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트럼프의 승리로 끝난 미국 대선에서 IT 업계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인물이 바로 페이팔 공동창업자로 잘 알려진 ‘피터 틸’이다. 그는 민주당지지 세력이 즐비한 실리콘밸리에서 거의 유일하게 트럼프를 지지한 인물이다. 125만달러의 선거자금까지 지원하면서 ‘왕따’가 됐지만 이제는 좋던 싫던 수많은 기업이 피터 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됐다.
주요 외신이 피터 틸의 역할론을 두고 트럼프 행정부의 각종 규제와 정책적 문제 등에서 실리콘밸리를 대변하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피터 틸은 자유시장경제체, 특히 독점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독점은 시장경제에 해롭다’는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그는 진보를 ‘수직’과 ‘수평’으로 나누고 수직적 진보를 통한 혁신을 가속화한다고 주장한다. 남들이 선풍기 크기를 키우고 날개를 늘릴 때 에어컨을 내놓고 시장을 혁신해야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피터 틸이 새 행정부에 정식으로 합류하게 되면 퀄컴을 비롯한 각종 반(反)독점 논란에 대한 시각이 어느 정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시장에서의 우위적 지배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독점이 아니라 압도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창조적 독점’이 대상이다. 자기 분야에서 너무 뛰어나 다른 기업이 감히 따라오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퀄컴은 통신, 특히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과 모뎀칩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화웨이, ZTE, 인텔, 미디어텍 등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굳이 퀄컴이 아니더라도 AP나 모뎀칩에 있어서 더 많은 선택권이 주어졌고 가격이나 성능, 개발의 편의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표준특허를 바탕으로 끼워팔기나 다른 업체가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등의 시장지배적 권리를 남용했다면 나오기 힘든 결과다.
돌아와서 피터 틸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는 미지수지만 적어도 퀄컴과 같은 혁신 기업의 활동에 지장을 주는 규제나 정책적 문제에 있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높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데 있어 걸림돌이 있다면 대상이 누구이건 간에 거리낌 없이 발길질을 할 태세다. 중국은 퀄컴이 독점적 지위를 가진 기업이라며 1조원이 넘는 돈을 벌금으로 부과했다. 동시에 법적인 위험성이 사라지면서 너도나도 퀄컴과 손을 잡기를 희망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과징금을 물림과 동시에 협력을 바라는 모습에서 기술적 장벽을 꼼수로 돌파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우리는 어떨까. 중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도 국내 기업으로부터 받아가는 특허 수수료를 낮출 수 있도록 힘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마치 퀄컴은 우리가 키웠으니 ‘이 정도’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일종의 부채의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정할 부분은 인정해야 한다. 한 기업이 시장을 독점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노력이 뒷받침돼서다. 말로만 외치는 혁신이 아니라 실질적인 부분에서 진보가 이뤄졌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중국처럼 무대포로 해결할 수 없다. 함께 혁신을 추진하고 있는 입장에서 서로의 공감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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