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민후 원준성 변호사] 결과를 기다리던 대법원의 판단이 몇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선고되어 이 지면을 빌어 그 판례를 소개하고자 한다(2023. 2. 23. 선고 대법원 2021후10473 판결, 2022후10012 판결). 사안을 간략히 요약하면 이렇다.
① A는 디자인을 창작한 이후 등록디자인 출원 이전에 이를 먼저 공개하고(이하 ‘A의 공지디자인’), 이후 등록디자인출원을 하여 등록에 이르렀다. 다만 그 출원일은 디자인보호법 제36조 제1항의 기간 내에 이루어졌다(사안의 경우 6개월, 현행 법률에서는 12개월).
② A가 자신의 디자인과 동일·유사한 디자인을 무단으로 실시하는 B에게 침해금지를 요청하자, B가 특허심판원에 위 등록디자인에 대한 무효심판을 청구하였다.
③ A는 위 등록무효심판에서 답변서를 제출하며, A의 공지디자인은 디자인보호법 제36조 제1항의 신규성 상실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하였다.
④ 그러자 B는 다름 아닌 바로 A의 공지디자인을 선행디자인으로 하여 자신의 디자인은 자유실시디자인이라고 항변하였다.
위 사안의 쟁점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디자인보호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디자인은 과거에 없던 새로운 것(신규성)이어야 함은 물론, 다른 디자인들의 조합을 통해 쉽게 창작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창작비용이성).
이미 공개되어 있는 디자인(이하 ‘선행디자인’)임에도 단지 누군가 먼저 출원하였다는 이유로 그에게 독점권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므로, 당연한 내용이라 하겠다.
그런데 그 선행디자인이 다름 아닌 출원인의 디자인이라면 문제가 또 다르다. 특히 디자인의 경우 유행도 급변하여 순환도 빠르고 수명도 짧기 때문에, 디자인권의 보장을 위해 매번 디자인을 출원한 이후에야 이를 공개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즉 디자인의 본래적 성격에 비추어 창작자 스스로가 이를 공개한 이후 일정기간 내에 등록디자인을 출원하였다면 이를 신규성 내지 창작비용이성 위반의 디자인으로 보지 않고 보호해 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신규성 상실의 예외'라는 표제의 특허법 제36조 제1항은 그러한 취지의 규정이다. 디자인권자 스스로 일정기간 내 공개한 디자인이라면 추후 무효심판에서 그 선행디자인을 신규성과 창작비용이성의 판단 근거가 되는 선행디자인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위 사안에서 A가 주장한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한편 위 사안에서 B는 ‘자유실시디자인 항변’을 하였다. 자유실시디자인 항변이란 자신이 실시한 디자인이 이미 공개된 선행디자인과 동일하거나 그로부터 쉽게 창작될 수 있는 디자인인 경우, 이는 누구나 자유롭게 실시할 수 있는 공공의 영역(Public domain)에 속한 디자인으로서 등록디자인과의 비교에 나아갈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침해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보는 법리이다.
즉 위 사안에서 설령 A의 등록디자인과 B가 실시한 디자인이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선행디자인과 B의 디자인이 동일하다면 이는 자유로운 디자인으로서 침해를 구성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서로 다른 목적과 취지의 양 제도가 공통된 하나의 선행디자인을 근거로 주장되는 경우, 즉 A를 보호하기 위한 신규성 상실의 예외 규정에 해당하는 디자인이 A의 공지디자인이면서, 동시에 B를 보호하기 위한 자유실시디자인 항변에서의 선행디자인이 A의 공지디자인인 경우, 과연 누구를 보호해 주어야 하는지가 사건의 쟁점이 되었던 것이다.
원심인 특허법원의 경우 B의 손을 들어주었다. A의 공지디자인으로도 자유실시디자인 항변이 가능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특허법원은 여러 합리적 근거를 설시하였는데, 선행디자인은 이미 공공의 영역(Public domain)에 편입된 디자인이므로 이를 믿은 제3자의 실시행위를 보호해 주어야 하고, 이러한 제3자의 보호는 선행디자인이 A 스스로 공개한 것인지 여부와는 무관하다는 제3자 보호의 관점이 핵심 기준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어진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다르게 판단하였다. B의 자유실시 디자인 항변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선행디자인에는 A의 공지디자인은 포함될 수 없다고 판시하여, 이를 근거로 한 B의 자유실시디자인 항변을 배척한 것이다.
즉 특허법 제36조 제1항의 ‘신규성 상실의 예외’에 해당하는 디자인으로는 자유실시항변이 불가능하다는 법리를 처음으로 확인한 것이다.
대법원 역시 여러 합리적 근거를 설시하였는데, 디자인보호법의 제도 아래 적법하게 등록디자인권을 취득한 디자인권자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관점이 더욱 큰 해석 기준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자유실시디자인 항변의 법리는 선행디자인이 공공의 영역에 있음을 전제로 하는 법리인데, 신규성 상실 예외 규정의 적용을 받은 디자인이라면 애초 공공의 영역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특허법 제36조가 일정한 시기적·절차적 요건 아래에서 그 적용 기준을 분명히 하고 있으므로, 제3자에 대한 보호에 문제도 없다고 보았다.
원심과 대법원의 판시 차이는 결국 권리자를 더 보호할 것인지 제3자의 신뢰를 보호할 것인지의 가치판단에 대한 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본래 자유실시디자인 항변은 국가마다 그 인정여부나 범위를 달리 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상 경우에 따른 구별 없이 포괄적으로 허용되어 왔던 점, 자유실시디자인 항변은 공공의 영역에 들어간 디자인을 보호하려는 취지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해당 선행디자인으로 등록디자인의 무효여부를 판단할 것도 없이 선행디자인과 확인대상디자인만을 비교함으로써 신속하고 합리적으로 분쟁을 종결하기 위한 절차적 목적도 아울러 가지고 있는 점(대법원 2017. 11. 14. 선고 2016후366 판결) 등을 고려하면, 적어도 신규성 상실의 예외에 해당하는 디자인이라면 이를 근거로 하는 자유실시디자인 항변을 배척하여 등록디자인권자의 권리를 보호해 주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고 보인다.
이러한 측면에서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면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하여, 신규성 상실의 예외에 해당되는 디자인은 이제 자유실시디자인 항변에서의 선행디자인으로서 주장될 적격이 없다. 디자인업 종사자들은 최신 법리를 숙지하여 두어야 향후의 분쟁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원준성 변호사. 사진> 법무법인 민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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