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정혜원 기자] “기술력이 외교력이다. 기술력이 있으면 우방이 되고 없으면 무릎을 꿇고 굴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미국이 당장은 중국을 고립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메모리 1위인 한국을 따라잡고 대만을 추월하는 것이 목표다.”
28일 양향자 무소속 국회의원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반도체·인플레감축법(IRA) 등 미국 공급망 재편과 한국의 대응 전문가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양 의원은 국민의힘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양 의원은 “미국이 건물주, 우리가 세입자라고 볼 수 있는데 미국 기업의 원천기술과 특허 없이 반도체 산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미국이 압도적 기술 우위를 점한 상황에서 미국과는 전략적 동맹관계를 맺어야 하고 중국과는 글로벌 가치사슬 측면에서 협력적 공생관계를 가져가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표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미국이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고 첨단산업 패권을 주도하려는 상황에서 정부 차원의 전략적 대응이 중요한 상황임을 강조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은 “미국 바이든 정부가 11월 중간선거에서 좋은 평가를 받게 되면 불합리한 ‘반중(反中)감성’에 호소하는 불합리한 조치들이 더 나올 수 있고 중국도 시진핑 3기 정권에 들어서면 미국에 반발하는 입장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한국이 대응하기 더 어렵고 골치 아픈 국제 정세가 조성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연 팀장은 이어 “한국은 가만히 기다리기보다 한미 정책 공조를 위한 대화와 협상에 적극 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IRA법으로 미국 현지 생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면 기존 한국에서 수출하는 물량이 크게 줄어든다”며 “이는 국내 부품산업 등이 위축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등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먼저 미국과 협상을 통해 우리 수출차에 대한 예외 인정 등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현지 공장 가동을 앞당기는 조치와 함께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때 우리에게 유리한 조항을 반영하고 자유무역협정(FTA)를 기준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동환 국제전략자원연구원장은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기술력보다 공급망 관리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대다수 배터리에 필수 소재로 쓰이는 리튬의 경우 여러 국가에서 구할 수는 있지만 모두 중국에서 탄산화 혹은 수산화 등 가공과정을 거쳐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체에 전달된다. 김 원장은 “리튬 가공 및 희귀 금속(희토류) 제련 등의 과정은 거의 전부 중국을 거친다”며 “한국이 장기 투자를 통해 배터리 소재 관련해 안정적 공급망을 구축해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