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최근 은행, 보험 등 금융권의 ‘2기 차세대시스템’ 개발 프로젝트 추진 계획이 윤곽이 드러나면서 금융 IT시장의 분위기도 점차 고조되고 있다.
특히 2000억~3000억원 규모의 대형 금융 IT사업의 발주는 불황을 겪고 있는 국내 IT시장에 보다 강력하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진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를 발하게 된다. 차세대 IT사업의 대형화와 함께 거론되는 또 다른 공통점은 빅뱅(Big Bang)식 개발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점이 노출된 IT인프라의 특정 부분을 단계적 또는 부분적으로 개선하지 않고 1~2년간의 특정기간을 정해 ‘모든 IT인프라를 한꺼번에 차세대 IT환경으로 전환’하는 것이 빅뱅식 개발방식의 기본 개념이다.
현재 금융권의 2기 차세대프로젝트 추진상황을 보면, 빅뱅 방식으로 개발될 우리은행의 2기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가 250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현재 2기 차세대시스템 사업을 위한 컨설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컨설팅이 완료되면 오는 2018년 가동을 목표로 시스템 개발 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업계에선 산업은행의 차세대 IT 사업규모를 2000억원선으로 추산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성공적인 가동에 들어간 IBK기업의 포스트 차세대시스템 개발 프로젝트도 빅뱅 방식으로 개발됐으며 2500억~2600억원이 투입된 것으로 추산된다.
은행권 뿐만 아니다. 보험업계에선 지난해말과 올해 초에 각각 차세대시스템 개발에 착수한 삼성화재와 삼성생명의 ERP시스템 도입 프로젝트 규모가 모두 1500억원대를 훌쩍 넘는다.
올해 초 삼성SDS가 공시한 금액을 기준으로, 삼성화재와 삼성생명이 각각 1785억원, 1561억원이며, 프로젝트 진행기간도 28개월과 26개월에 달하는 장기 레이스이다. 이 역시 빅뱅방식이다. 삼성화재와 삼성생명의 프로젝트는 명칭만 ERP도입사업일뿐 실제로는 SAP기반의 ‘코어 인슈어런스(Core Insurance)’ 플랫폼을 도입하는 차세대시스템 구축사업이다.
◆여전한‘빅뱅’방식 선호…대안부재인가? = 이처럼 단일 금융회사의 차세대 IT프로젝트 규모가 수천억원대에 이를 수 있는 것은 ‘빅뱅’식 개발방식이 가지는 특징이기도 하다.
한꺼번에 모든 IT자원을 새롭게 개발하는 데 따른 막대한 인력투입과 개발비용, 장비 교체 이슈가 동시에 쏟아지고 이것이 모두 비용화되는 구조 때문이다.
실제로도 외국보다 한국에서 이같은 빅뱅 방식의 차세대시스템 개발이 유독 더 선호된다. 이 때문에 글로벌 IT업계에서는 이를 ‘한국적 특징’ 또는 ‘한국적 현상’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주목할만한 사실은 이같은 ‘빅뱅’방식이 불과 몇 년전까지만하더라도 “더 이상 국내 금융 차세대시스템 개발 방식으로는 채택되지 못할 것”이란 비판적 전망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빅뱅 방식으로 차세대시스템 개발을 완료한 금융회사의 CIO 조차도 공개석상에서“빅뱅 방식은 더 이상 곤란하다”는 견해를 스스럼 없이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도‘빅뱅’방식은 지금까지 무수한 단점을 드러냈다.
먼저, 빅뱅 방식은 차세대시스템 품질의 완결성이 떨어질 위험성이 존재한다. 빅뱅 방식으로 IT인프라를 일거에 전환시킬 경우, 외형적으로는 차세대 환경으로 바뀐 것 같지만 내부적으론 기대에 못미치는 시스템 품질로 속을 끓이는 사례가 적지않았다. 워낙 광범위하게 개발범위를 잡고 개발을 진행하다보니 당장은 드러나지 않지만 사후에 IT품질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예를들면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 일정에 쫓기다보니 중요한 테스트 과정에서 의도치않은 생략이 발생하는 것이다. 차세대시스템 개발은 시간과의 처절한 싸움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리 타박할 것도 아니지만 분명히 시스템의 완결성에는 문제가 생긴다.
또한 빅뱅 방식은 사업 규모 자체가 워낙 크다보니 사업자 선정이나 주전산시스템, 코어뱅킹 플랫폼 등 핵심 솔루션 선정을 위한 의사결정과정에서 IT외적인 잡음도 적지 않게 나오기 마련이다.
사업자 선정이 임박하면 투서 등 특정 IT업체에 대한 비방, 또한 참가 IT업체들과의 담합 의혹 등으로 몸살을 앓는 경우가 많다. 외부에선 단순히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헤프닝 정도로 볼 수 있겠지만 금융회사 IT조직이나 담당자들이 입는 내상은 훨씬 심각하고, 프로젝트 진행과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물론 지금까지 빅뱅방식의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받았던 부분은 ‘기술적 측면에서의 합리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즉, IT의 발전속도가 엄청나게 빠른데 막상 2년여의 긴 차세대시스템 개발기간 도중에 툭 튀어나온 혁신적인 IT 신기술, 또는 완성된 IT기술은 적절하게 프로젝트에 반영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금융회사 입장에선 차세대시스템 개발 일정이 타이트하게 짜여져있기때문에 외부 변수를 최대한 배제할 수 밖에 없다. 이는 빅뱅 방식의 분명한 단점이다.
결국 새로운 IT신기술을 시스템에 적용하려면, 차세대시스템이 모두 오픈된 이후 예산과 기간을 확보해 별개의 사업으로 추진해야한다. 이럴 경우 결과적으로 차세대시스템 비용은 훨씬 더 커지게 되는데 이러한 비용 구조는 감춰진다.
지난 2000년대 중반이후, 진행된 국내 금융권 차세대시스템 개발시기에 자바(JAVA)플랫폼을 적용할 것인가 여부를 놓고 금융권 내부적으로 상당한 격론이 있었다.
당시만해도 금융권에서 자바 플랫폼은 혁신적이기는 하지만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야기시킬 수 있는 위험한 기술로 평가받았다.
이 때문에 차세대시스템 개발을 하면서 자바를 부분적으로만 채택하거나 아예 무시한 금융회사들이 적지않았다.
하지만 차세대 프로젝트 이후 몇년간 모바일을 위시한 스마트금융의 확산과 유연한 채널 시스템이 강조되면서 별도의 프로젝트를 통해 자바가 대거 채택됐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빅뱅 방식이 가지는 약점을 그대로 노출시킨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IT예산에 여유가 없는 금융회사들은 빅뱅도 아닌, 그렇다고 하이브리드 방식도 아닌 방식으로 차세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예를들면 계정계시스템을 먼저 1년6개월간 진행한뒤, 다시 IT예산을 확보해 정보계시스템을 차세대 환경으로 전환하는 식이다. 이러한 개발 일정의 인위적인 분리는 IT시스템의 품질을 유지하기가 쉽지않고, 시차로 인한 기술적 요소를 감안해야하며 IT직원들의 긴장도와 피로도가 지나치게 높아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밖에 금융 시장및 정책규제에 적절한 대응이 필요한데, 빅뱅식 차세대 IT 개발 방식에선 이에 대한 유연한 대응이 어렵다는 점도 단점으로 꼽힌다.
◆그래도 빅뱅 방식을 선택하는 이유 = 기술이나 방법론을 평가할때 쉽게 저지르는 오류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그것을 평가한다는 점이다. 그런측면에서 빅뱅 방식은 조금 억울한 부분도 있다. 기술이나 방법론은 항상 그자리에 있지않고 시대가 바뀌면 새로운 가치를 조명받기때문이다.
빅뱅방식은 앞서 설명한대로 여러 단점을 가진 차세대시스템 구축 방법론이지만 장점도 분명이 가진 방식이다. 특히 금융IT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금융회사의 수직적 IT조직 구조상 IT인프라를 차세대 환경으로 일시에 전환시키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더 효율적인 IT고도화 방식”이라는 경험칙을 얘기하고 있다.
실제로 금융권에서는 빅뱅 방식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부분적 빅뱅과 단계적 방식을 혼합한 하이브리드형 차세대 IT개발 방식 사례가 몇건 있었다.
계정계, 정보계 등 크게 시스템 분야별로 별도의 사업자를 선정하고, 문제점이 드러난 부분만집중적으로 추진하는 식이다. 이럴 경우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는 전체적으로 7~8년씩 걸린다.
대표적으로 국내에 진출해있는 SC은행과 씨티은행이 이같은 하이브리드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다만 이는 로컬 정책이라기보다는 해외 본사의 글로벌 IT전략을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하이브리드 방식이 국내 금융권에는 안맞을 수 있다. 일단 금융 시장에서 금융회사간 경쟁이 극심하기때문에 외국의 경우처럼 7~8년씩 장기적으로 걸리는 IT개선 사업 자체가 기본적으로 우리 시장환경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으로 상품개발 속도의 경우, 과거 1개월이 3~4개에 불과하던것이 차세대시스템 환경으로 전환한 이후 불과 하루 이틀만에 몇개씩 만들어낼 수 있게 됐고, 또 최근에는 빅데이터 이슈가 강조되면서 시스템의 경쟁력이 더욱 중요해지고있다. 그동안 평가절하됐던 빅뱅방식의 장점이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요소가 분명이 있다는 것이다.
기술적측면에서도 빅뱅 방식의 단점을 많이 보완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프레임워크의 고도화로 시스템의 블록화가 이전보다 유연해지면서 IT 신기술의 수용도 용이해졌으며, 테스트 솔루션의 발달로 시스템의 완결성이 크게 위협받을 가능성도 줄어들었다는 설명이다.
또한 국내 금융권의 IT조직및 운력 운영 문화도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7~8년씩 장기적으로 차세대시스템 로드맵을 완성해 나가기위해서는 금융회사 IT조직의 안정성이 일단 확보돼야한다. 이와함께 최소한 그 기간동안 큰 줄기의 IT로드맵이 철저하게 보장되는 것이 전제돼야하는데, 상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국내 금융권에선 사실상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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