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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지금 사용 중인 슈퍼컴퓨터가 중국산이다 뭐다 말도 많고 카더라도 많은데 진실이 뭘까요”
최근 <정부, 세계 10위권 슈퍼컴퓨터 도입한다…예타 통과>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습니다. 국가에서 운영 중인 슈퍼컴퓨터가 중국산인지 궁금하다는 내용인데요.
우선 슈퍼컴퓨터를 운영하는 국가기관으로는 대표적으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과 기상청을 들 수 있습니다. 정부는 통상 5년 주기로 최신 기술이 적용된 슈퍼컴퓨터를 도입하고 있는데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번에 정부가 도입한다는 ‘세계 10위권’의 국가 슈퍼컴퓨터는 KISTI에서 도입하는 차기 슈퍼컴퓨터(6호기)로 최근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통과했습니다.
예타는 사회간접자본(SOC), R&D, 정보화 등 대규모 재정 투입이 예상되는 신규 사업에 대해 경제성, 재원조달 방법 등을 검토해 사업성을 판단하는 절차를 뜻하는데요. 선심성 사업으로 인한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해 1999년 도입됐습니다.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이면서 국가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건설사업, 정보화사업, 국가연구개발사업 등이 그 대상입니다. KISTI 슈퍼컴퓨터 6호기는 2023년부터 6년 간 총 2929억원의 사업비를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인 만큼, 예타 대상인 것입니다.
이제 막 예타를 통과한 만큼, 아직 어떤 시스템을 사용할 것인지는 모릅니다. 참고로 여태까지 KISTI가 도입했던 1호~5호기 제품을 보면 미국 크레이와 IBM, 일본 NEC, 썬마이크로시스템즈 등이 활용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댓글에 달린 ‘중국산’ 슈퍼컴퓨터는 무엇이냐. 이는 지난 2019년 기상청이 도입한 슈퍼컴퓨터 5호기를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운영 중인 기상청의 슈퍼컴퓨터 5호기 ‘구루’와 ‘마루’가 중국 레노버 제품으로 구축됐기 때문입니다. 당시 도입 비용만 600억원 이상이었습니다.
현재 충북 청원 오창과학산업단지 내 국가기상슈퍼컴퓨터센터에서 운영되고 있는 ‘구루’와 ‘마루’는 지난 6월 발표된 전세계 ‘톱500’ 슈퍼컴퓨터 순위에서 각각 31·32위에 오른 바 있습니다. 이는 물리적으로 분리된 동일한 성능을 갖고 있습니다. 앞서 기상청이 도입한 1~4호기 슈퍼컴퓨터 기종을 살펴보면, 일본 NEC와 미국 크레이 밖에 없습니다. 참고로 크레이는 지난 2019년 HPE에 인수됐습니다.
중국 제조사 슈퍼컴퓨터가 국내 공공기관, 그것도 국가의 기상관측(예보)을 담당하는 기상청에 도입된 것은 처음이었던 데다가, 당시 화웨이 백도어 이슈 등과 관련해 중국 정보통신기술(ICT) 제품과 관련한 우려가 있던 시기였던 만큼 일각에선 국가안보에 문제가 생길 수 있지 않냐는 지적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기상청은 당시 절반 밖에 되지 않는 일보예보 적중률 탓에 ‘오보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데, 5호기 도입 이후 저렴한 중국산 슈퍼컴퓨터를 쓰기 때문에 자꾸 틀리는 거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지요.
하지만 이는 사실로 보기 어렵습니다. 슈퍼컴퓨터의 역할은 기상예보관들의 판단 근거가 되는 수치를 계산해 낼 뿐, 실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상 관측용 수치예보모델입니다. 그동안 기상청은 영국 예보모델을 적용해왔는데, 5호기부터는 자체 개발한 한국형 수치예보모델을 적용해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하드웨어보다 수치예보모델과 같은 소프트웨어 역량이 더 중요하고, 최근 이상기후로 날씨 예측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많아져 기상 예보가 더 어려워진 것도 사실입니다. 기상청이 슈퍼컴퓨터를 원하는대로 도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상청은 국가 조달 프로세스를 통해 기술과 가격 등을 고려해 업체를 선정하는데, 당시 레노버는 크레이와 치열한 결합을 벌인 것을 알려집니다. 현재 기상청에 구축된 레노버 슈퍼컴퓨터는 제온 플래티넘 프로세서(아이스레이크) 기반의 씽크시스템 SD650 V2를 기반으로 30만6432코어가 탑재됐고 이론성능은 51페타플롭(PF), 1개 시스템 당 25.5PF의 성능을 냅니다. 25.5PF는 1초에 2.55경번의 연산이 가능한 수치입니다.
또, 레노버가 중국기업이긴 하지만 그 기술 역량은 미국에서 왔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레노버는 2005년 IBM으로부터 PC사업부를 인수한데 이어 2014년엔 x86 서버 사업까지 넘겨받으면서 기업용 하드웨어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슈퍼컴퓨터 사업에 진출하게 된 것도 당시 인수한 IBM의 x86 서버가 기반이 됐던 것이죠.
중국 슈퍼컴퓨터 구축 역량도 무시하기 힘듭니다. 최근엔 미국이 전세계 1위 슈퍼컴퓨터 지위를 누리고 있지만, 지난 2017년 11월까지만 해도 중국 우시 국가컴퓨팅센터의 ‘선웨이 타이후라이트’가 1위를 차지한 바 있습니다.
지난 6월 기준으로도 ‘톱 500’ 슈퍼컴퓨터 중 가장 많은 대수(173대)를 보유한 것도 중국이었습니다. 업체별로는 레노버가 161대 슈퍼컴퓨터를 순위에 올렸습니다. 레노버는 우리나라 기상청 외에도 독일 라이프니츠 슈퍼컴퓨팅 센터와 미국 하버드 대학교 문리대학부 연구 컴퓨팅센터(FASRC)와 스페인 바르셀로나 슈퍼컴퓨터센터(BSC) 등에 수냉식 슈퍼컴퓨터를 공급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