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최근 수년간 계속된 국내외 사업자 간 망 이용계약 분쟁을 중재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초안을 공개했다.
망 이용계약 분쟁의 핵심은 국내 인터넷제공사업자(ISP·통신사)가 콘텐츠제공사업자(CP)와 망 이용계약을 체결할 때 국내외 사업자들의 지위에 따른 협상력 차이로 차별적인 대가를 산정하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구글 등 해외 CP 대다수가 내지 않는 망 사용료를 국내 CP들은 내야 하는 역차별 문제가 생긴다. 국내 대·중소 CP 간 차별도 발생할 수 있다.
5일 방통위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망 이용계약에 관한 가이드라인’ 초안을 공개했다. 앞서 방통위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제1기 인터넷 상생발전협의회의 제안에 따라 가이드라인 마련에 착수, 작년 11월부터 공동 연구반을 구성해 추진해왔다.
방통위가 공개한 안에 따르면, 가이드라인의 목적은 ‘인터넷망 이용계약에 관한 원칙과 절차 등을 제공하여 인터넷망 이용계약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하여 인터넷 생태계가 지속적으로 상생 발전할 수 있도록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데 있다.
사업자 간 사적 계약의 영역인 망 이용 대가에 직접 관여하기보다는, 사업자들이 망 이용 대가를 산정하고 계약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공정행위’와 ‘이용자 이익 저해 행위’를 막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불공정행위는 ①이용계약 당사자가 상대방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계약을 요구하거나 ②상대방에게 현저하게 불리한 인터넷망 이용조건을 요구하는 경우 ③계약 체결 거부 또는 이면계약을 요구해 상대방에게 부당하게 불이익을 주는 조건을 설정하는 경우가 해당된다.
예컨대 ▲우월적 지위를 통해 상대방에게 특정 계약 내용을 강요해선 안 되고 ▲불합리한 사유로 계약을 지연·거부할 수 없으며 ▲정당한 사유 없이 제3자와의 이용계약 체결·거부를 요구하거나 ▲제3자와 공동으로 경쟁을 제한하는 부당 계약조건을 제시해선 안 된다.
‘부당함’의 판단 기준은 사업자별 이해관계와 시장 상황을 참고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인터넷망 구성과 비용분담 구조가 어떤지, 사업자들의 콘텐츠 경쟁력 또는 사업 전략이 어떤지, 대량구매 또는 장기구매에 따른 할인율이 적용됐는지 등이다.
이용자 보호 측면에선 ISP와 CP의 의무를 명시해 지키도록 했다. 먼저 ISP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인터넷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비 운영 등과 관련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며, 그럴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CP 등과 미리 협의해야 한다.
CP는 인터넷 트래픽의 경로 변경 또는 트래픽 급증으로 인해 이용자에게 현저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예상될 경우 사전에 ISP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도록 했다. 아울러 ISP와 CP 모두 계약 변경·종료에 따른 이용자 피해가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밖에 가이드라인은 사업자 간 계약 체결 원칙을 정립하고 있다. 계약 규모와 내용이 유사한 경우 계약을 비차별적으로 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서면계약이 원칙이라고 명시했다. 또 계약서에는 서비스 이용 관련 민원을 처리하기 위한 절차를 비롯해 전송용량 및 이용 기간 등이 포함돼야 한다.
가이드라인 안은 제정 후 한달이 지난 시점부터 시행된다. 시행일을 기준으로 매 3년이 되는 시점마다 타당성을 검토해 개선 조치를 취해야 한다. 방통위는 이번 안과 관련해 공청회를 거쳐 시민단체 등 추가적인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이후 과기정통부와 협의를 거쳐 연내 방통위 보고안건으로 올리기로 했다.
그러나 ISP들은 실효성 없는 안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구글과 넷플릭스 등 해외 CP 대상 강제력이 없어 국내 기업들만 준수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반면 CP들은 사업자 간 사적 계약에 정부가 개입해선 안 된다며 가이드라인 제정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반상권 방통위 이용자정책총괄 과장은 “가이드라인이 강제력은 없지만, 사업자 간 다툼이 있을 때 정부가 중재하거나 관련 법을 해석할 때 지침이 될 수 있고 입법 시에도 참고될 수 있다”면서 “최대한 사업자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반 과장은 “망 이용계약은 국내외 불문 사업자 간의 사적 계약에 해당하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면서 “다만 계약 체결 과정에서 불공정행위나 이용자 이익 침해가 발생할 경우에 한해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