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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국내CP는 국내ISP에 망을 연결했으니 돈 내는 건데, 해외CP는 왜 국내ISP에 돈을 내야 하나요? 해외ISP에 돈을 내고 있으면 된 것 아닌가요?”
얼마 전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간 망 이용대가 소송을 다루는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습니다. 해외 콘텐츠제공사업자(CP)인 넷플릭스가 왜 국내 인터넷제공사업자(ISP·통신사)인 SK브로드밴드에 망 이용대가를 내야 하냐는 물음이었죠. 넷플릭스는 국내ISP에 망을 연결하지도 않았고, 해외ISP(아마도 미국 통신사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에 돈을 내고 있으니 추가로 국내ISP에는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①일단 넷플릭스는 현재 전세계 어느 ISP에도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과거에는 낸 적이 있습니다.) ②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 망에 접속해 (심지어 ‘넷플릭스 전용망’으로) 콘텐츠를 전송하고 있습니다. ③SK브로드밴드가 말하는 망 이용대가는 트랜짓(transit·중계접속)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엄밀히 말해 피어링(peering·직접접속), 그 중에서도 페이드 피어링(paid peering)에 해당합니다.
하나씩 찬찬히 뜯어보겠습니다. 우선 넷플릭스가 해외ISP에 돈을 내고 있다는 지적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전세계 어떤 ISP에도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는다고 단단히 강조하고 있거든요. 토마스 볼머 넷플릭스 글로벌콘텐츠전송디렉터는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해 기자들에게 “넷플릭스가 해외ISP에 망 이용대가를 지불한다는 주장에 반박하고 싶다”며 “과거엔 그랬을지 몰라도 현재는 어느 ISP에도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SK브로드밴드에도 낼 수 없다는 입장인 것이죠.
두 번째로, 넷플릭스는 이미 SK브로드밴드 망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2016년 1월 처음으로 직접연결을 했는데, 넷플릭스가 미국 시애틀의 인터넷연동서비스(IXP)를 통해 SK브로드밴드 망에 접속한 겁니다. CP는 IXP 사업자와 계약하면 포트 비용만 지불하고 또 다른 ISP와 연결할 수 있거든요. 이를 퍼블릭 피어링(public peering)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프라이빗 피어링(private peering), 그러니까 개별 ISP와 직접 계약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비스 품질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넷플릭스가 서비스를 확장하면서 트래픽이 급증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더 이상 퍼블릭 피어링으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는 협의를 합니다. 2018년 5월 미국 시애틀 IXP를 한국에서 좀 더 가까운 일본 도쿄 IXP로 옮기고, 프라이빗 피어링 방식으로 ‘넷플릭스 전용망’을 구축해 연결한 것이죠. 다만 이 과정에 대해 넷플릭스는 “처음부터 망 이용대가 얘기가 없었으니 암묵적으로 무정산을 합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SK브로드밴드는 “트래픽 급증에 따른 이용자 피해 최소화를 위해 망 이용대가 문제는 유보한 것”이라며 반박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트랜짓’과 ‘피어링’에 대해 설명해보려 합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이해하기 쉬운 개념은 아닌데요. CP 또는 하위 계위에 속하는 국내ISP는 전세계 연결을 위해 상위 계위 ISP에 돈을 지불하고 접속하기도 합니다. 그럼 상위 계위 ISP는 전달받은 트래픽을 전세계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전송하죠. 주로 버라이즌·AT&T 같은 미국 통신사들입니다. 이런 접속방식을 중계접속, 바로 ‘트랜짓’이라고 합니다. 다만 트랜짓은 비용이 더 비싸고 서비스 품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피어링’은 CP 또는 ISP와 ISP간 직접접속 방식입니다. A 사업자와 B 사업자가 피어링했을 때, 각자 발생한 트래픽을 서로의 이용자에게 전달해주는 것이죠. 피어링은 무정산으로 이뤄지기도 하지만, 정산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을 ‘페이드 피어링’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A와 B 사업자가 피어링을 할 때, 서로 주고받는 트래픽 규모가 비슷하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A가 보내는 트래픽이 훨씬 많다면, 양사간에는 균형이 깨지겠죠. 그렇다면 A는 B에 돈을 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게 SK브로드밴드의 논리입니다. 막대한 트래픽을 그것도 일방적으로 전송하는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에 망 이용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번 재판에서도 양사는 이 점을 가지고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데요.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와 무정산 피어링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SK브로드밴드는 페이드 피어링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트랜짓이든 피어링이든 인터넷 생태계의 ‘관념’ 같은 것이기 때문에 딱딱 떨어지게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재판부는 다음 변론까지 트랜짓과 피어링의 개념에 대한 기술적 설명을 해줄 것을 양측에 주문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좀 더 두고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