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데이(D-Day). 사전적 의미는 중요한 작전이나 변화가 예정된 날입니다. 군사 공격 개시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엄청난 변화를 촉발하는 날. 바로 디데이입니다. <디지털데일리>는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에 나름 의미있는 변화의 화두를 던졌던 역사적 디데이를 기록해 보고자 합니다. 그날의 사건이 ICT 시장에 어떠한 의미를 던졌고, 그리고 그 여파가 현재에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를 짚어봅니다.
[디지털데일리 이상일기자] 1971년 11월 3일 ‘유닉스 프로그래머 매뉴얼(Unix Programmer's Manual)’의 초판이 나왔습니다. 무슨 소리지?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유닉스’라는 단어 자체는 컴퓨터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해 현재 여러분들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애플 IOS 운영체제는 물론 리눅스, 맥OSX 등이 나올 수 있게 한 조상. 이른바 OS계의 시조새입니다.
유닉스는 1960년대 후반에 MIT대학과 벨 연구소에서 개발한 시분할 운영체제인 ‘멀틱스(Multics)’에서 발전한 운영체제입니다. 유닉스는 C언어로 작성되었으며 휴대용제품, 시분할 환경의 다중작업과 다중사용자 시스템을 위해 설계됐습니다.
유닉스는 켄 톰프슨과 데니스 리치 등이 개발을 주도한 끝에 1971년 첫 특허 출원에 성공합니다. 이러한 유닉스의 탄생은 서버 기술 자체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리고 1971년 11월 3일 ‘유닉스 프로그래머 매뉴얼(Unix Programmer's Manual)’이 나오면서 본격적인 상용 소프트웨어(SW)이자 서버로서의 유닉스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른바 사용자 층이 넓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된 셈이죠.
유닉스가 나오면서 개방형 운영체제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컴퓨터에는 컴퓨터 제조업체가 만든 특정 운영체제나 SW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컴퓨터 기업으로는 지금은 생소한 인터데이터(Interdata), 질로그(Zilog)를 비롯 모토롤라(Motorola), IBM 등의 기업이 있었는데 이들 컴퓨터에는 각 사의 독자적인 운영체제와 SW가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유닉스 운영체제는 이들 모두가 생산하는 컴퓨터에 이식이 가능했습니다. C언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유닉스는 여러 가지 컴퓨터 플랫폼에서도 거의 동일한 소스를 컴파일하면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특정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기업에 종속되지 않는 개방형 시스템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그동안 공급자 위주였던 시장이 소비자 위주로 변화하게 된 시발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유닉스의 어원은 유닉스의 원형인 ‘멀틱스(Multics)’의 대척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기능을 많이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능을 하나만 제공하자는 'UNICS'에서 나왔다는 설입니다. 다만 초기 개발자였던 켄 톰프슨은 유닉스를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 플랫폼으로 개발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유닉스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지는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인터넷의 탄생과도 비슷한데요. 유닉스 역시 초기에는 주로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서 연구원들끼리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하기 위한 시스템에 주로 사용됐습니다. 인터넷도 대학 내부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탄생했지요.
개방형 시스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던 유닉스는 아직도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주전산시스템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 클라우드의 발전으로 x86에 왕좌를 넘겨주고 있지만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디바이스와 컴퓨터 들이 유닉스에 빛을 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