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한주엽기자] 권장소비자가격 표시금지제도가 있다. 제조사가 처음부터 높은 가격을 표시한 뒤 ‘대폭 깎아준다’는 식으로 소비자를 오도할 우려가 있다는 취지에서 지난 99년 처음 도입됐다.
이 같은 제도에 따라 TV와 세탁기, 카메라, 의류 등 32개 품목에는 제조사가 권장소비자가격을 붙일 수가 없다. 지식경제부의 개정안에 따라 오는 7월부터는 라면과 과자 등 금지 품목이 279종으로 확대된다는 소식도 들린다.
슈퍼마켓 가서 라면 가격을 물어봤을 때 “얼마까지 알아보고 왔어?”라는 대답을 듣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제도의 취지는 수요와 공급 법칙에 따라 유통 채널별로 다양한 판매 가격을 책정하도록 해 결국 소비자에게 이득을 주겠다는 것이다. 전자제품의 경우 인터넷으로 최저가를 쉽게 알아볼 수 있으니 소비자에게 유리한 제도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역기능도 있다. 권장소비자가격 표시금지제도를 악용해 가격으로 장난을 치는 유통 업체가 많다. 심지어 제조사와 유통업체와의 ‘담합’이 의심되는 사례도 있다.
한국후지필름이 예다. 한국후지필름은 자사 콤팩트형 디카 J 시리즈를 오프라인 유통 총판에만 공급한다. 제품을 보유한 총판이 한 곳 뿐이니 기준가격도 엿장수 마음대로다. 20만원짜리가 40만원대의 기준가를 형성하고 있다.
바가지를 쓰는 소비자 피해도 상당하다. 한국후지필름에 따르면 500대~1000대의 J 시리즈 물량을 오프라인 유통 총판이 가져갔으니 이를 소진하는 만큼 바가지 피해자가 생기는 셈이다. 한국후지필름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
문제를 없애는 방법은 간단하다. 최저가 경쟁이 있는, 그래서 기준 가격이 정확하게 책정되는 온라인 유통 채널에도 제품을 공급하면 된다.
그러나 한국후지필름은 그럴 수 없다는 입장이다. J 시리즈는 인기가 없어 온라인 유통 채널이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인기 없는 제품이라면 수입을 하지 않으면 된다.
믿기 힘든 얘기지만 한국후지필름은 본사에서 내려오는 ‘할당량’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소화를 해야 한다고 했고, 앞으로도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결국 소비자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셈이다. 기자는 이러한 사안에 대해 며칠 전 열린 기자간담회장에서 문제 제기를 했다. 그랬더니 “요즘 그 정도 모르는 소비자가 있나?”라고 공개적으로 반문했다. 바가지를 써도 모르고 구입한 소비자 책임이라는 것이다. 지금 법이 그렇기 때문에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알고도 모른척 하는 한국후지필름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고객은 회사존립의 원천이다”라는 한국후지필름의 자체 윤리강령은 말뿐이었던 것이다.
한국후지필름에서 디카 사업 부문을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매년 적자를 내고 있다고 우는 소리를 했다. 다른 사업 부문에서 번 돈을 디카 부문이 갉아먹으니 회사에서 눈칫밥을 먹고 있다고 했다.
비윤리적이라는 지적을 받으면서도 적자를 내고 있다면, 사업을 지속시킬 이유가 있는 지 모르겠다. 비윤리적이라는 낙인이 찍힌 상태로 흑자 경영이 가능할 지도 의문이다. 분명한 것은 이대로 디카 사업을 계속하다가는 기존 ‘후지필름’의 브랜드 이미지도 손상될 게 뻔하다.
<한주엽 기자>powerusr@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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