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국산 서버 활성화 대책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끼워 맞추기’식의 정책을 통해선 몇몇 업체들의 배만 불릴 뿐 실질적인 경쟁력 강화와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미래창조과학부 등 관련 부처는 지난 8월 발표한 ‘ICT 장비산업 경쟁력 강화전략(안)’의 일환으로 경쟁력 있는 컴퓨팅 장비의 개발, 공공시장에서의 수요 확대 등의 계획을 추진 중이다. 외산 일색인 국내 서버 시장에서 국산 업체들을 육성, 장려하기 위해 방안이다.
그러나 앞서 지난 1989년에도 정부는 민관 합동으로 외산 시스템을 대체하기 위한 주전산기 개발 프로젝트 ‘타이콤’ 프로젝트를 가동했으나, 실패로 돌아간 전례가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를 주축으로 삼성전자와 금성사 등 국내 업체가 참여해 1991년 개발을 완료, 1994년까지 249대가 행정기관에 도입됐으나 사실상 이후 개발이 진행되지 않으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또한 CPU나 메인보드, 메모리 등 x86 서버를 구성하는 핵심 부품들이 표준화 돼 있어 차별화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서버의 두뇌에 해당하는 CPU는 대부분 인텔 제품이다. 안정성 검증 및 유지보수 등의 서비스 질도 공공기관에 도입하기 전에 선결돼야 할 문제다.
◆7개 컴퓨팅 장비 개발·중소기업 경쟁적합 제품 지정=미래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 IC 인프라를 수행하는 핵심 장비는 대부분 외산으로 구축돼 있다. 이중 컴퓨팅 장비의 경우, 외산 비중이 86%에 달한다.
지난 8월 21일 미래창조과학부 등 관계부처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한 ‘ICT 장비산업 경쟁력 강화전략(안)’을 살펴보면, 서버 등 국산 장비의 비중을 높이기 위안 방안으로 정부는 2017년까지 크게 ▲경쟁력 있는 장비 개발 ▲장비 시장 창출·확대 ▲창조적 장비산업 생태계 구축 등 세가지를 중점 추진과제로 삼고 있다.
컴퓨팅 분야에선 WIE(World-best ICT Equipment) 프로젝트 통해 초저전력 마이크로서버, 반도체 기반 스토리지, 고밀도 스토리지, 클라우드 어플라이언스, 빌딩 블록형 데이터센터, 초고성능 컴퓨팅(HPC), 로엔드 x86 서버 등의 개발 방침을 세웠다. 지난 10월 장비별 전담위원회를 구성해 과제 기획을 추진 중이다.
중소·중견기업을 통해 이를 상용화하고 글로벌 강소기업 육성을 촉진한다는 목표다. 시장성, 기술 확보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자체 경쟁을 통한 우선순위를 정한 후, 매년 3~6개 과제를 연차별로 시작할 계획이다. 국산 장비의 신뢰성 향상을 위해선 공동 A/S체계, 사후관리보증제 마련, 기술임치제(대중소기업협력재단) 활용하는 한편, 평창동계올림픽 등 대규모 국제행사에 국산장비 적용을 통해 운영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방침이다.
또한 공공장비 시장의 수요 확대를 통해 미래부와 안전행정부, 조달청 등이 협력해 구매제도를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ICT 특별법 20조에 따라 인증제품 우선구매제도를 마련하는 한편, 중소기업 경쟁적합 제품을 서버와 스토리지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중소기업 경쟁적합 제품으로 지정되면, 3년 간 대기업 등의 공공시장 납품이 원칙적으로 제한돼 중소기업 간에 경쟁하게 된다.
이밖에 통신사와 방송사, 대형 데이터센터(IDC) 등 수요처의 신기술 및 장비 도입 추진 계획을 예보해 국내 기업이 개발·조달하는 선순환 관계를 가속화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최근엔 데이터센터장협의회를 통해 이같은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진다.
◆현실성 있는 계획?…공공서비스 질 저하 우려=이와 관련, 미래부 관계자는 “무조건 국산제품을 우대하겠다는 것보다는 중소 기업들에게도 제품 공급의 기회를 넓힌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연간 약 1조원에 달하는 국내 서버 시장 대부분은 HP와 델, IBM 등 외산 업체 차지다. 국산 업체의 비중은 6~10%에 불과하다.
특히 미국과 중국, 인도 등 다른 국가의 경우를 살펴보면 외산에 의한 시장독점 방지 및 보안성 우려 등을 이유로 ICT 장비의 자국 제품 도입을 강화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 지난 2012년 10월 국가안보를 이유로 중국산 네트워크 장비 구매 불가를 선언했고 인도는 공공기관의 외산 네트워크 및 컴퓨팅 장비에 대한 수입쿼터제를 시행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지난 1996년부터 공공분야 장비 국산화 추진 및 화웨이와 인스퍼 등 자국 기업에 대한 전폭적인 자금 지원을 통한 글로벌 진출을 지원 중이다. 이들 업체는 정부의 현금 융자 및 내수시장 보장을 바탕으로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지난 8월 발표된 계획(안)에 따라 현재 다양한 실행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약 30여개에 달하는 국내 서버, 스토리지 업체가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련 업계에서는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국산 업체가 생산하는 서버 대부분이 단순히 부품을 조립한 화이트박스 형태로,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관리 툴 등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성능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대부분의 서버는 외산인 인텔 CPU와 메인보드로 구성돼 있다. 잘못하면 껍데기만 국산인 하드웨어 제품이 난무할 수 있다.
서버는 단순해 보이지만 다양한 애플리케이션과의 연동 및 인증이 필요할 뿐더러, 특정 환경에서는 수시로 버그가 발생하기도 한다. 때문에 섣불리 공공기관에 국산 서버만을 공급했다가는 공공 서비스 질의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국산 서버 등에 적용하겠다는 중소기업 경쟁적합제품(중소기업청 지정)도 사실상 폐해가 많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호랑이 없는 곳에 여우가 왕’이르는 속담도 있듯 그 혜택이 중소기업들에게 골고루 나눠지지 않을 수도 있다”며 “독점적 위치에 있는 1등 중소기업이 시장을 차지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대만산 제품 등을 OEM 형태로 공급받아 납품할 가능성도 높아 눈가리개식 정책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마진도 생각만큼 좋지 않다. HP나 델 등의 서버 업체들은 대량 생산을 통한 규모의 경제로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오랜시간 이어온 생산 노하우 등은 단기간에 따라잡기 힘들다. 중국이 어마어마한 내수 구매력을 기반으로 시장을 확장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삼성전자조차 지난 2008년까지 시장 축소 등으로 x86 서버 시장에서 조용히 철수한 바 있다. 현재 ARM 기반 저전력 서버를 준비 중이나 이는 내부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5년 후 정권이 바뀌면 자동적으로 없어지는 정책이 아니라 장기간 꾸준히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또한 국산업체들도 단순히 국수주의에 호소하며 자사 제품을 애용해 달라는 것보다 니치 마켓을 통한 시장 창출 및 연구개발(R&D)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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