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강소현 기자] 정부가 마침내 통신시장 경쟁촉진 방안을 내놓았지만 업계 반응은 떨떠름하다. 가령 “새로울 게 없다”거나 “실효성이 없을 것”이란 실망감이 주를 이룬다. 고착화된 통신3사 독과점 구조를 깨겠다는 선언적 의미는 있지만 구체적 실행방안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과 함께, 정부의 과도한 ‘민간 때리기’라는 볼멘소리도 있다.
◆ 과기정통부, ‘통신시장 경쟁촉진 방안’ 발표…제4 이통·알뜰폰 육성 방점
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크게 ①통신시장 경쟁구조 개선 ②경쟁 활성화를 통한 국민 편익 제고 ③유무선 통신 인프라 투자 활성화를 골자로 한 ‘통신시장 경쟁촉진 방안’을 발표했다.
통신시장 경쟁구조 개선 측면에선 신규 사업자에 5G용으로 28㎓ 대역 전용주파수(3년)와 앵커주파수(700㎒ 또는 1.8㎓ 대역)를 함께 할당하면서 할당대가와 조건에 있어 혜택을 주기로 했다. 또 도매제공 의무제도를 상설화 하고 도매대가 산정방식도 다양화해 경쟁력 있는 알뜰폰 사업자의 성장을 지원하기로 했다.
경쟁 활성화를 통한 국민 편익 제고 측면에선 이용자 요금 선택권 확대 및 최적요금제 고지를 의무화 하고, 유통망의 단말기 추가지원금 한도를 공시지원금의 15%→30%로 상향을 추진하는 한편, 다양한 중저가 단말이 출시될 수 있도록 제조사와 협의한다.
유무선 통신 인프라 투자 활성화 측면에선 5G 공동망(131개 시·군)을 2024년 1분기까지 구축하고, 28㎓ 대역 이용처를 기존 통신3사 위주에서 벗어나 지하철 와이파이 및 산업용 5G 특화망(이음 5G)과 신규 사업자 등으로 확장한다.
◆ 통신업계, 잇따른 정부 채찍질에 우려…신규 사업자 진입 가능성 ‘회의적’
이 같은 경쟁촉진방안에 대해 통신사들은 한마디로 ‘할말하않’(‘할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의 줄임말) 분위기다. 올초부터 사업자들은 정부의 가계통신비 인하 기조에 발맞춰 5G 중간요금제 확대 및 세대별 맞춤 요금제 출시 등 정책 협조를 해 왔지만, 정부는 최저 요금구간 인하 등 아직 더 바라는 것이 많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아픈데 아프다고 얘기도 못하고 있다”며 “요금이나 알뜰폰 도매대가 같은 부분은 다 매출과 직결되다 보니 타격이 클 것”이라고 걱정했다.
실효성도 문제다. 과기정통부가 계획하는 알뜰폰 도매제공의무 상설화나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추가지원금 한도 상향(공시지원금의 15%→30%) 등은 국회에서 입법 통과가 전제돼야 하는데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러 통신사 관계자들은 “백화점식 정책 나열”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반응도 내놓았다. 또 다른 통신사 관계자는 “선택약정할인을 기존 24개월에서 1년+1년 구조로 바꾸겠다는 것도 영업이나 고객 안내 측면에서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 말했다.
28㎓ 공급을 통한 신규 사업자 육성 계획에 대해서도 냉소가 나온다. 현재 과기정통부는 통신3사로부터 회수할 28㎓ 주파수 대역을 신규 사업자에 새로 할당함으로써 제4 이동통신사 진입을 유도하려 한다. 하지만 과기정통부가 7전8기로 제4 이통 도입을 다시 추진한 지 벌써 몇 달이 지났음에도 유의미하게 거론되는 기업 후보가 없다. 모두들 막대한 투자와 규제 리스크로 제4 이통 진입을 주저하고 있는 분위기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28㎓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은 것부터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거다. 왜 미련을 못 버리는지 모르겠다”며 “앵커주파수용인 700㎒나 1.8㎓ 대역은 아직 5G 장비가 나오지도 않았다. 상용화에 2~3년은 걸릴 텐데 그때쯤 통신3사는 6G 상용화 준비하고 있을 거다. 신규 사업자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서비스로 출발하게 될 것”이라 혹평했다.
또 다른 통신업계 관계자는 “기존 사업자가 깔아놓은 망을 쓸 수 있게 하는 등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에 대한 사업자의 부담을 덜어냈다는 점에서 과거 발표한 통신시장 경쟁촉진 방안과는 확실히 다르다”라면서도 “신규사업자가 자금 부족을 이유로 서비스를 중단하는 경우 정부가 그 책임을 져야하는데 정부가 승인해줄 만큼의 자금조달 능력을 갖춘 사업자가 나올진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다만 알뜰폰 업계 내에선 그나마 희망찬 분위기가 읽힌다. 알뜰폰 업계 한 관계자는 “도매제공의무 상설화와 설비기반 사업자 육성, 이 두가지가 정부 차원에서 공식화된 데에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방향은 잡혔지만 이제 세부적으로 진행을 시켜야 하는데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며 염려를 덧붙였다.
◆ “기존 사업자 규제로 신규 사업자 진입 유도? ‘통신=규제’ 인식만 심어줘”
전문가들은 이번 방안이 이용자 편익 증진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추후 지속 가능한 통신 시장을 만들기 위한 고민도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통신시장 경쟁을 촉진하려면 필요하다고 언급됐던 모든 내용들이 반영됐다는 점에서 가계통신비 인하에 대한 정부의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된 것 같다”라고 평가하면서 “다만 지금처럼 정부가 기존 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통해 신규사업자들의 진입을 유도한다면, 오히려 통신시장은 규제 시장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경쟁을 통해 가계통신비가 인하되더라도 이러한 경쟁이 언제까지 가능할 것이냐는 또 다른 문제다. 출혈 경쟁으로 (사업자들의 상황이) 어려워진다면 오히려 투자가 줄고 소비자 후생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라며 “지속가능한 통신 시장을 만들려면 시장의 크기 자체를 키우기 위한 고민들도 필요할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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