지)에 대한 최적의 분석과 매니지먼트를 통해 게임 PLC(제품 수명주기)를 개선하는 데 목표를 둔다.
오 센터장은 “콜럼버스실은 어뷰징이나 패치 후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 등을 탐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AI로 수집한 데이터를 이용해 이용자가 어려움을 겪는 특정 스테이지 허들을 낮춰 게임 경험을 높이거나, 게임 시장 경제를 분석해 재화 소비량 등을 조절하는 등 게임의 사업‧운영적 관리에 활용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에는 매크로를 정확하게 분간하기 힘든 어려움이 있었는데, AI 기술을 통해서는 관련 탐지를 보다 정확하게 해낼 수 있다. 게임 재미를 해치는 작업장을 빠르게 즉각적으로 제거해 이용자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고 부연했다.
오 센터장은 최근 합류한 빅데이터실과 콜럼버스실의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 그는 “빅데이터실은 일종의 유저 로그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일을 해왔다”며 “이번 조직 개편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하는 과정을 속도있고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오 센터장은 넷마블 AI 조직의 강점은 회사의 방대한 게임 포트폴리오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른 게임사에 비해 서비스하는 게임 장르가 굉장히 많다. 해외 매출 비중도 높아 해당 지역 데이터도 깊게 들여다볼 수 있다”면서 “AI 신기술이 도입됐을 때 활용될 수 있는 사례를 훨씬 더 많이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밝혔다.
조직 내 게임 개발자 출신 인력이 적잖은 점도 차별 지점이다. 오 센터장만 해도 야구 게임 ‘마구마구’ 등을 담당한 개발자다. 오 센터장은 “개발 경험을 한 인력들이 꽤 있기 때문에 게임 활용이나 운영에 필요한 요소들에 대해 더 깊은 고민과 연구가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그는 “AI를 활용한 게임 콘텐츠나 밸런싱 등은 게임을 잘 알아야만 가능한 부분들이 많다. 분석 과정에선 게임 도메인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한다”며 “AI 기술 외에도 게임 개발 및 운영 경험이 있는 인력을 더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게 강점”이라고 부연했다.
최근 국내외 게임사는 개발 리소스를 제공하는 생성 AI를 업무에 적극 도입하고 있다. 자사가 개발한 창작 도구를 제공하거나, 경쟁력 있는 생성 AI 프로그램을 직원들에게 보급하는 작업에 한창이다. 업무 효율화를 꾀하고 생산성을 증대한다는 심산이다.
넷마블은 내부 클라우드를 구축해 원한다면 얼마든지 생성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오 센터장에 따르면 현재까지는 AI 기술에 거부감이 적은 개발자나 스튜디오가 주로 사용하는 단계다. 일러스트를 만들거나 아이템 이름을 짓는 등 다방면으로 활용되고 있다.
오 센터장은 AI 기술로 인해 생산성과 효율성 증대뿐만 아니라, 업무에서의 혁신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존과 다른 방향으로 작업을 하면서 업무를 사고하는 형태도 달라질 것이라는 의미다. 그는 “AI를 활용하다 보면 데이터를 다루는 법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생각의 틀을 바꾸는 기술이 하나씩 도입이 되면서 다른 형태로 업무를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 센터장은 “예를 들어 밸런싱 업무를 할 때 기존에는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지점을 직접 하나씩 찾아야 했다면 AI 데이터를 활용하면 대략적인 평균 지점을 잡는 게 훨씬 수월하다”며 “실제 최근엔 신규 캐릭터 밸런스 문제가 굉장히 줄었다. 기획 단계부터 데이터를 통해 미리 결과물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되면서 업무에 임하는 관점이 바뀌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넷마블은 올 상반기부터 그간의 연구와 고민들을 본격 풀어낼 계획이다. 오는 24일 출시되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아스달연대기: 세개의세력(이하 아스달연대기)’에는 AI 검색기 ‘지식의서’가 도입된다. 이용자는 이를 통해 게임 정보나 공약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 센터장은 “언어모델 기반의 검색기를 도입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키워드가 정확하지 않더라도 게임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기 쉽게 만들었다. 아스달연대기에서의 평가가 좋으면 ‘나혼자만레벨업’, ‘레이븐2’ 등에도 도입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넷마블은 이용자와 함께 게임을 플레이하는 AI도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고 있다. 관련 기술은 수준급이다. 넷마블 자회사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가 공개한 가상 아이돌 ‘메이브’가 좋은 예다. AI 센터는 언어모델을 활용한 음성 기술을 이용해 메이브 제작 과정에 참여했다.
다만 고민거리도 적지 않다. 이용자와 자유로운 대화를 하기까지는 기술적으로 보완할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실제, 앞서 공개된 메이브와의 텍스트 대화 프로그램인 ‘챗시우’는 맥락과 동떨어지는 이야기를 하는 등 다소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오 센터장은 “음성이나 애니메이션과 관련한 것은 당장 사용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의 기술력은 가지고 있다”면서도 “아직은 응답속도나 정확도 등 기술적으로 미비한 점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NPC(논플레이어블캐릭터)의 지적 사고 수준의 적정선도 고민해야 될 지점이라고 짚었다. 오 센터장은 “NPC가 너무 멍청하기 때문에 생성 AI를 활용한 똑똑한 NPC를 찾는 것인데, 얼마만큼 똑똑해져야 하는가가 애매한 부분이다. NPC의 사고가 자유로워져 종국에는 뜬금없이 게임과 관계없는 말을 하는 순간 흥이 다 깨져버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넷마블은 시중의 AI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한편, 게임에 자체 활용할 수 있는 소형 AI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선 이를 B2B(기업 대 기업) 사업으로 확장할 계획도 있다.
오 센터장은 “실전 활용을 중심으로 AI를 연구하다 보니 사업적인 부분에서 강점이 있다고 본다”면서도 “지금은 상품을 더욱 솔리드 하게 만들어야 될 때라고 본다. 향후 상품화가 더 고도화되면 B2B를 추진하는 전략을 짜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 센터장은 현재 산업군 전반의 AI 전략이 과도기에 접어들었다면서, 하반기부터는 뚜렷한 방향성과 더불어 각사 전략의 흥망 여부가 판가름 될 것이라고 관측하기도 했다.
그는 “AI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증명의 시기가 오고 있는 것 같다”며 “도입 계획 중인 AI 검색기는 타사 API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나중엔 우리의 방식보다는 자체적으로 언어 모델을 개발한 게임사 방향이 타당하다는 판단이 설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 센터장은 “지금 센터에서 개발하고 있는 음성 AI도 2018년 내가 처음 셋업한 과제다. 당시엔 음성 기술에 대한 수요가 없던 시기였다. 그러나 꾸준히 끌고 왔기 때문에 이 정도 완성도를 갖추게 됐다. 이러한 지점들이 앞으로 계속 나올 것이다”라고 전했다.
오 센터장은 넷마블 AI 센터의 존재 의의를 ‘기존 기술로는 만들 수 없는 콘텐츠 제작’이라고 짚었다. AI 기술이 게임의 족쇄를 풀고 여러 가능성을 불러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가 게임 개발을 내려놓고 생소한 AI 기술 분야로 뛰어든 이유이기도 하다.
오 센터장은 마구마구 개발 당시, 특정 이용자 플레이 패턴을 고스란히 재현한 AI에 몇 번이고 도전할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했다. 결국 AI 센터에서 연구를 거듭한 끝에 2021년 ‘마구마구모바일’에 해당 콘텐츠인 ‘챔피언로드’를 추가했다.
그는 “꿈만 꿨던 생각을 7~8년 뒤에 실현한 거다. 일종의 함께 게임하는 AI라고도 볼 수 있겠다. 기술적인 한계로 만들지 못했던 콘텐츠들이 앞으로는 속속 등장할 것”이라며 “AI 탐지 기술만 해도 보안 이슈나 해킹 이슈를 해결해 게임 재미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오 센터장은 나아가 회사 내 AI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데도 기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마구마구에 해당 콘텐츠를 도입할 때 개발진을 설득하는 데만 많은 시간이 걸렸다. AI를 잘 활용하려면 마음의 틀부터 바꾸는 등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AI 센터가 기술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론 개발 문화의 변화에도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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