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정혜원 기자]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전기차 배터리 관련 규제가 구체화와 적용 시기가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29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IRA 배터리 관련 규제에 대비해 리튬 확보 경쟁은 물론 리튬 정제 지역을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미국이 도입한 IRA에 따르면 배터리에 들어가는 광물 채굴과 정제·제련 등이 일정 비중 이상 북미 및 북미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나라에서 이뤄져야 세액공제 혜택을 적용받을 수 있다.
미국 정부는 당장 내년부터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지만 사실상 적용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동환 국제전략자원연구원장은 “채굴된 리튬이 거의 대부분 중국을 거쳐 정제되는데 미국이 성급하게 IRA를 추진한 듯하다”며 “미국 내에서도 반발이 커 당장 세부사항을 구체화하고 내년부터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튬이 비교적 세계 여러 곳에서 채굴되지만 배터리 소재로 쓰이려면 수산화리튬이나 탄산리튬으로 정제 및 가공 과정을 거쳐야 한다. 현재는 배터리 소재로 쓰이는 리튬의 70% 정도가 중국에서 정제·가공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기업들은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 테슬라는 배터리 제조의 핵심 원료인 리튬을 정제하기 위한 시설을 미국 텍사스만 연안에 구축할 계획이다. 주정부 승인을 받으면 올해 4분기 착공해 2024년 가동이 목표다. 그간 테슬라는 중국 공장을 중심으로 전기차 생산 및 공급망 체계를 구축해왔지만 IRA 대비 차원에서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LG에너지솔루션도 캐나다 광물업체 일렉트라, 아발론, 스노레이크와 각각 업무협약을 맺고 배터리 핵심 원재료인 황산코발트·수산화리튬 등을 공급받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두 업체 모두 적어도 2024년에야 정제된 리튬 공급을 줄일 수 있는 실정이다. 테슬라의 경우 당장 탄소배출을 늘리는 시설을 미국 현지에 짓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서도 배터리 관련 규제와 세부사항을 빠르게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전기차 공급 차질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앞서 그는 2030년까지 미국 신차 판매량 대비 전기차 비중을 절반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게다가 배터리의 필수 원재료인 리튬은 전기차 시장 성장과 함께 가격이 급등했다. 장기적으로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돼 ‘하얀 석유’라는 별칭을 얻은 만큼 리튬 광물도 조달하기 쉽지 않을 예정이다. S&P 글로벌 플래츠(S&P Global Platts)는 2030년 글로벌 리튬 수요가 2021년 50만 톤에서 2030년 200만 톤으로 늘어날 것이며 리튬 부족량이 22만톤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을 구축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며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단기간 내 새로운 공급처를 찾기 어려울 뿐더러 찾더라도 실제 공급이 이뤄지기까지는 해당 국가 역량에 크게 좌우되는데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이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유럽연합(EU)과 일본 등과 함께 미국 정부에 규제의 불합리함을 어필하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라며 “IRA를 차치하고서 신(新)자원민족주의 심화와 공급망 차질에 대비해 장기적 관점에서 자원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