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5G 28㎓ 대역 주파수가 어느 순간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정부와 통신3사간 동상이몽의 결과다. 정부는 28㎓ 대역에 투자하라고 등을 떠미는데, 통신3사는 뚜렷한 수익모델도 수요도 없으니 투자를 꺼린다. 이것은 정부의 고집일까, 통신사들의 고집일까. 모두가 답답하기만 한 상황이다.
지난 2018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5G 주파수로 3.5㎓ 대역과 함께 28㎓ 대역 주파수를 동시에 할당했다. 당시 주파수 할당 공고에선 “28㎓ 대역은 향후 시장 잠재력이 클 것으로 예상되나, 현재로선 불확실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잠재력에 베팅했고, 사업자들은 불확실성을 우려했다. 이후 전국망으로 투자된 3.5㎓와 달리 28㎓ 대역은 큰 성과 없이 5G 상용화 4년차를 맞았다.
왜 그랬을까? 보통 28㎓와 같은 초고주파 대역은 전파 도달거리가 짧고 회절성이 약해 저주파 대역 대비 훨씬 촘촘하게 기지국을 깔아야 한다. 더 많은 투자를 수반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정작 아직은 28㎓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없다. 현재 28㎓ 실증 사업은 지하철 와이파이 외에는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주파수 특성상 전국망은 어렵고, 새로운 B2C(고객용) 서비스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설상가상 과기정통부의 28㎓ 정책은 장관마다 오락가락이었다. 과거 최기영 장관 시절에는 “28㎓는 전국민 대상 서비스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28㎓는 대개 B2B(기업용) 분야에 쓰일 것”이라고 했다. 후임인 임혜숙 장관은 “28㎓는 전국망 성질의 주파수 대역이 아니다”라면서도 4만5000대의 28㎓ 기지국 의무구축 수량은 “다 설치할 수 있도록 (통신사를) 독려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현 장관인 이종호 장관은 5G 28㎓ 대역 활성화를 다시 주문했다. 이때 활성화를 한다는 것은 “B2B·핫스팟용을 우선하되 나중에는 B2C까지도 고려하겠다”는 게 과기정통부의 설명이다. B2C 서비스는 어렵다는 전임 장관들의 기조와 또 다르다. 지금까지 지하철 와이파이를 제외하고 28㎓를 활용한 서비스는 없는데도 말이다. 메타버스 등 새로운 활용사례가 나온다면 좋겠지만 아직은 먼 얘기다.
정부의 독촉 외에는 투자 요인이 없으니 통신사도 미적댈 뿐이다. 실제 정부는 통신사들에 28㎓ 주파수를 할당하면서 기지국 의무구축 수량까지 부과했지만 달성율은 미미하다. 통신3사가 구축해야 할 기지국 수는 각사 1만5000대씩 총 4만5000대이지만, 지난해 말까지 구축 완료된 기지국 수는 5059대(11.2%)에 불과했다. 정작 통신3사는 투자 비용의 대부분을 회계상 손상처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그래서 정부가 28㎓ 정책을 새로운 방향으로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8㎓는 전국망이 아닌 특정지역 공간망으로 새롭게 정의한다든지, 비면허 대역으로 전환해 연구개발(R&D)망으로 활용하는 등의 대안도 나와 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28㎓ 대역을 상용화했다가 별다른 비즈니스모델을 찾지 못한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사례를 면밀히 분석해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과기정통부 입장도 이해는 간다. 말이 좋아 정책 재점검이지, 정부 입장에선 정책 실패를 인정해야 하는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28㎓ 대역 활용이 저조하기만 한 상황에서 종전 정책을 고수하는 게 바람직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다행히 과기정통부는 통신사업자들 및 전문가들과 함께 28㎓ 정책 협의를 위한 워킹그룹을 발족하겠다고 한다. 이전과 다른 전향적인 방향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