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소형 백색가전 시장에서의 불리함 극복
[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지난 10일(현지시각) 영국 생활가전 업체 다이슨이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진공청소기 관련 ‘조정 기술(steering technology)’ 특허를 침해당했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다이슨과 삼성전자의 악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8년에도 먼지봉투가 없는 ‘사이클론’ 기술을 대상으로 법정다툼을 벌인바 있다. 이후 2009년 2월 13일 영국 고등법원은 삼성전자가 다이슨의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59만 파운드(한화 약 10억700만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재판부는 다이슨이 주장한 특허 2건 가운데 하나는 삼성전자도 일정 부분 특허권을 주장할 수 있다고 판단해 손해배상액을 줄였다. 무승부에 가깝지만 먼저 소송을 제기한 다이슨 입장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다.
업계에서는 다이슨의 이번 특허침해 소송이 유럽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는 삼성전자와의 경쟁에서 기선을 제압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특허를 침해했다고 언급한 조정 기술은 진공청소기가 움직일 때 본체가 옆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인데 기본적인 구조에서부터 구현 단계에 필요한 부품에 이르기까지 다른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급성장하는 로봇청소기 시장=다이슨이 삼성전자를 향해 칼날을 겨눈 결정적인 이유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포석이다. 현재 유럽은 소형 백색가전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유럽발 경제위기 이후 영국, 프랑스, 독일과 같은 선진 시장뿐 아니라 폴란드, 체코, 우크라이나 등 신흥 시장에서도 소형 백색가전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로봇청소기가 도드라진 활약을 펼치고 있다. 스페인, 이탈리아에서는 2011년 4분기 로봇청소기 판매가 두 배로 높아졌다. 특히 스페인은 올해 1분기 전체 진공청소기 가운데 30%가 로봇청소기로 나타났다. 유럽 전체로 로봇청소기 비중은 13%로 추정되며 앞으로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다이슨은 로봇청소기 라인업이 없다. 오히려 악몽에 가까운 기억만 가지고 있다. 2001년 일렉트로룩스가 세계 최초의 로봇청소기 ‘트릴로바이트’를 판매하기 전부터 관련 제품 개발을 마쳤다.
그러나 가격이 무려 2500파운드(한화 약 430만원)에 달해 제대로 판매를 시작하기도 전에 계획을 중단시켰다. 이후 창업주인 제임스 다이슨이 직접 나서 저렴한 로봇청소기 개발과 판매를 언급했으나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깜깜무소식이다.
반대로 삼성전자는 오래전부터 로봇청소기 개발을 마치고 프리미엄 모델로 승부하고 있다. 전통적인 진공청소기만 갖춘 다이슨 입장에서는 삼성전자의 움직임이 껄끄럽게 느껴질 수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모션싱크’와 같은 프리미엄 진공청소기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니 심리적인 압박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경쟁사 압박하면서 교두보 마련 전략=다이슨은 드럼세탁기와 같은 생활가전 전반에 걸쳐 다양한 제품을 개발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선풍기, 히터, 핸드드라이어 등도 판매하고 있다. 유럽에서 나쁘지 않은 입지를 가지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회사가 성장한 것은 아시아, 정확하게 말하면 일본에서의 성공이 밑바탕을 이뤘다.
아시아 시장에 매력을 느낀 다이슨은 2003년 공장을 말레이시아로 옮기고 영국은 연구개발(R&D)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올해 4월 싱가포르에 총 4200제곱미터(약 1300평) 규모의 디지털 모터공장 ‘다이슨 웨스트 파크’를 준공할 수 있었던 것도 공장과 최대 시장이 모두 아시아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꽤 매력적인 시장이다. 처음 진입한 2008년 11월부터 매년 2배 이상씩 판매 수량을 늘려왔다. 국내 고가청소기 시장은 연간 10만대로 추정되며 시장조사업체 GfK에 따르면 40만원 이상 제품은 25~30% 이상 성장하고 있다. 다이슨에게 있어 한국은 일본, 중국 다음으로 가장 비중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40만원 이상 고가 진공청소기 시장에 진입하니 위기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반영하듯 가격 정책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현재 영국 다이슨 쇼핑몰에서 판매하고 있는 대부분의 진공청소기는 20% 할인판매가 진행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불만스러운 부분은 국내 가격에 변화 조짐이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DC35’ 모델의 현지가격은 239.99파운드(한화 약 41만2000원)지만 국내 공식 쇼핑몰에서는 59만8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다른 제품도 국내가 해외보다 더 비싸다. 액세서리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가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다이슨은 삼성전자의 유럽 공략을 최대한 저지하면서 한국을 비롯해 성장 시장인 아시아 지역에서의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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