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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고가 인하 포기?…단통법, 제조사서 통신사 옥죄기로 선회

- 지원금 상한제 유명무실화…제조사 압박 수단 상실

[디지털데일리 윤상호기자] 단말기유통법이 길을 잃었다. 정부의 조급증과 부처 입장 차이 등으로 장기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정부의 통신사 통제 수단으로 전락하는 분위기다. 어찌 보면 작년 10월 단말기유통법 시행 첫 날 방송통신위원회 최성준 위원장이 통신사에게 지원금 상향을 요구했을 때부터 예견됐던 행로다.

8일 방통위와 미래창조과학부는 각각 공시지원금 상한액과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선택요금할인제) 할인율을 상향했다. 공시지원금 상한액은 30만원에서 33만원으로 3만원 올렸다. 선택요금할인 할인율은 12%에서 20%로 8%포인트 높였다. 단말기유통법에 따르면 방통위와 미래부는 각각 공시지원금 상한액과 선택요금할인 할인율을 조정할 수 있다.

◆방통위 미래부, 시장 정상화 보다 대통령 공약 선택=방통위 이용자정책국 박노익 국장은 “지원금 상한액을 올려 합법적 범위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라며 “지원금 상한을 올리면 불법 지원금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부 통신정책국 조규조 국장은 “처음 12%는 정확한 자료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법 시행 이후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말기유통법은 ▲과도한 지원금으로 고가 휴대폰 구매 유도 ▲저가 요금제 가입자 지원금 차별 등 통신시장 유통질서 개선을 통해 소비자 차별 개선과 단말기 출고가 인하를 달성하겠다는 의도로 마련됐다. 업계 반발에도 불구 지원금 상한제와 선택요금할인제를 도입했다. 전자는 제조사가 후자는 통신사가 달가워하지 않았다. 제조사 반대로 지원금 상한제는 3년 일몰, 제조사 통신사 지원금 분리공시는 없던 일이 됐다.

시장 정상화 과정은 이해관계자 충돌을 수반한다. 정부의 역할은 정책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이해관계자의 비판과 갈등을 조절하고 규칙을 어기는 쪽을 제어하는 쪽이다. 단말기유통법은 이례적이다. 시행 첫 날부터 정부가 먼저 안달을 냈다.

◆정부, 단통법 도입 이전과 이후 태도 바꿔=가계통신비 인하는 박근혜 대통령 공약이다. 박 대통령은 근래 들어 지지율 하락으로 조기 레임덕 얘기까지 나왔다. 대부분 공약이 재원 때문에 난관에 봉착했지만 통신비 인하는 다르다. 단말기유통법을 달리보면 이전 정부보다 통신사를 통제할 수단으로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 야당 추천 방통위 상임위원도 이 부분을 지적했다.

고삼석 상임위원은 “이용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정책 결정에 우선순위가 있는 것이다. 법적 수단이 마땅치 않다고 손을 놓고 있으면 안 된다. 제조사 출고가 인하가 먼저”라고 비판했다.

김재홍 상임위원은 “미래부가 주도하고 방통위가 협업한 내용은 무리한 단기적 경기부양책으로 이는 미래의 경제자원과 정책수단을 미리 당겨 쓰는 것”이라며 “3~4년 뒤의 국민경제에 부담을 전가시키고 차기 정책수단을 가불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상한 인상안 의결에 기권했다.

출고가 인하와 지원금 상향은 반비례 관계다. 같은 값이면 제조사는 출고가를 내리는 것보다 지원금을 올리는 쪽이 유리하다. 제조사 입장에서 출고가는 매출 지원금은 비용이다. 출고가를 내리면 매출이 깎인다. 한 번 내리면 올릴 수 없다. 비용은 많이 쓸 때도 적게 쓸 때도 있다. 더구나 통신사와 함께 마련한다. 지원금을 올리면 출고가를 내릴 이유가 없어진다. 선택요금할인을 대폭 상향한 것 역시 출고가 인하에 역행한다. 요금인하 비용은 통신사 몫이다. 소비자가 지원금을 택하든 요금할인을 택하든 제조사는 큰 상관없다. 기기만 많이 팔리면 만사형통이다.

◆통신 시장 정상화, 출고가 인하 우선=소비자는 지원금을 올리는 것보다 지원금을 내리는 것이 좋다. 소비자 입장에서 초기 구매비는 같지만 지원금은 위약금이 발생한다. 할부에 따른 이자 비용도 뒤따른다. 선택요금할인 할인율 상승은 단기적으로는 소비자에게 이득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통신사가 요금인하 비용을 다 떠메면 정보통신기술(ICT)산업 균형이 무너진다. 통신사 실적악화는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국가 경제 전반에 먹구름이다.

결국 당초 정책목표인 출고가 인하는 멀어지고 통신사 희생으로 대통령 공약을 지키는 셈이다. 방통위는 지원금 미래부는 선택요금할인을 담당하다보니 그나마도 엇박자다.

조 국장은 “시장 상황은 예단하기 어렵다”라며 “지원금을 올리고 요금할인도 올라가는 방법이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을 흐렸다. 박 국장은 “일부 상임위원이 반대를 했지만 약간 오해가 있다”라며 “지원금을 상향해도 경쟁 확대로 단말기 가격 인하 등이 이뤄질 것”이라고 상한제 존재 근거를 흔드는 답을 내놨다.

<윤상호 기자>crow@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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