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전문 블로그 미디어=딜라이트닷넷] 현재 디지털 기기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작동하는 반도체는 중앙처리장치(CPU)이다. 너무 빨라서 CPU 내부와 외부의 속도차이를 상쇄하기 위한 버퍼(Buffer)를 마련해야 했고, S램이 가장 널리 쓰였다. 하지만 S램은 D램보다 성능은 좋았지만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마음껏 용량을 늘릴 수 없었다.
20세기말인 1997년, 인텔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펜티엄’ 후속으로 ‘펜티엄Ⅱ’ 출시에 나섰다. 펜티엄Ⅱ는 메인보드에 박혀 있던 캐시메모리(S램)을 CPU 패키지 내부로 옮겼는데,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고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인텔은 삼성전자와의 거래량을 늘렸다. 당시 S램을 공급하던 업체는 삼성전자 외에도 NEC, 도시바 등이 있었다.
인텔은 중장기적으로 S램을 CPU 내부로 통합할 계획이었다. ‘펜티엄프로’가 그랬고 이후에 선보인 제온도 마찬가지였다. S램만큼의 가격을 마진으로 가져갈 수 있는데다가 CPU 성능을 한층 높일 수 있으니 당연한 처사였다. 반대로 S램을 제거해 가격을 낮춘 ‘셀러론’ 제품도 내놓는 것도 가능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거래처가 줄어들었으니 반가운 일은 아니다. S램을 내장한 ‘펜티엄4’가 나오면서 인텔과 삼성전자의 큰 거래는 끝이 났다.
최근 인텔은 AMD와 협력한 ‘코어H 프로세서’와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 ‘스트라틱스10 MX’를 각각 선보였다. 이들 제품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고대역폭 메모리(High Bandwidth Memory, HBM)의 채용이다. 비록 하나의 다이(Die)에 모든 요소를 집적한 것은 아니지만 멀티 코어 모듈(MCM)을 통해 하나의 패키지로 여러 가지 칩을 올려놨다. 인텔이 잘하는 작업 가운데 하나다.
코어H 프로세서, 스트라틱스10 MX에 적용된 HBM2 메모리는 모두 삼성전자가 공급한 제품이다. 이 분야에서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보다 상대적으로 진입이 늦었지만 지난해 엔비디아 테슬라 P100부터 시작해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현재까지 HBM2만 가지고 따졌을 때 삼성전자만큼 물량을 뽑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차피 제품을 제대로 만드는 업체도 SK하이닉스까지 딱 두 곳에 불과하다.
인텔이 사용한 삼성전자 HBM2를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과거 펜티엄Ⅱ·Ⅲ 시절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 인텔은 다이에 HBM2를 내장할 계획이 분명하다. 사실 마이크로프로세서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반도체가 궁극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럽 최대 반도체 기술 연구소(IMEC)는 CPU, 메모리, 컨트롤러, 각종 입출력(I/O)가 하나의 칩에 적층될 것으로 예상했다. 각 칩을 아파트처럼 쌓아올려 여러 개의 코어를 하나로 통합하고 메모리는 위쪽에, I/O를 아래쪽에 배치해 3D로 적층한다는 것. 통합 반도체 시대를 예고한 셈이다.
여기서 핵심은 통합이 아니다. 각 요소를 설계해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있느냐를 따져야 한다. 삼성전자가 자체 GPU 설계를 포기했다가 최근부터 다시 프로젝트를 가동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SK하이닉스는 어떨까. 자체 CPU, GPU를 설계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실 컨트롤러 기술부터 ARM 아키텍처를 사용하므로, 사실상 시스템온칩(SoC)을 이미 만들고 있다고 봐야 한다. 메모리, 비메모리 대통합이 시작된 것 같다.
[이수환기자 블로그=기술로 보는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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