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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하영 칼럼

[취재수첩] 을의 전쟁


[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우여곡절 끝에 망 이용계약 가이드라인을 내놨지만 남은 길이 순탄치 않다. 인터넷제공사업자(ISP·통신사)와 달리 콘텐츠제공사업자(CP)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가이드라인 제정을 반대하는 성명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국내 콘텐츠 업계는 정부가 사업자 간 사적 계약에 직접 개입할 수 없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무엇보다 망 이용계약에 대한 규제는 곧 망 사용료 인상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스타트업 등 중소 CP들의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주장이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의 근본 취지를 보면 제정 자체를 반대할 일은 아니다. 가이드라인의 목적은 우월적 지위를 가진 특정 사업자의 불공정행위와 이로 인한 이용자 피해를 막자는 데 있다. 즉, 계약 협상력이 큰 한쪽 사업자가 상대방에게 ‘갑질’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갑을 관계는 상대적이다. 국내 CP에겐 통신사가 갑이겠지만, 통신사에겐 글로벌 CP가 ‘수퍼 갑’이다. 국내 데이터 트래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글과 넷플릭스는 망 대가를 전혀 내지 않는다.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조차 거부하니 통신사들은 발만 동동 구르는 처지다.

비용을 내야 할 이들이 내지 않으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을’들에게 간다. 글로벌 CP의 무임승차로 발생한 공백을 국내 통신사와 CP, 그리고 이용자가 메워야 하는 형국이다. 망 이용계약을 둘러싼 국내외 기업 간 역차별 문제도 결국은 이 기울어진 운동장 탓이다.

대신 중소 CP를 위한 보호장치는 있어야 한다. 가이드라인 적용 대상을 특정 매출 이상 대규모 기업에 한정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망 이용계약 분쟁이 을끼리 싸워야 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기 부담을 전가하는 수퍼 갑, 글로벌 CP에게로 화살을 겨누어야 한다.

<권하영 기자>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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