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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산업진흥법이 외면했던 IT대기업의 장점…재평가되나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가 최근 공식 입찰에 부쳐지면서 올 하반기 금융IT 시장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번 산업은행 차세대 프로젝트에선 '소프트웨어(SW)산업진흥법'의 예외규정을 통해 대기업의 공공IT시장 참여가 가능해졌다. (물론 이전에도 국방 등 신기술및 특수한 분야에서는 예외가 인정됐다)

자연스럽게 지난 3년간 인위적으로 대기업의 공공시장 참여를 막아왔던 개정 SW산업진흥법의 실효성 문제가 도마에 오를 수 밖에 없게 됐다.

지난 2013년부터 발효된 SW산업진흥법 개정안은 당초 공공IT 시장에서만이라도 인위적인 보호막아래서 중견 중소 IT기업들이 대기업의 횡포에 휘둘리지 않고 역량을 키우라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개정안 시행 이후 시장에서 제기된 목소리는 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 수요자, 공급자 양측 모두 불만이었다. “장점은 사라지고 단점은 크게 해소되지않아 결과적으로 공공IT 시장의 질적 평준화만 이뤄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중견 중소 IT기업 중심으로 시장 환경을 만들어놓았으나 '그들만의 리그'에서도 역시 제살깎기 가격경쟁, 협력업체의 희생 등 기존 시장 구조와 동일한 문제점이 발생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대기업에선 공공IT 시장이 막히자 관련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았던 고급 IT인력들이 회사내 다른 부서로 재배치되거나 아예 중견 IT회사로 이직하는 후폭풍이 있었다. 특히 산업은행의 계정및 정보계 부문 토털 IT아웃소싱을 맡아왔던 삼성SDS는 결국 공공IT 시장뿐만 아니라 외부 금융IT 시장에서 아예 손을뗐다.

지난해 7월, 미래창조과학부는‘SW산업진흥법’의 시행령 및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을 마련해 중소기업 수익악화의 주요 원인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개선하고, 기술 경쟁력이 있는 제품이 품질성능평가시험(BMT)을 통해 선정되도록 하는 등 개선책을 마련했지만 IT시장의 눈높이에 충분히 부합했는지는 유보적이다.

◆뒤늦게 커보이는 '대기업의 장점' = 과거 공공 IT시장에선, 수백~수천억원대의 IT사업을 돌아가면서 독식하는 3~4개의 IT대기업이 여러 중소 IT협력 업체의 고혈을 짜내는 악마로 묘사됐다.

대기업 중심의 선단식 구조로 이뤄지는 공공 IT수주 관행에선 이같은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SW산업진흥법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일반 IT시장 일각에선 여전히 이러한 대기업 중심 구조의 수주 관행과 관련한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이 가졌던 분명한 장점에 대한 시장의 갈증 또한 커진것도 사실이다. 시장에선 대기업이 가진 대형 IT프로젝트의 사업 관리(PM)능력과 인력 소싱, 경험, 재무적 안정성 등을 평가하고 있다.

금융IT 분야에 정통한 소식통은 “이미 1년전부터 산업은행측은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SW산업진흥법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담당자들을 일일히 찾아가 '대기업이 차세대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정부의 예외인정으로 1년만에 산업은행의 요청이 받아들여졌다고 볼 수 있다. 산업은행으로서는 2000억원이 넘는 대규모 IT사업을 은행권의 차세대시스템 경험이 없는 중견 중소IT 업체들에게 모두 맡기기에는 당연히 불안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프로젝트 관리측면에서 봤을때도, 은행이 수십개의 업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기위해 개별 IT업체들과 일일히 계약하고 또 이의 진행과정을 입체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않다. 실제로 국내 은행권에서 이런 방식으로 차세대 프로젝트가 진행된 적은 없다. 차세대 프로젝트의 관리측면에서 '대기업의 역할론'은 여전히 현장에서는 높게 평가되는 항목이다.

물론 산업은행은 최근 사업 입찰참가자격을 통해 대기업을 프로젝트 주간사로 참여시키되 지난해 개정된 SW산업진행법의 하도급 규정을 철저하게 준수하도록 하는 등 SW산업진흥법의 취지를 지키기위한 노력을 보였다.

SW산업진흥법은 중견, 중소IT기업을 무작정 보호하기위한 장치가 아니다. 법이 마치 '인디언보호구역'처럼 방어막으로만 존재할 경우, 역설적으로 그 울타리 속의 경쟁력은 더욱 떨어진다.

은행 CIO출신의 금융IT 전문가는 "정책의 취지가 좋더라도 시장에서 받아들여지지않으면 오히려 편법이 생기기된다"며 "SW산업진흥법의 취지를 시장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는 유연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의 시장 진입을 원천 봉쇄하는 것보다는 대기업의 장점을 살리도록 유도하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이라는 것이다.

한편 산업은행과는 달리 SW산업진흥법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되는 일반 은행들은 차세대 사업에서 대기업의 SI(시스템통합)부문에서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설정해놓고 있다.

현재 제2기 차세대시스템을 준비하는 국내 시중 은행들은 대부분 우리은행, 교보생명, 산업은행의 차세대 프로젝트 일정을 챙기고 있다. 기존 차세대 프로젝트 진행 일정에 맞춰 향후 자신들의 사업 발주 시기를 조율하겠다는 것이다.

대부분 빅뱅(Big Bang)방식으로 진행되는 국내 금융권 차세대 프로젝트 환경을 고려한다면, 이처럼 대기업을 염두에 둔 금융권의 발주 전략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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