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문대찬 기자] ‘항저우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 선정, ‘LoL 월드챔피언십(이하 롤드컵)’ 한국 개최 덕분에 지난 몇 달간 이스포츠는 전례 없는 전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특히, 지난 19일 한국 대표 T1이 우승을 차지하며 마무리된 롤드컵은 이스포츠가 더 이상 일부만 즐기는 놀이문화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롤드컵 결승 주간인 16일부터 18일까지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롤드컵 팬 페스타 현장에는 총 8만1400여명에 달하는 관람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결승 당일에는 광화문 일대가 롤드컵 응원전을 펼치기 위한 인파로 가득했다. 서울시가 이스포츠 행사를 위해 광화문 광장을 내어준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니, 달라진 이스포츠 위상을 엿볼 수 있다.
이스포츠가 정치권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결승전이 열린 19일 고척돔 곳곳에는 T1을 응원하는 각 정당과 정치인들의 현수막이 휘날렸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장관은 몸소 결승전을 찾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결승전 다음날, 마치 국가대표를 대하듯 T1 선수단에게 축전을 내려 눈길을 끌기도 했다.
정치권의 관심이 반가우면서도 씁쓸한 것은, 이들의 과거 전력 때문이다. 2030세대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게임과 이스포츠 산업은 그간 정치권 표심을 위한 도구로 이용 돼왔다. 달콤한 꿀이 흐르는 것 같으면 ‘찍먹(찍어먹기)’ 했다가, 이내 외면하고 방치하는 것이 이들 행태였다.
롤드컵 관련 정치권 기사에 “앞으로도 관심을 더 가져달라”는 당부보다 “가만있다가 숟가락을 얻는다” 등의 냉소적인 댓글이 주를 이룬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스포츠에 대한 이해도 없이 인기에 편승만 하려다 웃음거리가 되는 일도 적지 않다. 앞서 국민의힘 박재이 노동위원회 위원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수험생을 격려하기 위해 고양시 내 길거리에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곤욕을 치렀다.
현수막에는 “우리 아들딸, 수능도 꿈도 GG하고 놀(LoL)자~”라고 적혔는데 여기서 GG는 이스포츠에서 흔히 ‘포기하자’ ‘항복하자’라는 의미로 쓰인다. 의도와 다르게 ‘수능도 꿈도 포기하고 놀자’로 읽힐 수 있는 부분이다. 박 의원은 고양시 이스포츠협회장을 맡고 있다.
낮은 산업 이해도 속에서 건립된 전국 곳곳의 이스포츠 경기장은 실효성 논란에 빠져있다. 현재 국비를 들여 운영 중이거나 개장을 앞둔 이스포츠 보조경기장은 대전과 광주, 부산, 진주, 아산 등 5개다. 이외 민간에서 운영 중인 이스포츠 경기장도 적잖다. 각종 이스포츠 대회를 유치하면서 저변을 확대하고, 궁극적으로는 지역연고제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스포츠는 일반 스포츠와 다르게 소유권이 종목사에 있어 대회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역연고제는 온라인으로 치르는 이스포츠 특성상 갑론을박이 오가 논의에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외산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 외에 안정화에 돌입한 이스포츠 종목이 전무한 상황에서, 무분별한 이스포츠 경기장 건립이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아시안게임과 롤드컵 성과로 이스포츠 종주국으로서 명예를 드높인 상황에서, 이제는 정부가 진심을 다해 이들의 서포트에 나서야 될 때다. 이스포츠 특수성을 이해하고, 낮은 자세로 귀를 기울여 업계가 실질적으로 당면한 문제부터 바라봐야 한다.
현재 업계에는 어린 선수들의 학업 병행 문제, 악화된 게임단 수익성 문제 등이 산적한 상황이다. 이스포츠 산업에 대한 세액 공제 법안도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근본적인 지원도 좋지만 이들이 체감 가능한 처방책이 우선이다.
이외, 3년 뒤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의 국산 게임 종목 채택을 위해 정부가 기관과 협력해 발 빠르게 나서야 한다. 성공한 이스포츠는 인기 있는 게임에서 비롯되는 만큼, 좋은 게임이 개발될 수 있는 게임산업 환경 마련과 지원에 힘써야 한다.
한편, 유 장관은 롤드컵 결승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스포츠 육성 방안을 빠른 시일 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기대처럼 해당 방안이 이스포츠 산업이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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