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혁신’ 속도는 눈부시게 빨랐다. 더욱 쉽고, 간편하고, 빠르게 이뤄지길 원하는 고객이 어디에나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정보기술(IT)·플랫폼·게임 기업들이 눈치 보지 않고 고객 편익 향상을 위한 아이디어를 뽐내왔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율규제’가 우선이었던 윤석열 정부 기조가 정반대로 움직이려는 모습이 관측되면서부터 이들 기업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신년이 밝아오면서 그 그림자는 더욱 선명해졌다. 해외 기업은 그 사이를 보란 듯 파고들며 국내 시장 잠식 속도를 올리고 있다. 한국산 혁신, 올해는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 <편집자 주>
[디지털데일리 왕진화 기자] 공정거래위원회의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가칭)’(이하 플랫폼법) 입법 추진 시계가 빨라진 모습이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국무회의 보고를 통해 플랫폼법 추진 의지를 밝혔다. 이는 소수 핵심 플랫폼을 사전 규제하는 내용이다. 공정위는 플랫폼 대기업의 독과점 문제 차단을 위해서라도 해당 법안을 반드시 들여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위가 입법 추진 행보를 보일수록 플랫폼 업계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24일 약식 기자간담회를 통해 플랫폼법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려 했지만, 이날도 플랫폼법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오히려 혼란만 가중됐다.
현재 국내 정보기술(IT)·플랫폼 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해외 기업들까지 더욱 반감을 드러내고 있는 실정이다. 디지털경제연합에 속해 있는 벤처기업협회는 25일 ‘플랫폼법 반대 챌린지(제정 대응 캠페인)’까지 펼치고 나섰다.
◆네이버·카카오, 사정권 안으로…유력 후보 글로벌 기업들은 공정위 만남 회피
정부가 추진하는 플랫폼법 규제 대상은 지배적 사업자로서 일정 부분 매출과 점유율을 가진 플랫폼들이다. 우선 국내 빅테크 대표 기업들인 네이버와 카카오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해외 기업인 구글이나 애플, 메타 등도 규제 대상 지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마저 통상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는 논란이 일면서, 공정위는 최근 암참에 나서게 됐다. 이어 공정위는 오늘(25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를 찾아 일부 회원사를 상대로 플랫폼법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다만 퀄컴, 매치, 썬더, 유니퀘스트 등 4개 글로벌 플랫폼 기업만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될 수도 있는 구글, 애플,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들 역시 공정위의 플랫폼법 입법에 강한 불만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4일 육성권 공정위 사무처장은 “누구나 인정할 만한 소수 플랫폼이 지정 대상”이라며 “글로벌 플랫폼 또는 지배력이 확실한 플랫폼만 지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육 사무처장이 “국내 사업자만 플랫폼법 대상이 돼 해외 기업과 역차별 우려가 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국내 플랫폼 시장을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독과점 플랫폼이라면, 국내외 사업자를 구분하지 않고 차별 없이 규율할 예정”이라고 말한 것도 화근이 됐다.
이들 기업도 국내 기업처럼 ‘역차별’이라는 주장을 내세운다. 정확히는 국내 기업이 주장하는 역차별과는 다른 의미다. 한국 시장 점유율이 낮은 알리바바 등 중국 이커머스 등 플랫폼 기업들이 당장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들이 빠르게 잠식하고 있는데도 국내외 일부 기업들만 사전규제를 가하려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주장이다.
◆플랫폼법으로 제재받게 될 ‘지배적 사업자’ 기준, 아직도 비공개…혼란만 가중
구글, 알리바바, 메타 등은 글로벌 게임 업체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나 글로벌 인터넷 방송 1위 사업자인 트위치, 모기업인 아마존처럼 연도마다 한국에서 거둬들인 매출이나 이용자 수, 기업 가치 등을 명확하게 공시하지 않는다. 세금 또한 비상식적으로 적게 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이 ‘공정위’, ‘플랫폼법’이라고 해도 이를 근거로 해외 독과점 플랫폼 기업을 제대로 제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대목이다.
또한, 이날 한 매체는 공정위 관계자의 입을 빌려 각 업계 1위 사업자인 쿠팡과 배달의민족이 플랫폼법에서 지정하는 지배적 사업자 명단에서 빠질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쿠팡의 국내 온라인 시장 점유율은 24.5%다.
다만 이는 독점 업체라고 볼 수 없는 비중이며, 글로벌 기업과도 국내 온라인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기에 감안이 될 것이란 예상이었다. 배달의민족은 매출액이나 자산이 1위 사업자인 것 치곤 적은 수준이어서 지정을 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공정위는 즉각 해명 자료를 내고, “플랫폼법 지배적 사업자 지정 기준 등에 대해서는 현재 관계부처들 간 협의가 진행 중에 있다”며 “따라서 특정 플랫폼 사업자의 지정 여부 등은 전혀 확정된 바 없다”고 못박았다. 이처럼 계속되는 추측과 혼란 속에 플랫폼 업체들 피만 말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이날부터 벤처기업협회는 플랫폼법 제정에 우려사항 및 반대의견을 전달하기 위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캠페인을 시작한다. 성상엽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플랫폼법은 기업성장에 한도를 설정해 놓은 규제로 기업 활동에 위축을 주고 혁신을 저해한다”며 “플랫폼 기업뿐만 아니라 플랫폼에 입점한 중소상공인, 플랫폼 이용자들의 편익 등을 고려해 법 제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정책 감시단체 사단법인 컨슈머워치는 플랫폼법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주장하며, 지난 9일부터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다. 지난 16일 플랫폼법 반대 서명운동에는 2000명이 참여했으며, 이날까지 5000명의 서명이 모였다. 컨슈머워치는 “공정위가 제정하려는 플랫폼법은 소비자 후생을 떨어뜨리고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할 것”이라며 공정위가 전면 재검토 할 것을 요구한다”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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