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구현모 KT 대표의 연임 도전에 때아닌 제동이 걸렸다. 지난해 12월28일 KT 이사회가 구현모 대표를 차기 대표이사 최종 후보로 확정지으면서 구 대표의 연임 가능성에 청신호가 켜진 것도 잠시, 그로부터 약 3시간 뒤 KT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국민연금은 ‘KT CEO 최종 후보 결정에 대한 입장’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KT 이사회의 이 같은 결정은 ‘CEO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앞으로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 이를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국민연금의 입장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따르지 못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는 지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다가올 정기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지면 된다. 지금처럼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KT 이사회의 결정에 흠집을 내기보다는 말이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공식석상에서 두 차례나 KT를 언급했다. “소유분산기업이 대표이사 선임·연임 과정에서 현직자 우선 심사와 같은 내부인 차별 문제를 두고 쟁점이 되고 있다”(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거나 “소유분산기업들이 CEO 선임을 객관적이고 투명한 기준에 따라 해야 한다”(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는 등 어깃장을 놨다.
사실 KT의 심사 절차는 KT 정관으로 미루어보건대 어떠한 결격 사유도 없다. 당초, 현직 CEO부터 연임 적격 여부를 심사한다는 지배구조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구 대표는 진작에 최종 후보가 됐어야 한다. 하지만 구 대표는 국민연금의 우려를 의식해 다시금 복수 후보 심사를 요청했고, 그 결과 역시 마찬가지였다.
국민연금은 KT의 지분 10.35%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하지만 국민연금이라는 특수한 지위를 생각할 때, 그 의결권은 어디까지나 국민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행사돼야 한다. 하지만 KT CEO 선임에 공개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과연 국민을 위해 안정적으로 기금운용 수익을 높이기 위한 방법일지 의문이 든다.
오히려 주식 시장에서는 구 대표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구 대표가 제시한 디지코(DIGICO·디지털플랫폼기업) 전략을 발판 삼아 높은 실적을 거둔 KT는 3년 만에 기업가치가 45% 증가했다. 구 대표 취임 전 약 6조9000억원 수준이던 KT 시가총액은 지난 8월1일에 9년2개월 만에 10조원대를 넘기도 했다.
혹자는 과거 정부에서처럼 KT에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기 위해 국민연금이 앞장서 여지를 만드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한다. KT는 정부 지분이 한 주도 없는 민영기업이지만, 태생이 공기업이었던 탓에 정권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구 대표는 이런 굴레를 깬 KT 최초 내부인사 출신 대표다.
물론 KT 이사회 또한 이번 후보 선정에 있어 좀 더 만전을 기했어야 한다. KT 이사회 측은 후보 측의 요청 등으로 인해 이번 복수 후보 심사를 비공개로 진행했다고 했지만, 심사기준과 절차만큼은 공개했어야 맞다. 지배구조위원회를 통과한 3명의 최종 후보가 추려졌을 때, 이에 대해 면접 절차도 외부에 알렸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과 별개로 확실한 것은 KT 이사회가 정관과 규정에 따라 구 대표를 최종 후보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이제 남은 것은 오는 3월 열릴 정기 주주총회다. KT CEO는 KT를 포함한 50개 계열사, 5만8000명의 임직원, 그리고 25만여명의 주주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만큼 적절한 판단이 내려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