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영국의 시인 존 밀턴이 1667년 내놓은 ‘실낙원(失樂園·Paradise Lost)’은 지옥으로 쫓겨난 사탄이 ‘최초’의 인간인 아담을 이용, 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선악과’를 먹이고 타락시켜 원죄를 얻게 만든다는 내용의 대서사시다.
여기서 사탄은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려지는데, 후대에 평론가들이 저자가 사탄에게 공감을 느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이 상대적으로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기업이 혁신을 이룰 때 그 과정보다는, 혁신의 결과물이 불러일으킬 이해득실부터 따지는 게 우리네 사회의 감정론이다.
하여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퀄컴의 반독점 논란을 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결정할 과징금 액수가 사상 최고라느니, 어떤 형태로든 시정명령이 내려져야 한다거나, 이 땅에서 지은 죄목이 무엇인지 소상히 밝혀야 한다는 등의 퀄컴에게 단죄를 내려 저잣거리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걸어놓아야 속이 풀릴 지경인 것 같다.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미국의 작은 기업을 번듯하게 키워냈다는 자부심이 시간이 지나면서 뒤틀려 배신감으로 탈바꿈한 것만 같다.
잘 알려진 것처럼 지금의 퀄컴을 만든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무선통신 원천기술이 개발될 수 있던 근간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할리우드 배우이자 과학자인 헤디 라마르 덕분이다. 그가 1942년 출원한 특허는 CDMA뿐 아니라 와이파이와 블루투스의 핵심요소로 발전했고 이를 인정받아 1997년 미국 전자개척재단(EFF)으로부터 개척자(Past Pioneers) 상을 받았다.
이처럼 하나의 특허가 등록되고 인정받아 상용화를 이루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퀄컴에게 덧씌워진 갖가지 혐의이자 원죄는, ‘최초’에게 주어지는 대의명분이면서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인간처럼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낙원에 더 가깝다.
따지고 보면 굳이 퀄컴이 아니더라도 선택지는 많았다. 골라서 모뎀칩을 구입해 사용할 환경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중국이 그랬으니 우리도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해 누가 더 공정한지를 뽐내는지 경주를 벌이는 모양새다. 누구든지 정부를 곁눈질하면서 발가락 끝에 매달려 퀄컴의 머리를 후려치고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보편적인 도덕감정을 통해 이기심에도 동감할 수 있다고 봤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적정한 범위 내에서라면 누구나 동감할 수 있다는 얘기다. 퀄컴을 바라볼 때 오랜 세월동안 잠자고 있던 특허를 발전시켜 원천기술을 개발해 사회를 더 풍요롭게 만들고 이에 대한 혁신 활동을 인정해주는 것부터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런 게 독점이고 공정하지 못한 행동이라면 당장 진행되고 있는 모든 혁신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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