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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블랙박스 시장에서 살아남는 법

[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요즘 블랙박스가 잘 팔린다. 시장규모도 매년 급성장하고 있어서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08년 130억원에서 작년에는 2000억원으로 급성장했고 올해도 38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급발진은 물론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시시비비를 명확하게 가릴 수 있으니 10~20만원을 선뜻 주고 구입하는 이유다.

이런 블랙박스 시장을 살펴보면 내비게이션이 한창 잘 팔리던 2000년대 중후반과 흡사하다. 빠른 속도로 시장이 급성장하고 수백여 개의 업체가 신제품을 잇달아 출시했던 것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현재 블랙박스를 판매하고 있는 업체는 줄잡아 500여 개가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너도나도 블랙박스를 판매하는 이유는 기술 장벽이 높지 않아서다. 일부 모델의 경우 자동차용 웹캠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품질이 뒤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내장되는 플래시 메모리도 수명이 긴 ‘멀티 레벨 셀(MLC)’보다는 상시전원으로 연결했을 때 6개월~1년 정도면 교환해야 하는 ‘트리플 레벨 셀(TLC)’을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당연하지만 TLC는 MLC보다 가격이 더 저렴하다. 경쟁 업체가 많아지면서 가격으로 소비자의 눈을 사로잡겠다는 전략이다.

소비자가 이런 사실을 알아채기란 무척 어렵다. 어느 업체 관계자는 “일부 업체는 플래시 메모리를 TLC로 바꿔 단기간 내에 높은 판매고를 올렸지만 이후 몰려드는 A/S로 인해 고객센터가 마비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요즘 같이 폭염으로 자동차 실내 온도가 높아지면서 블랙박스 내구성에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한여름 블랙박스 온도는 70도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발열과 내구성 테스트를 거쳐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는 손에 꼽을 정도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화면이 녹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완성차 업체에서 블랙박스를 순정으로 장착해 출고하지 않는 이유는 대외적으로 안정성 이라고 설명한다. 상시전원을 연결했을 때 배터리 소모가 발생하고 결국 시동이 걸리지 않을 수 있으므로 자동차 전체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조금 다르다.

국내 완성차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지금 당장 블랙박스를 장착해 팔더라도 크게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고 궁극적으로는 내비게이션, 텔레매틱스와 결합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포함시킬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이런 경우다. 블랙박스끼리 무선으로 연동해 고속도로 전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뒤쪽 운전자가 파악하게 하는 식이다. 내비게이션이 불과 10년 만에 자동차에 내장되고 스마트폰을 통해 시동을 켜거나 끄는 등의 작업이 가능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다. 당연하지만 자동차 회사는 정기적인 서비스 비용을 챙길 수 있으므로 안정적인 미래 수익원을 기대할 수 있다.

한때 내비게이션이 잘 팔리던 시절이 있었다. 현재 내비게이션 시장은 포화상태이고 교체 수요가 대부분이다. 소비자들도 아예 자동차를 구입할 때 내장되어 있거나 혹은 매립형 내비게이션을 따로 구입하는 것을 원한다. 이런 상황에서 내비게이션 업체들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전자지도를 공개하고 라이선스 기반의 수익원을 만들거나 클라우드 등 다른 사업 모델을 구축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업체가 문을 닫았다.

블랙박스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제품만 팔고 A/S는 뒷전인 일부 ‘먹튀’ 업체를 제외하면 2~3년 이내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1년 동안은 해상도나 렌즈 등의 사양 경쟁이 지속되겠지만 이후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텔레매틱스, 인포테인먼트와 결합될 수밖에 없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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