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이뤄진 인공지능(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전 세계 산업군 전반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예부터 AI 기술을 들여다봤던 게임업계도 앞다퉈 AI 기술 연구 및 관련 사업을 확장하며 레벨 업(Level Up)을 노리는 모습이다. AI를 이용해 업무 효율화를 꾀하는 것에서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처럼 생각하는 NPC(논플레이어블캐릭터) 개발 등 혁신을 꿈꾸고 있다. 게임업계의 AI 동행기를 디지털데일리가 소개한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문대찬기자] 로블록스(Roblox)는 세계적인 메타버스 게임(체험) 플랫폼이다. 창작 도구를 이용해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거나, 다양한 게임을 즐기고 활동하는 등 가상 공간에 마련된 수많은 놀잇감을 즐길 수 있다. 로블록스 내 등록된 체험만 5000만개 이상이다.
엔데믹에 접어든 뒤 메타버스 생태계가 침체에 빠진 가운데서도 로블록스는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 중이다. 이용자수가 꾸준히 상승해 월간활성화이용자수(MAU)는 약 2억1600만명, 일일활성화이용자수(DAU)는 같은해 약 7200만명에 이른다.
로블록스 이용자의 58%가 16세 이하일 정도로, 미래 성장성과 잠재력도 높은 편이다. 국내에서도 2월 기준 MAU가 200만명을 돌파하는 등 Z세대의 가상 공간 놀이터가 됐다.
로블록스는 현재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도입하면서 타 메타버스 플랫폼과 초격차를 노리고 있다.
이러한 행보 중 하나가 지난달초 도입한 자동 채팅 번역 기능이다. 자체 개발한 AI 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탄생한 해당 기능은 한국어를 포함해 현재 로블록스가 지원하는 16개 언어로 사용자가 주고받는 채팅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번역한다.
한국인 사용자가 한국어로 채팅 메시지를 입력하면 영어 이용자에겐 해당 메시지가 영어로 보인다. 독일어를 구사하는 사용자는 독일어로 메시지를 읽고 응답할 수 있는 식이다. 로블록스는 언어장벽을 허물고 진정한 세계인의 놀이터로 거듭나겠단 심산이다.
젠 팡 로블록스 인터내셔널 부문 총괄은 최근 <디지털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이미 플랫폼 내 정적인 콘텐츠 번역에 AI 기능을 활용하고 있었는데, 해당 기능을 보다 폭넓게 확대하고자 했다”면서 “로블록스는 친구들과 만나고, 놀고, 이야기할 수 있는 소셜 공간으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 번역 품질을 개선할 수 있는 다양한 AI 활용 방안을 고려하는 과정에서 주된 소통 방식인 텍스트 채팅이 자연스레 첫 적용 대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젠 팡 총괄은 실시간 상호작용을 번역하는 것은 기존의 정적인 콘텐츠를 번역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작업으로,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대화에 지연이 없도록 번역 속도를 끌어 올려야 하는 데다, 수백만개의 가상 환경 규모도 부담이었다.
젠 팡 총괄은 “이 정도 규모와 속도 측면에서 사람이 번역하는 것은 현실적인 선택지가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기존의 기계 번역 옵션 역시 최적의 솔루션이 아니었다. 상업용 번역 API가 인식할 수 없는 플랫폼 고유의 표현과 약어도 많았다”면서 “엄청난 속도와 정확성을 갖춘 상황 인식 대형 언어모델을 자체적으로 구축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로블록스 번역 기능의 강점으로 지연 시간이 100밀리초에 불과한 빠른 속도와 문맥 인식 정확도를 꼽았다. 특히 로블록스에서 자주 사용되는 고유 언어를 인식해 플랫폼 내 소통에 최적화된 기능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모델 학습의 기초가 되는 AI 데이터 세트는 플랫폼에서 이뤄지는 텍스트 채팅을 기반으로 한다”며 “로블록스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소통이 번역된 느낌 없이 원어민이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다만 어색하게 번역이 되는 문제 등 개선해야 할 점도 있다. 젠 팡 총괄은 기능을 지속 보완해나갈 계획이라면서 “로블록스 모델은 학습 기능을 탑재하고 있어 번역의 정확도가 계속 향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사용자가 번역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고 수정하는 기능을 출시해 이를 모델에 반영하고 번역 품질을 개선할 수 있도록 했다”고 귀띔했다.
젠 팡 총괄은 자동 채팅 번역 기능이 이용자 증대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메타버스 본연의 경쟁력을 강화할 도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해당 기능이 출시된 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반적인 영향을 평가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자동 채팅 번역 기능을 이용해 번역되는 메시지의 양이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테스트 단계에서 로블록스 체험 내 채팅 메시지 3개 중 1개는 번역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사람들이 플랫폼 내에서 원활하게 소통하고 연결될 수 있게 된 지금, 사회적인 상호 작용이 어떻게 증가하고 확대될지에 대해 굉장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젠 팡 총괄은 또, “가장 흥미로운 점은 해당 기능이 몰입형 소통과 연결에 대한 로블록스의 거대한 비전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라며 “전 세계 사람들이 언어 장벽에 구애받지 않고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이러한 비전에 다가가는 큰 진전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아예 불가능한 일이 가상 세계에서는 가능해진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로블록스는 단계적으로 자동 음성 채팅 번역 기능을 개발해 적용할 계획이다. 사용자 목소리와 톤, 리듬 감정까지 완벽하고 자연스럽게 번역된 대화를 제공하는 게 목표다. 젠 팡 총괄은 “아직까지는 공상 과학 소설 속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으나 이러한 기술이 바로 로블록스에서 만들어가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한편, 로블록스는 자동 채팅 번역 기능 외에도 AI 창작 도구를 적극 도입해 누구나 게임의 주인이 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앞서 대화형 AI 도구 ‘어시스턴트’를 공개한 이들은, 18일(현지시간)엔 ‘게임개발자컨퍼런스(GDC)’를 통해 3D 콘텐츠 제작을 효율화하고 가속화하는 AI 기반 ‘아바타 자동 설정’과 ‘텍스처 생성기’를 발표했다.
로블록스는 이를 통해 개발자는 불필요한 작업 단계를 줄이고, 창작 과정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아마추어 개발자도 좋은 아이디어만 있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상상을 결과물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젠 팡 총괄은 “어시스턴트 출시 이후 로블록스 개발자 커뮤니티는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커뮤니티 내에서 해당 도구를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를 목도하며 큰 보람을 느꼈다”며 “크리에이터에게 강력한 도구와 기회를 제공하면 우리의 예측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것을 창조해 낸다는 것을 다시금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그는 “베타 버전으로 출시한 ‘코드 어시스트’의 경우 코드 라인이나 기능을 제공하는데, 지난해 3월부터 약 11개월간의 베타 테스트 동안 크리에이터들이 약 3억자에 달하는 코드를 채택했다”면서 개발자들이 AI 도구를 적극 활용 중이라고 부연했다.
젠 팡 총괄은 “이는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며 로블록스가 향후 기술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더욱 많은 생헝형 AI 기능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일각에선 각종 개발 리소스를 손쉽게 만들어내는 생성형 AI가, 많은 창작자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다만 젠 팡 총괄은 AI가 이끄는 미래가 올 것이라면서도, 창작자가 창의력의 원천이 되는 것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생성형 AI는 특히 전례 없는 방식으로 창작을 민주화할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핵심은 AI가 크리에이터를 대체하는 것이 아닌 지원한다는 것”이라며 “창의력의 원천은 언제나 우리의 커뮤니티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특히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로블록스 장기적인 비전에 구심점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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