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강소현 기자] 글로벌 거대 CP(콘텐츠제공사업자)의 망 무임승차를 막는 이른바 ‘망무임승차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과 관련한 논의가 잠잠해졌다. 해당 법안을 두고 정부가 주도권을 국회에만 떠넘기며 지지부진해진 모양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얽혀있는 가운데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비슷한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번질 수 있다는 데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은 그 이름처럼 글로벌 CP들의 망 무임승차를 막자는 취지에서 발의됐다. 넷플릭스 등 소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에서 망사용료 부담을 거부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이에 현재 국회에는 관련한 법안만 총 7건 발의돼 있다. 이들 법안은 모두 일정 규모 이상의 CP가 통신사업자(ISP)에 망사용료를 내거나, 망사용료 계약을 의무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일각에선 법안이 오히려 국내 CP의 해외 진출 부담을 가중시키고, 무엇보다 외교적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의 ‘내국민대우’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도 최근 발간한 ‘2022년 국별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국내의 법안 제정 움직임을 우려하기도 했다. 법안은 국내외 불문 모든 사업자에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기에 내국민대우를 해쳤다고 보기 어렵지만, 제동을 걸기엔 좋은 빌미다.
한국 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망 무임승차를 방지하는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와 달리 빅테크기업이 통신사업자(ISP)의 망에 방대한 양의 트래픽을 유발하기 시작하자 유럽의 ISP들도 부담을 호소하기 시작한 가운데 지속가능한 인터넷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선 규제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작 일찍이 법안을 발의한 국내에선, ‘망무임승차방지법의 통과가 외교적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부터 ‘ISP가 실제 CP에 가져다준 효용가치를 산출할 수 있는 지’ ‘CP가 ISP에 내고있는 망사용료의 규모는 합당한 지’ 등 관련된 논의가 거의 부재하다.
물론, 입법에 따른 영향을 충분히 논의하자는 차원에서 공청회가 국회에서 마련된 바 있다. 하지만 당초 기대와 달리, 공청회는 망사용료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데에만 매달리며 정작 핵심 쟁점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채 마무리됐다. 당연 논의하기로 했던 사전규제와 사후규제의 적합성, 그리고 규제기관의 실태조사 권한 등 법안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안 등의 문제에 대해선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논의의 방향을 잡아줄 정부도 한걸음 물러난 상태다. 최근 진행된 공정한 망 사용을 위한 정책 마련 세미나에선 민·관·연이 머리를 맞댄 가운데 정부의 입장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정부 대표로 참석한 이 관계자는 “정부에서도 여러 방안들을 같이 논의하고 있지만 국회 입장이 안나온다면 결국 당분간 결론 내리긴 어려울 것 같다. 정부의 기조가 어떻게 가고있냐도 핵심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작은 정부를 추구하고 시장 자율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해당 이슈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면 정부는 국회가 합의에 이를 때까지 보고만 있겠다는 것인가.
작은정부는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지, 시장 방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사업자 간 협상이 힘에 의해 이뤄진다면 일정부분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정부는 ‘작은정부’라는 가면 아래 여야의 협치만을 기대할 것이 아닌, 국회와의 협치를 통해 ISP와 CP 간 갈등 해결을 위해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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