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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 40년] ⑪ T브랜드 신설, 3G 승기 잡고 ‘콸콸콸’

[MWC24] 3G 격차 벌리기

전세계 내노라 하는 이동통신사들이 총출동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모바일월드콩글레스(MWC)에서 올해도 SK텔레콤은 메인홀 중심에서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을 글로벌에 전파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이한 SK텔레콤은 국내 1위 이통사를 넘어, AI 컴퍼니로 또 다른 패러다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과거 40년을 조망해보고 미래 ICT 개척자로서 SK텔레콤의 비전을 살펴봅니다. <편집자주>

[ⒸSK텔레콤]

[바르셀로나=디지털데일리 강소현기자] “데이터, 무제한으로 ‘콸콸콸’”

‘SK텔레콤’하면 대표적으로 회자되는 광고 슬로건이다. 2011년 3G(3세대이동통신)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국내 처음으로 출시하면서 선보인 이 광고는 새로운 시대의 신호탄을 올렸다. ‘리얼 3G’ 시대가 개막한 것이었다. 동시에 3G 시장점유율에서 엎치락뒤치락 하던 KTF(전 한국통신프리텔)를 상대로 SK텔레콤이 압도적 승기를 잡는 전환점이 됐다.

◆ “전화만 거는 휴대전화, 안녕”…2000년 3G 시대 개막

[ⒸITU]

우리가 3G라 말하는 ‘IMT-2000’는 단순 이동통신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전 세계가 통용된 기술 표준을 사용한 첫 이동통신 서비스였기 때문이다.

이동통신은 전 세계적으로 1980년대 처음 시작됐다. 하지만 ‘누구와도 언제 어디서나 서비스를 받고자 한다’는 당초 이동통신의 목적을 실현하긴 어려웠다. 국가마다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IMT-2000’은 2000년 2㎓(기가헤르츠) 주파수 대역의 세계 공통주파수와 ▲cdma2000 ▲WCDMA(광대역코드분할다중접속)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TDD ▲UWC-136/EDGE ▲DECT 등 5개의 공통 기술표준을 기반으로 시작됐다. (2007년 10월 OFDMA 기반의 OFDMA TDD(직교분할다중접속) WMAN이 6번째 IMT-2000 기술 표준으로 승인됐다.)

IMT-2000 서비스 구현에 따른 가장 큰 변화는 ‘디지털 서비스의 보편화’였다. 전 세계 누구와도 통화가 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휴대전화로 TV를 보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기대됐다. 1·2세대 이동통신에선 상상만 했던 일들이었다. 기존 음성 중심의 이동통신 시스템 구조의 대대적 변화가 예고됐다.

◆ 韓 3G 시대 포문 연 SKT…‘세계최초’ 동기식 IMT-2000 서비스 시작

국내에서 이러한 3G 시대의 포문을 연 것은 SK텔레콤이었다. SK텔레콤은 2000년 10월 세계 최초로 동기식 cdma2000 1x 기반의 IMT-2000 서비스를 시작했다.

서비스 초반 cdma2000 1x를 지원하는 단말이 부재해 ‘반쪽짜리 상용화’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곧 변곡점을 맞았다. 이듬해 삼성전자가 cdma2000 1x를 지원하는 ‘SCH-X100’을, 4월 LG전자가 싸이언 ‘사이버-iX1를 출시하면서다. 2001년 6월까지 출시된 cdma2000 1x 지원 단말은 총 10종에 이르렀다.

당시 LG전자는 무선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최초의 단말 출시를 기념해 백일장을 개최하기도 했는데, 무선인터넷에 접속해 96자(한글) 내의 글을 작성한 뒤 전송하는 방식이었다.

같은시기 SK텔레콤도 전국 주요도시를 시작으로 서비스 반경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커버리지가 늘자 자연스레 품질도 크게 향상됐다. 당시 cdma2000 1x의 데이터 전송속도는 144Kbps이었는데, 2세대 이동통신보다 최소 5배에서 최대 10배 빨랐다. 음성 뿐 아니라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보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특히 풀컬러 액정표시장치(LCD)가 장착된 단말이 출시되면서 컬러로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단말·네트워크·콘텐츠 3박자가 들어맞으며 가입자도 급증했다. SK텔레콤의 IMT-2000 가입자는 2021년 1분기 7만5000명에서 2분기 38만9746명으로 무려 5배 증가했다. 같은기간 무선인터넷 매출도 크게 늘었다. 2000년 연매출 1301억원에서 20021년 무선인터넷 연매출은 2603억원으로, 전년보다 무려 100% 늘었다.

◆ 저문 동기식 IMT-2000 시대…'HSDPA'로 직행

[ⒸSK텔레콤]

하지만 동기식 IMT-2000 시대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글로벌 시장에선 통신장비사를 중심으로 IMT-2000의 기술표준을 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이지고 있었다. 퀄컴 등 북미 장비사들은 동기식(CDMA)을, 노키아 에릭슨 등이 이끄는 유럽 장비사들은 비동기식(WCDMA)을 선택한 가운데, WCDMA 표준이 대세를 이뤘다.

국내에서 WCDMA 상용화 시기는 미뤄져만 갔다. 정부가 세계 최초로 동기식 IMT-2000 서비스를 상용화한 만큼, 이동통신 서비스와 단말기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지키려면 CDMA에 대한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사업자 자율에 맡기겠다면서도 동기식 사업자에 대해서는 출연금을 대폭 깎아주는 등 정책적으로 비동기식 IMT-2000 서비스에 대한 차별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정부는 2003년 돌연 정책을 수정했다. 당시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현재의) cdma2000 1x EV-DO로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라며 WCDMA를 주력 이동통신 서비스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사업자들이 cdma2000-1x에서 한층 고도화된 cdma2000 1x EV-DO 기반 전국망 구축에 수조원 투자를 단행한 상태였다.

계속된 정책 혼선에 이동통신업계는 난처했다. WCDMA는 cdma2000 1x EV-DO와 성능 면에서 크게 차이나지 않는데다가, WCDMA 역시 한 단계 진화된 기술인 HSDPA(고속하향패킷접속) 기술 곧 상용화될 것으로 예측됐다.

WCDMA에 대한 사업자들의 투자도 지지부진했다. 대신 HSPDA를 조기 정착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전략을 세웠다. HSDPA가 일찍이 상용화 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SK텔레콤은 2005년과 2006년 HSDPA 네트워크 투자에 6000억원, 5100억원을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

◆ SKT-KTF, 3G 경쟁 본격화…'SHOW' vs 'T'

[ⒸSK텔레콤]

사업자들의 각고의 노력 끝에 HSDPA 기술은 1년 당겨진 2006년 5월 상용화됐다. HSDPA의 이론상 다운로드 속도는 최대 14Mbps로,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보다 안정적으로 구현할 것으로 기대됐다. 기존 WCDMA와 비교해 7배 빠른 속도였다.

사업자들 간 3G 경쟁도 본격화됐다. 너도나도 가장 빠른 전국 커버리지 구축을 통해 초기 주도권을 선점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투자비도 덩달아 불어났다. 2006년 SK텔레콤은 전국 84개시 서비스를 위해 당초 5700억원 수준이던 투자비를 증액, 총 8100억원을 HSDPA에 투자한다고 밝히는 가 하면 KTF 역시 3500억원 수준이던 투자액을 7000억원으로 2배 확대했다.

1라운드 대결의 승자는 KTF였다. KTF는 약 1년 5개월동안 망 구축에 집중하며 SK텔레콤보다 먼저 HSDPA 전국서비스를 실시했다. HSDPA 상용화 이후 겨우 9개월만이었다.

특히 2007년 2월에는 HSDPA 신규브랜드 ‘쇼’(SHOW)를 론칭, ‘쇼가 시작된다'는 티저광고로 HSDPA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궁금증을 자극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결국 KTF는 2007년 3월 WCDMA 가입자 규모에서 SK텔레콤을 앞지르는데 성공했다.

반면 SK텔레콤은 부진했다. 2G에서 스피드011, TTL, 준(june) 등을 통해 경쟁사보다 우월한 브랜드 이미지를 쌓아왔지만, 3G에선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KTF에 앞서 SK텔레콤은 2006년 8월 스피드011, 준(June), TTL 등 여러 브랜드를 하나로 묶은 통합 브랜드 'T'를 선보였다.

“나는 예쁘지 않다. 보여주기 위한 쇼(SHOW)는 싫다”

SK텔레콤은 회사 대표 브랜드인 'T'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이듬해 브랜드 전략실을 신설하고, 구원투수로 LG애드의 박혜란 상무를 낙점했다. 또 과거 '스피드011'을 능가하는 이동통신 대표 브랜드로 키워나간다는 포부를 밝히며, 당시 최고 스타였던 장동건을 광고 모델로 내세웠다.

'띵 딩 띠딩띵'

특히 SK텔레콤은 음원 마케팅에 집중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온 것이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SK텔레콤의 통화식별음이다. SK텔레콤 고객이 전화를 걸면 짧게 울리는 일명 '징글음'은 SK텔레콤 고객끼리 무제한 음성통화를 제공하는 ‘T끼리 무제한’ 요금제 출시와 맞물려 T브랜드를 대중에 각인시켰다. 실제 해당 음원은 2012년부터 사용하지 않고있음에도 불구, 2024년 현재까지도 SK텔레콤의 대표 음원으로 꼽힌다

결국 SK텔레콤은 2009년 1월 왕좌를 탈환하는데 성공한다. 2007년 3월 말 3G 서비스에 진출한 이후 22개월 만이었다. 당시 SK텔레콤의 WCDMA 가입자는 863만4312명으로, 처음으로 KTF(857만3062명)를 앞질렀다.

"데이터가 콸콸콸"…SKT發 요금 혁명

[ⓒSK텔레콤]

‘T’ 브랜드가 SK텔레콤의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면,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는 이동통신에서 SK텔레콤의 입지를 공고히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3G시대가 성숙기에 진입했음에도 불구, 여전히 무선 인터넷 접근에는 큰 장벽이 존재했다. 비싼 데이터 요금 탓이다. 실제 무선 인터넷 접속 버튼을 눌렀다가, 몇만원에 달하는 ‘요금폭탄’을 맞았다는 기사를 당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휴대전화 가운데 위치한 ‘네이트’(NATE) 버튼은 당시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출시하는 것이 사업자들의 입장에서도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이미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선보인 글로벌 주요 이동통신 사업자들조차 이용자들의 데이터 폭증을 이기지 못하고 폐지하던 추세였다.

이런 상황에서 SK텔레콤이 급발진했다. SK텔레콤은 2010년 8월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정식 출시했다. 월 5만5000원에 데이터를 무제한 제공했는데, 데이터 음성통화(m-VOIP)도 제한적으로 수용했다. 전통적인 이통사의 수익인 음성통화 수익을 일부 포기한 것이었다.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통해 그 이상의 성과를 걷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기도 했다.

SK텔레콤은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 도입에 앞서 수개월에 거쳐 네트워크를 보강했다. 트래픽 폭증에 대비해 2010년 추가 할당받은 2.1㎓(기가헤르츠) 대역 주파수 20㎒(상하향 각각 10㎒)를 3G에 도입했고, 데이터 속도와 용량 향상을 위해 HSDPA에서 업로드 속도를 높인 HSUPA와 HSPA+을 지역별로 순차 적용했다. HSPA+의 다운로드 속도는 최대 21Mbps로, HSDPA 대비 네트워크 속도를 50% 이상 업그레이드시켰다.

‘6섹터 솔루션’을 도입해 주파수 이용효율도 높였다. 일반적으로 기지국을 3섹터로 운용한다면, 추가적인 섹터 분할을 통해 6섹터로 운용하며 기존보다 용량을 2배 확대했다.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와 함께 선보인 '콸콸콸' 캠페인도 요금제 성행에 큰 공로를 세웠다. 여러 광고 중에서도 와이파이존을 ‘살수차’에 빗댄 광고는, 물을 힘겹게 흘리면 지나가는 살수차와 그 살수차를 쫓아가는 사람들의 애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타사와는 다르게 언제 어디서나 추가 요금 걱정없이 무선데이터를 쓸 수 있는 SK텔레콤 요금제만의 강점을 부각시켰다.

요금제의 인기는 엄청났다. 당시 SK텔레콤 스마트폰 가입자 10명 중 6명이 데이터 무제한을 선택했고, 신규 가입자 중에서도 70% 이상이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에 가입했다. 또 삼성전자 ‘갤럭시S’ 등 국내 스마트폰 태동기와 맞물려 무제한 요금제는 출시 10일만에 가입자 100만명을 돌파했다. 당초 KT가 7월 말로 예고했던 아이폰4의 국내 출시일정이 연기되면서 그 대기수요도 흡수했다.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가 가져온 파장 역시 엄청났다. SK텔레콤과 맞서기 위해선 KT와 LG유플러스 역시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출시할 수 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테더링이 활성화됐고, 트래픽 이용량이 획기적으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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