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최민지기자]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망 사용료’를 내지 않겠다며 통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 정부기관 중 한 곳인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간 망 사용료 갈등 중재에 나선 과정에서 돌연 벌어진 일이다.
넷플릭스는 정부 중재를 무력화하는 ‘방통위 패싱’ 전략을 선택한 후, 장기전으로 이어지는 법정 소송에 나섰다. 넷플릭스가 한국정부를 무시하고 무임승차를 정당화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넷플릭스가 돌연 소송전에 돌입한 이유=넷플릭스는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했다. 넷플릭스는 트래픽과 관련해 망 운용, 증설, 이용에 대한 대가 지급 의무가 없다는 점을 법원에서 인정해달라는 내용이다.
보통 중재를 통해 방통위가 재정안을 도출하고 이해당사자가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민사소송을 제기하게 된다. 일정 기간 내 소송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민법상 합의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재정안이 나오기도 전, 협상 테이블에서 박차고 나왔다.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한국의 규제당국 판단을 받는 것보다, 소송을 선택하는 편이 유리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더군다나 중재가 끝난 후 소송에 가게 되면 사법부는 방통위 재정안을 참고하게 되는데, 이러한 리스크를 미리 막을 수 있다. 현재 법무법인 김앤장이 넷플릭스 대리인을 맡고 있다.
이번 소송과 관련해 넷플릭스 관계자는 ”LG유플러스, LG헬로비전, 딜라이브와의 협력사례와 마찬가지로 수차례에 걸쳐 SK브로드밴드에 협력을 제안해 왔다“며 ”재정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입장 간극이 크다는 점을 확인했고, 부득이 소를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번 소송이 이례적으로 방통위 중재 절차 중 이뤄졌다는 점이다.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 관련 법적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에, 방통위는 현재 진행 중인 관련 재정 절차를 종료할 수밖에 없다. 앞서, 지난해 11월12일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와 망 사용에 대한 갈등을 중재해달라는 재정 신청을 방통위에 접수했다. 이에 따라 방통위는 양측 입장을 취합한 후, 오는 5월 망 사용 갈등 재정안을 위원회 안건으로 상정할 예정이었다.
반상권 방통위 이용자정책총괄과장은 “전기통신사업법 45조에 따라 재정 절차 중 소송을 제기하게 되면, 중재절차는 중지된다”며 “재정과 같은 내용의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되면, 방통위는 법령에 따라 자동으로 손을 뗄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망 사용료 못 낸다” 해외에서는?=넷플릭스는 전세계 트래픽 15%를 차지하는 ‘트래픽 하마’로 불린다. 넷플릭스는 구글 유튜브와 함께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 전체 트래픽의 60~70%를 차지할 만큼 막대한 트래픽을 유발하고 있지만, 국내 ISP에게 망 사용료를 1원도 내지 않고 있다. 페이스북이 국내 통신사와 캐시서버 구축뿐 아니라 망 사용료 계약까지 체결한 선례와 반대되는 대목이다.
넷플릭스는 캐시서버를 포함한 ‘오픈커넥트(OCA)’로 망 사용료를 대신하려고 한다. 오픈커넥트는 통신사 네트워크에 캐시서버를 설치, 자주 시청하는 콘텐츠를 새벽시간대 미리 저장해 트래픽 과부하를 줄일 수 있도록 해준다. 새벽배송을 돕고 있으니, 망 사용료를 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넷플릭스는 미국‧프랑스 등 해외에서 망 사용료를 이미 지급한 바 있다. 서비스 속도 저하 문제와 망 중립성 규제에 대한 연방통신위원회(FCC) 패소 판결 등에 따라 넷플릭스는 미국 컴캐스트, 버라이즌, AT&T, 타임워너케이블을 비롯해 프랑스 오렌지 등 주요 ISP 사업자와 망 사용료 지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OCA 정책에 따른 캐시서버만으로 ISP 망 부하를 책임질 수 없다는 의미다. 현재 SK브로드밴드는 차선책으로 일본 넷플릭스 캐시서버와 트래픽을 소통하고 있으며, 한‧일 구간 국제회선 비용 및 국내 구간 트래픽 소통 비용을 자사 투자비로 부담하고 있다.
대형 글로벌 콘텐츠제공사업자(CP)가 망 사용료를 내지 않겠다고 하면서, 국내 CP와 형평성 문제도 나타난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은 현재 해외 CP보다 약 6배 많은 망 사용료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넷플릭스 요구를 수용한다면, 사실상 국내 CP에게만 비용을 떠넘기는 역차별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폭증하는 트래픽, 설비투자비는 통신사 몫=SK브로드밴드만 살펴보면, 최근 3년간 8000억~9000억원원 규모의 설비투자를 집행하고 있는데, 이 중 넷플릭스 등 해외서비스를 위한 해외망 확충 및 우회루트 확보도 포함된다. 지난해부터 넷플릭스 가입자와 트래픽이 본격 증가하게 되면서, 해외트렁크 증설도 추진하고 있다. 올해에는 넷플릭스가 ‘킹덤2’를 공개했을 뿐 아니라,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이용고객도 크게 늘었다. 이에 지난달에만 인터넷 트래픽 용량을 두 차례 증설했다.
이러한 가운데, 넷플릭스는 유럽연합(EU) 집행부 요청에 따라 이탈리와 스페인을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 비트레이트(시간당 송출하는 비트수)를 25% 줄여 동영상서비스를 제공했다. 화질을 낮춘 것이다. 그러면서, 국내에는 인터넷 인프라가 안정적이라 망 효율화 정책을 도입하지 않겠다고 했다.
CP가 망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될 경우, ISP 망 자원을 절약해 사용할 유인이 전혀 없다는 점을 방증한다. 또, 트래픽 유발량 규모 결정권은 CP에게 있다는 부분도 드러나는 사례다. CP는 콘텐츠 해상도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데, 콘텐츠의 품질 수준은 트래픽과 직결된다. 동일한 동영상이라 할지라도 SD급과 UHD급을 전송할 때는 트래픽 차이가 8배까지 난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OTT 서비스 트래픽을 안정화하기 위한 ISP 사업자들의 투자 부담은 결국 소비자에 대한 요금 인상과 같은 부담으로 되돌아오기 마련”이라며 “늘어나는 인터넷 트래픽 증가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과감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