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UHD 지상파 방송이 시작된지 2년이 넘었지만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사업자는 약속했던 투자, 제작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고 정부는 그러한 사업자를 위해 기존의 정책을 재검토하고 있다.
국내 지상파 방송 3사는 2017년 5월 31일 수도권을 시작으로 세계 최초 지상파 UHD 방송을 시작했다. 벌써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현재 지상파 UHD 수신율은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지상파 UHD 방송, 실제 수신율 1% 남짓
최근 판매되는 TV 대부분은 UHD TV다. 그리고 가끔 지상파 콘텐츠 중 오른쪽 상단에 선명하게 UHD라는 단어가 박혀있다.
하지만 실제 시청자가 보는 방송은 UHD 방송이 아니다.
지상파 UHD 방송을 보려면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UHD TV를 구매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UHD 지상파 방송은 케이블TV나 IPTV 등 유료방송에서 재송신이 되지 않는다. 재송신 대가 등 여러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다. 여튼 지상파 UHD 방송을 시청하려면 안테나를 구매해 설치해야 비로소 지상파 UHD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통상 지상파 방송의 직접수신율은 5% 가량으로 추산되고 있다. 2018 방송매체이용행태조사에 따르면 UHD TV 보유 가구는 9.5%다. 5% 시청자 중 10% 정도의 비중. 지상파 UHD 방송의 수신율이 어느 수준인지 대강 산출이 가능할 것이다.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안테나를 달았다고 치자. 이제 거실에 TV 제조사들이 홍보하는 쨍한 화면의 UHD 세상이 열리는 것일까.
수고스럽게 직접수신 환경을 구축해도 이용할 콘텐츠는 많지 않다.
올해 6월까지 지상파 3사의 UHD 프로그램 편성 비율은 KBS1TV가 13.7%, KBS2TV가 11.4%, MBC가 10.5%, SBS가 12.7%였다. 방통위가 지상파 UHD 방송국 허가조건으로 부여한 UHD 의무편성 비율은 2017년 5%, 2018년 10%, 2019년 15% 이상이다. 3사 모두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이다.
플랫폼 지위 유지하고 싶었던 지상파, 700MHz 주파수의 비극
세계 최초라며 호들갑을 떨었던 지상파 UHD는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됐을까. 왜 지상파 방송사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일까.
지상파 UHD 방송에 대한 논란의 시발점은 700MHz 주파수였다.
700MHz 주파수는 효율성이 매우 높다. 통상 저대역 주파수들이 효율성이 좋다. 이 대역은 2013년 1월 아날로그 방송 종료로 유휴대역이 됐다. 경제적 가치는 물론, 효율적 측면에서도 통신쪽이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주파수 정책은 국제적인 조화가 중요한데 국제표준화기구인 ITU에서 이동통신 공통대역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들은 “주파수를 통해 무료로 UHD 방송을 서비스해야 콘텐츠 생산이 늘어나고 UHD 시장이 활성화 될 수 있다”며 방송용 분배를 적극 주장했다. 대규모 투자도 약속했고 정 안되면 나중에 반납하겠다는 의견까지 제시했다.
결국 국회(당시 미방위)가 개입하면서 700MHz는 통신방송용으로 쪼개지게 됐다. 지상파 방송사들의 파상공세에 국회, 정부가 손을 들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통신사들과 달리 지상파 방송사들은 주파수 이용대가도 내지 않는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700MHz 주파수에 집착한 것은 콘텐츠 사업자가 아닌 플랫폼 사업자의 지위를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록 직접수신율은 5%에 불과했지만 주파수를 보유함으로써 다른 PP들과는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허울뿐인 세계최초, 국회·정부·사업자 모두 책임
하지만 700MHz 주파수는 지상파에게 행복을 안겨주지 못했다. 700MHz 주파수를 받음으로써 부여됐던 의무들은 족쇄가 되고 있다. 또한 결과적으로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지닌 700MHz 주파수를 놀리는 상황이 됐다.
황금주파수를 통해 UHD 지상파 방송을 보는 시청가구는 1%에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의 UHD 편성비율이 100%가 돼도 700MHz 주파수 활용도가 높아지지는 않는다. 방송의 공익성, 보편성을 감안해도 지상파 방송을 재송신하는 유료방송이 넘쳐나는 상황을 감안하면 700MHz 주파수를 통한 지상파 UHD 방송서비스 정책은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투자비 없어 드러누우니 정부는 "정책 환경이 변화됐다"며 지상파 방송사들을 배려한 정책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방통위와 과기정통부는 협의체를 구성하고 새로운 지상파 UHD 방송 정책방안을 수립하기로 했다. 내년 7월께 발표될 예정이다. 방통위는 이달 18일 새로운 정책방안 수립 전까지 의무편성비율을 낮춰주는 내용을 담은 임시 기준까지 마련해 발표했다.
정책환경 변화는 다름 아닌 지상파 방송사들의 경영악화였다. 하지만 수년전에도 지상파 방송사들의 재무상태는 좋지 않았고 개선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측됐다. 정부도 알고 있었고 지상파도 알고 있었다.
지난 8월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UHD 신규허가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고삼석 상임위원은 "2년반전 이같은 상황이 예측됐고 예측한대로 나타났다"며 "근본적으로 지상파 UHD 정책을 원점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와서 환경이 변했다고 말하는 정부나 집안 곳간 상황은 아랑곳 하지 않고 투자약속을 남발한 방송사나 모두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극소수만 이용하는 지상파 UHD 정책 근본적 변화 필요
현재 주파수를 통한 지상파 UHD 방송을 하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좋은 의미로는 세계 최초인데, 당분간 세계 최초 타이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5G 세계 최초 경쟁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효율적이고 좋은 것이었다면 다른 나라 방송사나 정부는 가만히 있었겠는가. 앞으로도 전세계적으로 주파수를 활용한 UHD 방송이 보편적 서비스 형태가 될 가능성은 낮다.
정부는 정책변경에 대해 UHD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 정책을 변경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들의 경영환경 변화가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 미디어 시장 자체가 급변하고 있는데 소수만 이용하는 지상파 직접수신 활성화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에너지를 소비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많은 유료방송 사업자들이 경쟁하고 심지어 네트워크 품질은 세계 최고이면서 가격은 최저 수준이다. 처음부터 유료방송 플랫폼을 활용한 UHD 방송을 고민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플랫폼 지위를 누리고자 했던 지상파와 그들과 대립각을 세우기 부담스러웠던 정치인과 정부의 태도가 현재의 상황을 만들었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유료방송 재송신도 이뤄질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UHD 콘텐츠도 늘어날 것이다. 방송, 동영상 산업의 생태계는 UHD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세계최초로 주파수를 활용한 지상파 UHD 서비스의 기여도는 높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