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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혁신 불가피한 시대, 파괴는 좀 빼고

[디지털데일리 이형두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란 개념이 자주 거론된다. 최근 국내 정보기술(IT) 업계에서 혁신과 파괴가 같이 언급되는 경우가 잦은 것도 이 영향인 듯 싶다. 특히 혁신적인 플랫폼 기업과 전통 산업이 대척할 때, 전통 산업을 ‘파괴’한다고 표현된다. 파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탓도 있어 보인다.

지난 3일 김수민 의원은 공유경제 토론회에서 “혁신이 잔인하고 파괴적인 모습으로 올 수 있다”고 했다. 택시업계도 통상 “카풀은 교통 생태계를 파괴한다”고 한다. 5일 열린 인터넷기업협회 행사에서도 국내 인터넷기업 대표들에게 ‘혁신에 수반되는 불가피한 파괴적 행위, 그리고 포용적인 성장론’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파괴당하는 주체가 구체적으로 명시된 질문은 아니었다. 내부 혁신 방법론 등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었다. 그럼에도 카카오 여민수 대표는 “질문이 어렵다”면서 ‘혁신이 불러오는 기존 산업 및 제도와 갈등, 그리고 이를 봉합하는 방법에 대한 기업의 의견’으로 질문 의미를 해석했다. 그리고 카카오택시와 택시의 문제를 언급했다.

뚜렷한 해법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는 “플랫폼이 일상생활에 대한 후생을 증가시켜, 주체들이 혁신의 효과를 같이 누리는 방향으로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나”고 제시했다.

이어 직방 안성우 대표는 “파괴라는 것은 저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수요에 의해, 사용자들에 의해 시장이 스스로 파괴됐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파괴라는 단어의 무게에 부담을 느낀 대답으로 느껴졌다.

비바리퍼블리카 이승건 대표는 “‘파괴적 혁신’이 시장에 더 넓게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면 당당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결국 이것은 온고의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고, 시장에서 교통정리 해주는 정부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기존 산업 파괴’에 대한 화두를 다시 ‘파괴적 혁신’ 개념으로 가져왔다.

파괴적 혁신은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 경영대학원 석좌교수가 창시한 단어로 알려져 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점진적인 혁신을 거듭하는 모범적 기업은 승자로 남아있기 어렵다고 봤다. 기업 생존을 위해서는 이 같은 ’지속적 혁신‘ 대신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파괴적 혁신은 꼭 타자를 파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의 대비되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최근 제조업에서는 폴더블폰의 등장이 파괴적 혁신의 사례로 제시된다. 샤오미는 파괴적 혁신 중에서도 ‘로엔드(Low-End)' 파괴의 정석이다. 제품 수준은 낮아도 가격이나 접근성에서 혁신을 이뤄내는 경우다.

파괴적 혁신과 지속적 혁신을 구분하는 것은 사실 어렵다. 크리스탠슨 교수 역시 ‘파괴적 혁신’ 단어 남용 우려를 표한 적이 있다. 그는 지난 2015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를 통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혁신의 개념으로 옹호하기 위해’ 혹은 ‘업계가 재편되고 기업이 쓰러지는 모든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너무 광범위한 용어의 남용이 있다고 비판했다.

대표적으로 우버는 파괴적 혁신이 아니라 지속적 혁신의 사례라고 정리했다. 그는 “우버가 택시 비즈니스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하나, 택시 비즈니스를 ‘파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우버는 저가 시장을 공략한 것도 아니고, 택시 소비자가 아닌 고객을 타깃으로 한 것도 아니었다. 개선되고 저렴한 해결책을 제시해 총수요를 늘린 쪽에 가깝다.

물론 카카오택시나 직방이 우버 사례와 다를 수 있다. 전통산업에 혼란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 ‘파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환경 파괴’처럼 옳고 그름의 문제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심지어 해당 플랫폼이 ‘파괴적 혁신’에 속하는지 아닌지도 불분명해도 말이다.

지난해 인터넷 기업이 창출하는 경제적 가치가 최대 200조에 달한다고 한다. 이날 인기협 행사장에서 발표된 연구결과다. 매출 외에도 고용유발, 생산성 향상, 사회적 후생이 모두 포함된 수치다. 인터넷경제 위상을 제대로 알기 위한 연구라고 했지만, 마치 인터넷기업들이 ‘파괴자’가 아니라는 해명처럼 보였다.

<이형두 기자>dudu@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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