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인텔이 18일(현지시간)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실리콘을 활용한 반도체 산업 역사를 통틀어 이만한 영향력을 행사한 기업은 손에 꼽는다. 창업자 고든 무어의 ‘무어의 법칙’을 통해 지난 20년 동안 형성된 직간접적인 영향이 최소 3조달러(약 3369조원)에서 최대 11조달러(약 12경353조원)에 이르는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을 만들어낸 것으로 조사됐을 정도다.
우리나라에 끼친 파급력도 적지 않다.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앤디 그로브가 1967년 쓴 첫 번째 저서 ‘반도체의 물리와 기술’이라는 책 덕분에 전 삼성전자 황창규 사장(현 KT 회장)이 반도체에 평생을 바치기로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황 회장은 2006년 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가 수여하는 ‘IEEE 앤디 그로브 상’을 받았다. 동양인 최초였다. 재미있게도 팻 겔싱어(현 VM웨어 CEO) 인텔 최고기술책임자(CTO)자가 추천자 가운데 하나였다.
지금은 삼성전자가 D램, 낸드플래시 시장 1위를 기록하고 있으나 인텔은 한때 메모리 반도체로 먹고 살았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인텔을 제치고 매출 기준 세계 최대의 반도체 기업이 됐으니 보통 인연은 아닌 셈이다.
2010년대에 접어들며 인텔은 ‘위기’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미세공정 한계로 반도체 성능이 2년마다 두 배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져서다. 이런 가운데 모바일 사업의 부진, PC 산업의 침체 등도 악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공격적인 인수합병(M&A)과 함께 플랫폼, 솔루션, 서비스 등을 아우르며 사업 체질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성장의 선순환(Virtuous Cycle of Growth)’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이 즈음이다. 5세대(5G) 이동통신,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드론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요소를 확보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더 이상 중앙처리장치(CPU)와 같은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만들어 파는 기업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멋진 일, 미래 언급하며 사람 자체를 부각=앞서 언급한 것처럼 물리법칙의 한계로 인해 무어의 법칙이 폐기됐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런 부분은 인텔에게 있어 큰 장애가 아니다. 핵심은 ‘생태계’ 구축이다. CPU부터 이를 뒷받침할 입출력(I/O) 설계, 메모리 반도체, 유무선 통신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철학으로 구현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텔이 심어놓은 DNA는 데이터의 흐름이 어느 단계나 지점에서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순환하는 형태다. 모든 서비스는 사실상 네트워크를 통해 클라우드로 연결되고, 그 클라우드를 통한 서비스는 결국 다시 새로운 기기와 연결된다는 것이 인텔이 바라보는 성장의 본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텔이 공장을 보유하지 않은, 이른바 팹리스 기업으로 변신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해당 사업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라 분사, 혹은 아웃소싱 형태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10년 안에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영화에서나 보던 양자컴퓨터용 칩(Chip)도 이미 인텔이 개발하는 제품 가운데 하나다.
아직은 조금 먼 미래의 이야기지만 실리콘으로 사업을 유지하던 인텔이 양자컴퓨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데이터 폭증 시대의 가장 핵심이 되는 가치는 데이터를 생성하거나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세싱’ 그 자체에 있어서다. 이는 인텔이 반세기 동안 가장 잘해왔던 분야 가운데 하나다.
창립 50주년을 맞아 인텔은 기념품 이벤트와 드론쇼, 타임캡슐 등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멋진 일을 하라(Do wonderful)’는 말과 함께 오는 2068년, 창립 100주년을 겨냥해 ‘미래는 당신이 만는다(The future is what you make it)’고 강조했다. 지금 만나는 미래에서 주체가 ‘사람’이 된 셈이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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