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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달라진 메모리 시장 판도

[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크기가 다르고 디자인도 제각각이지만 PC나 스마트폰은 모두 고도화된 디지털 계산기다. 간단히 말해 입력→처리→출력을 반복하는 컴퓨터다. 계산을 위해 중앙처리장치(CPU), 메인 메모리(주기억장치), 보조기억장치 사이에서 데이터를 주고받아야 한다. 특히 CPU 업체의 영향력이 상당했는데 이는 메모리 업계의 판도를 뒤흔들 정도였다.

인텔이 그랬다. PC가 널리 보급될 시점인 1990년대 초반 인텔은 CPU와 주기억장치인 D램을 이어주는 버퍼 메모리인 S램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삼성전자와 손을 잡았다. S램은 속도가 빠른 CPU와 상대적으로 느린 D램을 이어주는 역할로 쓰였다. 용량은 D램보다 작지만 성능이 높았고 가격도 그만큼 비쌌다. 흔히 얘기하는 L1, L2 캐시가 바로 S램이다.

CPU 외부인 메인보드에 장착됐던 S램은 펜티엄2부터 CPU 패키지로 함께 묶였고 펜티엄3 이후에는 CPU와 하나의 다이(Die)에 통합됐다. 삼성전자가 인텔에 S램을 공급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이 와중에 인텔은 주력 메모리로 쓰이던 EDO D램이 SD램으로 넘어간 이후 새로운 제품을 슬쩍 내놓게 됐는데 이게 바로 램버스 D램(RD램)이었다. 이후 잘 알려진 것처럼 RD램은 램버스의 라이선스 비용으로 인한 높은 가격, 메모리 컨트롤러 허브 결함으로 스스로 덫에 걸린 인텔 덕분(?)에 오래 쓰이지 못하고 곧 자취를 감췄다. 이후 시장은 DDR SD램으로 완전히 넘어왔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메인보드에 있던 메모리 컨트롤러까지 CPU 안에 함께 포함된 현재, 인텔의 영향력은 확실히 예전만 못하다. 최근 발표한 7세대 코어 프로세서(코드명 카비레이크)의 모바일 모델은 저전력 버전의 LPDDR4가 쓰이지 않는다. 작년 하반기 이후 출시된 주요 업체의 스마트폰에 LPDDR4가 적극적으로 활용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PC와 스마트폰, 태블릿과 같은 스마트 기기의 최신 메모리 적용 격차는 1년 이상 차이가 나는 셈이다. 메모리 종류는 결국 CPU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차원에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과거 인텔이 어떤 메모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메모리 업계는 큰 요동을 쳤다. 아이러니하게도 인텔은 창업 초기 접었던 메모리 사업을 다시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진지하게 사업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끼칠 영향이 적지 않다.

2000년대까지 이어졌던 메모리 치킨게임은 분명히 끝났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D램만 마무리됐다고 봐야 한다. 낸드플래시, 그리고 D램과 낸드플래시의 장점을 더해 나오게 될 새로운 메모리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 당장 D램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지금의 지위를 유지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PC 시장의 침체로 인텔이 메모리 업계에 행사하는 힘이 줄었지만 어떤 의미로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중국은 치고 올라오고 미국은 시장의 패러다임을 뒤집고 싶어 한다. 차세대 제품에 대한 우리나라 메모리 업계의 승부수가 던져질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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