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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수난시대] 허울뿐인 ‘K-플랫폼 진흥’…업계는 한숨만

지난 11일 오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2023 플랫폼 자율규제방안 발표회’가 열렸다. 이날 발표회에는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한기정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김효재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등 주요 정부 관계자가 참석했다.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2023 플랫폼 자율규제방안 발표회’가 열렸다. 이날 발표회에는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한기정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김효재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등 주요 정부 관계자가 참석했다.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디지털데일리 이나연 기자] “지금 플랫폼업계는 ‘암흑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시장이 크게 위축된 상태다. 문제는 플랫폼 앞에 있는 여러 암초를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민간 기업에 대해 ‘자율규제’ 기조를 내건 것과 상반된 행보를 반복하는 것을 지켜보는 업계 평가다. 사실 윤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디지털플랫폼정부’를 선언하며 국내 플랫폼 기업을 육성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지를 자주 내비쳤다.

지난해 연말 범정부 합동 대책인 ‘디지털플랫폼 발전방안’을 발표하는가 하면, 지난 10일 개최한 윤석열 정부 1년 규제혁신 성과 브리핑에서도 “이해당사자들 의견 수렴을 통해 플랫폼 비즈니스 규제 완화를 위한 해결 방안을 만들겠다”는 취지 발언도 했다.

이튿날인 지난 11일에는 범정부가 함께 하는 플랫폼 민간 자율기구가 자율규제 방안 발표회를 개최하고 산하 4개 분과가 마련한 방침을 발표했다. 베일을 벗은 자율규제 방안은 주요 플랫폼 사업자뿐만 아니라 사업자 단체, 중소기업・소상공인 단체, 소비자단체・민간 전문가가 모두 참여해 수차례 머리를 맞댄 결과다.

업계는 이 플랫폼 자율규제 방안이 규제 이상 실효성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눈치다. 민간이 주도하는 자율규제가 성과를 내야만 최근 정치권에서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플랫폼 규제 움직임에 조금이라도 제동을 걸 여지가 생겨서다. 기업들이 규제 칼날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경기 불황에 따른 수익성 하락과 무관하지 않다.

◆경기침체에 고삐 죄는 기업들…“이러다 다 죽어”=지난 2020년 초반부터 코로나19 특수를 등에 업고 몸집을 불리던 전 세계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엔데믹(감염병 풍토병화)과 가파른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침체, 광고 수익 감소 등으로 휘청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지는 온갖 규제 이슈는 말 그대로 IT기업들에 엎친 데 덮친 격인 셈이다.

이들 기업은 경제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빅테크 구조조정 칼바람은 이렇게 시작됐다. 트위터 경우 지난해 10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경영을 시작한 후 전체의 60%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동안 실시하던 무료 음식 제공과 가정 인터넷 비용 상환 서비스·보육비·출장 식비 지급 등 다양한 복지도 멈췄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모회사인 메타는 지난해 11월 비용 절감 등을 이유로 전 직원 중 13%에 해당하는 1만1000명을 해고했다. 임직원 복지 서비스인 사내 무료 세탁 서비스와 차량 공유 서비스 리프트 보조금 지원도 종료했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올해 초 전체 인력의 6% 이상인 1만2000명을 줄이겠다고 알렸다. 인력 감축으로서는 역대 최대규모 수준이다.

국내 기업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국내 대표 IT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 모두 경영 효율화를 위해 북미 자회사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네이버는 북미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와 온라인 소비자 간 거래(C2C) 플랫폼 포시마크 인력을 감축하는 한편, 카카오는 북미 자회사 타파스엔터테인먼트 한국 법인 청산 작업에 나섰다.

심지어 카카오는 올해 초 진행했던 경력 개발자 수시 채용을 돌연 중단하기도 했다. 채용 취소 대상자 중에는 서류·코딩 전형을 통과하고 면접을 앞둔 지원자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카카오 측은 “불확실한 대외환경 변화로 채용을 보수적으로 간다는 기조하에 일부 포지션 채용이 일시중단하는 경우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카카오 임직원은 부서 단합 및 운영을 위한 목적으로 회식비를 금액 제한 없이 사용했지만, 지난 3월을 기점으로 회식비는 인당 5만원으로 제한됐다. 이에 카카오 공동체 노동조합 ‘크루 유니언’은 “공지도 없고 설명도 없는데 회식비 제한은 시행 중”이라는 전단을 배포한 바 있다.

(왼쪽부터 손익선 엠디스퀘어 팀장, 임진석 굿닥 대표, 장지호 닥터나우 대표, 장지호 원격의료산업협의회 회장, 선재원 메라키플레이스 대표, 김민승 솔닥 대표) 원격의료산업협의회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대통령께 보내는 호소문’을 공개하며 현재 보건복지부가 추진하고 있는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원격의료산업협의회]
(왼쪽부터 손익선 엠디스퀘어 팀장, 임진석 굿닥 대표, 장지호 닥터나우 대표, 장지호 원격의료산업협의회 회장, 선재원 메라키플레이스 대표, 김민승 솔닥 대표) 원격의료산업협의회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대통령께 보내는 호소문’을 공개하며 현재 보건복지부가 추진하고 있는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원격의료산업협의회]

◆“규제를 멈추는 것부터가 진정한 규제개혁 시작”=업계는 현재 국회에 계류됐거나 시행을 앞두는 플랫폼 규제 관련 법 제정 시도를 멈추는 것만이 진정한 규제혁신 시작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내외 경제 불확실성과 시장 상황을 고려해 보다 실질적인 플랫폼 육성 정책을 내놓는 노력 또한 요구된다.

최근 플랫폼 산업 곳곳에서는 현 정부와 국회를 향한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원격의료산업협의회 소속 비대면진료 기업 대표 일동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안 전면 재검토를 요청하는 ‘대통령께 보내는 호소문’을 공개하고, 이를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관계자에 전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국정과제에서까지 비대면진료 필요성을 강조하고 규제개혁 의지를 표명했으나, 정작 보건복지부는 현장에서 실현 불가능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안을 내놓았다는 비판이다.

이들 기업은 실제 호소문 내용에서 “보건복지부의 대상환자 제한적 시범사업은 대통령이 말씀하신 ‘국민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방안”이라며 “몇십년 전부터 해온 시범사업과 무엇이 다른 것인지, 이게 규제개혁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그에 앞서 한국인터넷기업협회도 지난 17일 정부와 국회를 향해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 규제 흐름에 역행하는 규제 논의를 반대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현행 공정거래법으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는 지점인데도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안이 17개나 국회에 계류 중인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 산업 발전’으로 규율 방식을 전환하는 미국·중국 등과 달리, 한국은 현재 계류된 법안들만 봐도 플랫폼 성장을 억누르는 법과 정책이 쏟아진다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특히 협회는 명확한 실태조사나 근거 없이 국내 인터넷 기업의 외형적 모습만을 보고 판단해 선제적 규제를 시도하는 점을 문제로 짚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시기 비대면 생활이 일상화하면서 플랫폼들은 이용자 수를 끌어모으기 위한 출혈 경쟁을 했다. 이제 그동안 투자한 것을 회수할 시기”라며 “여러 시도 등을 통해 막상 청구서를 내밀려고 하니 정부가 성장은커녕, 산업 자체를 위축시키며 기업들의 수익화 노력을 막아버리는 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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