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데이(D-Day). 사전적 의미는 중요한 작전이나 변화가 예정된 날입니다. 군사 공격 개시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엄청난 변화를 촉발하는 날. 바로 디데이입니다. <디지털데일리>는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에 나름 의미 있는 변화의 화두를 던졌던 역사적 디데이를 기록해 보고자 합니다. 그날의 사건이 ICT 시장에 어떠한 의미를 던졌고, 그리고 그 여파가 현재에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를 짚어봅니다. <편집자 주>
[디지털데일리 이종현기자] 1988년 6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교 의과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대학원생이 국내 최초로 컴퓨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프로그램 ‘백신(Vaccine)’을 개발했습니다. 국내 최초로 백신을 개발한 그 대학원생은 오늘날 정치인으로 변모한 안랩 창업주 안철수이고, 그때 개발한 프로그램은 ‘V3’의 전신입니다.
의과대 대학원생이던 안철수 창업주가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은 우연에 우연이 겹친 결과입니다. 평소 컴퓨터에 관심이 많던 그는 우연히 잡지서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단어를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플로피 디스크를 검사해봤더니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개인용 PC서 발견된 최초의 바이러스로 불리는 ‘브레인 바이러스’입니다.
2022년 오늘날에는 익숙한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단어는 80년대만 하더라도 무척 생소했습니다. 국내에서 개인용 컴퓨터(PC)의 보급이 본격화된 것이 90년대라는 것을 고려하면 당연합니다. 초기에는 컴퓨터 바이러스로 플로피 디스크가 고장되더라도 원인조차 알지 못했는데, 국내에서 그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 안철수 창업주가 개발한 백신 프로그램입니다.
안 창업주는 1988년 6월 전문지식이 없는 이들도 바이러스를 없앨 수 있는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 무료로 배포했습니다. 6월 1일이 된 데는 다소 헤프닝이 있는데,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해 6월의 첫 날인 6월 1일로 했다는 내용입니다.
백신 프로그램 개발 및 무료 배포로 안철수 창업주는 평범한 의과대학원 대학원생서 전국구 ‘과짜 의사’가 됐습니다. 안 창업주는 이후 신규 바이러스가 보고될 때마다 치료법을 추가해 백신 개정판을 내놨습니다.
지금도 확인할 수 있는 90년대 자료에서는 안철수 창업주에 대한 호평이 이어집니다. 안철수 창업주가 논문이나 군 훈련 등으로 백신 업데이트를 못할 때 바이러스가 크게 전파됐다는 기록도 남아있습니다.
30년 전인 1992년까지만 하더라도 안 창업주는 “나의 본업은 의학이고, 나의 희망은 훌륭한 의학자가 되는 것이다. 컴퓨터는 취미로 하는 것이니 등산을 가거나 바둑을 둘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달이 새 바이러스에 대한 개정판을 발표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94년 군을 제대한 그는 95년 ‘안철수 컴퓨터 바이러스 연구소’를 설립하며 경영인으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안철수 창업주가 개발한 백신에 대한 일반 여론은 긍정 일색이었습니다.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꼭 필요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무료로 배포한 것은 오늘날 강조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사회적 기여에 딱 맞습니다.
성능과는 별개로, 백신을 개발해 무료로 배포한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주로 사이버보안 업계 관계자들 사이서 나오는 혹평인데, 백신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줘 산업이 성장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비판입니다.
안철수 창업주가 정치인이 되면서, 정치적으로 그에 대한 지지층이나 적대층 모두 크게 늘었습니다. 안 창업주가 나서지 않았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그 역할을 했다거나, 별 것도 아닌 것으로 대단한 체 한다는 등의 의견도 더러 보입니다.
그럼에도 34살이 된 백신, V3의 공로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 일부 부정 평가와 달리 V3가 AV-TEST, VB100, ICSA 등 사이버보안 제품들의 성능을 평가하는 글로벌 테스트에서 줄곧 우수한 평가를 받는 것 역시 사실이고요.
다만 최근에는 V3 외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백신 프로그램이 다양해짐에 따라 ‘사용 편의성이 떨어진다’, ‘제품이 너무 무겁다’ 등 다소 박한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특히 PC의 경우 운영체제(OS) 개발사인 마이크로소프트(MS)가 자사 OS에 고성능 백신 프로그램인 ‘윈도 디펜더’를 기본으로 탑재시키면서 개별 백신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크게 줄면서 존재감도 과거에 비해 낮아졌습니다. 과연 V3가 과거의 영광을 찾을 기회가 올지, 35살의 V3를 기다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