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이재용 시대’ 전환을 서둘러왔던 삼성그룹에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미국계 헤지펀드로 알려진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4일 공시를 통해, 경영참가를 목적으로 삼성물산 지분 7.12%(1112만5927주)를 주당 6만3500원에 장내 매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앨리엇 매니지먼트측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계획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삼성물산의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했고 합병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아 주주의 이익에 반한다’는 이유를 달았다.
이번 삼성물산 지분을 장내 매수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전체 운용자산 규모는 260억 달러로 추산된다. 규모로만 놓고 본다면 ‘큰 손’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삼성그룹측으로는 향후 상황전개에 따라 몇가지 사안에서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무엇보다 삼성그룹 3세 경영승계의 핵심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미국계 해지펀드의 ‘경영참여, 합병반대’ 변수가 돌출됐다는 점에서 사안 자체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삼성의 약점, 헤지펀드가 노렸다? = 특히 지난달 26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발표가 난지 불과 일주일만에 해지펀드가 기다렸다는 듯이 지분매수 공시를 띄우면서 삼성측을 압박한 것은 앞으로 삼성그룹 경영승계 과정에서 불거질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삼성의 약점이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처럼 그룹 차원에서 시도되고 있는 다양한 M&A(인수합병)의 과정을 이재용 부회장을 위한 ‘인위적 권력의 이동’으로 보는 시장의 부정적인 시각이다. 이 과정에서 일반 주주의 가치가 일방적으로 훼손된다는 게 이번 헤지펀드와 같은 합병 반대론자들의 논리다.
실제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을 강화시키려는 그림에 대해 최근 외신들은 부정적 평가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경우 ‘두 회사의 합병이 기업지배구조 논란을 재점화 할 것’이라며 월가 애널리스트들의 입을 빌어 비판적인 논조의 기사를 게재했다.
엘리엇 매니지먼트측은 ‘주주가치 훼손 방지’를 명분으로 향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반대세력 결집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경영승계의 핵심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무산 가능성은? = 삼성물산의 외국인 지분율은 32.11%(3일 기준)에 달한다. 여기에 엘리엇 매니지먼트 지분을 더하면 외국인 지분율은 더 확대된다. 반면 삼성그룹 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 지분은 19% 정도다. 기관 주주로는 국민연금이 9.7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만약 외국인과 기관 주주가 주식매수청구권을 집단적으로 행사할 경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계획이 무산될 가능성은 이론적으로는 존재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체적인 매락에서 봤을 때, 기타 주요주주들이 헤지펀드에 동조할 가능성이 매우 적다’고 보고 있다. 현재 두 회사의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가격보다 높기 때문에 낮은 가격으로 주식 매수 청구를 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주식매수청구권은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가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회사가 정해진 가격에 사가도록 요구하는 권리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은 각각 15만6493원, 5만7234원이다.
현재 시장에서 우려하는 것은 이번 엘리엇 매니지먼트 사태가 지난 2003년 SK그룹과 소버린간의 경영권 분쟁처럼 확대될 수 있을지의 여부이다. 헤지펀드였던 소버린는 SK(주) 주식 14.99%를 매입, 2대 주주에 올라 경영참여를 시도해 SK측이 이를 방어하느라 1조원이 넘는 경영권 방어비용을 지불하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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