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에게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와 함께 지속적인 혁신의 대상이다. 단순히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잘 설계하고 본체를 아름답게 디자인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조너선 아이브 부사장도 수차례 언급했지만 배터리를 많이 넣으면 사용시간이 길어지는 대신에 무게와 두께가 불리해진다.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가장 큰 목적이며 애플 하드웨어가 추구한 철학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애플은 컴퓨터라는 기기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지 모른다.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컴퓨터는 ‘입력장치→처리장치→출력장치’의 과정을 거치는 디지털 계산기라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중앙처리장치(CPU)와 같은 특정 하드웨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메모리, 스토리지, 입출력(I/O)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밸런스에 초점을 맞춰왔다. SCSI, IEEE1394를 오랫동안 고수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핵심은 CPU 부담을 낮추고 각 하드웨어가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런 철학은 스마트폰, 태블릿과 같은 스마트 기기 시대에서도 여전이 유효하다. 독자적인 설계자산(IP)을 가지고 AP를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뚜껑을 열어봐야 하지만 애플의 차세대 AP ‘A10’은 직전 ‘A9’과 달리 대만 TSMC가 단독으로 위탁생산(파운드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가장 최신 공정 가운데 하나인 16나노 ‘핀펫LL+(FFLL+)’이 유력한데 TSMC는 ‘InFO WLP (Integrated Fan-Out Wafer-Level Package)’라 부르는 패키징 기술도 함께 보유하고 있다. 이 기술은 ‘팬아웃웨이퍼레벨패키지(Fan Out Wafer Level Package, FOWLP)’의 일종으로 보다 얇은 패키지를 구현하면서도 밀도를 높이는 것이 가능하다. 쉽게 말해 같은 면적에서 더 높은 성능의 반도체를 구현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애플이 원하는 하드웨어 개발과 일맥상통한다.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하면서 성능과 휴대성을 모두 추구하는 지극히 애플다운 전략이다.
반도체 한계 넘어서기 위한 묘수
FOWLP의 가장 큰 장점은 인쇄회로기판(PCB)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데 있다. 칩을 웨이퍼에 직접 실장하므로 PCB를 사용하지 않는 만큼 원가절감이 가능하고 그만큼 얇은 두께와 방열에 효과적이다. TSMC의 InFO WLP는 단순히 PCB가 필요 없다는데서 그치지 않고 입출력(I/O) 성능까지 개선시켰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애플 A10에는 ‘슈퍼라지(Super Large)’ 포트폴리오가 쓰일 예정이며 ‘재배선층(Redistribution Layer, RDL)’의 피치(간격)은 2~3마이크로미터(㎛), 볼 피치는 0.4~1mm이다. 당연하지만 AP와 같은 시스템온칩(SoC) 위에 D램을 적층하는 ‘PoP(Package On Package)’을 지원한다. ‘InFO CoWoS(Chip-On-Wafer-On-Substrate)’ 기술을 더할 경우 언제든지 실리콘관통전극(Through Silicon Via, TSV)도 접목할 수 있다.
TSMC에 파운드리를 맡기는 업체 입장에서 다양한 고성능 패키징 기술을 사용할 수 있으므로 활용폭이 그만큼 넓어지게 된다. 애플이 A10 파운드리에서 이전처럼 삼성전자를 고려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TSMC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TSMC는 올해부터 InFO WLP 양산을 시작해 1억달러의 매출(약 11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GPU 성능 강화에 애쓰는 애플, 이유는?
AP 설계에 있어 고집스러운 면을 보이는 애플의 전략도 패키징 기술의 발전을 부채질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다. 바로 그래픽처리장치(GPU) 때문이다. 이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애플은 PA세미를 인수합병(M&A)한 이후 처음으로 내놓은 AP, 그러니까 ‘A4’는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동일하게 쓰였다. 본격적으로 스마트폰, 태블릿 AP가 분화된 것은 직후인 ‘A5’, ‘A5X’부터였다. 특히 A5X는 레티나 해상도를 지원함과 동시에 AP와 D램이 분리되어 있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PoP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지금도 ‘X’가 들어간 애플 AP는 같은 구성이다. 정리하면 애플의 AP 정책은 CPU 코어 수를 늘리기보다는 GPU와 같이 그래픽 성능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실제로 가진 최신인 A9만 하더라도 CPU는 듀얼코어에 머물러 있는데, 최근 선보이는 대부분의 최상위 AP가 쿼드코어(4개)나 옥타코어(8개)라는 점을 고려하면 애플이 GPU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는지 엿볼 수 있다.
단순하게 보면 GPU 성능의 향상은 디스플레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애플이 설명하는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인간의 망막으로 픽셀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고해상도를 말한다. 첫 적용 제품인 아이폰4는 960×640 해상도에 326ppi(Pixels Per Inch)를 지원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300ppi가 망막이 픽셀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언급했지만 이후에는 이보다 낮은 ppi의 아이패드에도 ‘레티나’라는 단어를 적용한바가 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마케팅적인 요소와 함께 조건에 따라 다르게 적용시킬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스티브 잡스가 언급한 조건이 ‘거리’이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같은 해상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화면크기가 작으면 ppi, 그러니까 디스플레이 밀도를 높일 수 있다.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society for information display, SID)에 게재된 NHK과학기술연구소의 논문에 따르면 픽셀밀도가 증가할수록 현실처럼 느껴지는 감각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의 광분해능력(Cycles per Degree, cpd)을 일반적으로 30cpd 정도로 보고 있다. 각도 분해능력(Angular resolution), 앞서 언급한 cpd가 상승할수록 현실감(Realness)도 함께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고모델, 프라모델 배, 나비 등의 피사체를 대상으로 했으며 60cpd에서 포화상태를 보였다. 60cpd는 레티나의 2배에 이르는 픽셀밀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물론 이를 뒷받침할 수 있을 정도의 시력이 필요하고 상황에 따라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ppi의 증가가 현실감을 높여주는데 있어 긍정적으로 작용할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애플 AP 전략, 패키지와 메모리 통합에 중점
현실감은 가상현실(VR)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 선보이고 있는 가상현실 기기는 머리에 써야 하는 헤드마운드디스플레이(HMD) 형태가 대부분이다. 콘텐츠는 차치하고서라도 당장 대중화되기에는 불편한 구석이 많다. 이런 점에서 애플은 VR보다 증강현실(AR)에 더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AR 스타트업 메타이오(Metaio)를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AR는 사용자가 보고 있는 현실에 3D 가상 정보를 겹쳐야 한다. 더구나 현재 스마트폰에서 즐기는 VR는 양안, 그러니까 사람 눈이 2개이므로 해상도를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PC에서 VR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고성능 GPU가 필수적일 정도다. 그러니 스마트 기기에서 VR를 원하는 만큼 즐기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AP 성능이 높아져야 하고 여기에는 TSV와 함게 FOWLP가 필수적으로 접목되어야 한다.
이는 고대역폭메모리(High Bandwidth Memory, HBM)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HBM은 기능성 패키지 기판인 인터포저(Interposer) 위로 GPU와 함께 탑재돼 한 시스템을 이루는 SiP(System in Package) 형태로 공급된다. 말하자면 2.5D 형태인 셈이다. AP와 D램을 분리해 사용해야 하고 GPU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메모리 대역폭 확대가 필수적인 만큼 애플이 차기 제품에 적극적으로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
<이수환 기자>shulee@insightsem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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