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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리서치뷰] "생각조차 외주를 맡기는 시대"... 학생이 위험하다

앤트로픽 교육 리포트: '대학생은 클로드를 어떻게 쓸까' 리뷰

전세계 AI 산·학·연이 공개하는 AI 논문·조사분석 결과 중에는 꽤 흥미로운 주제가 많습니다. 다만 대부분 복잡하고 읽기 어렵습니다. 'AI 리서치뷰'는 이를 누구나 AI 트렌드 추종에 유용하게 참고할 수 있는 형태로 압축 리뷰해 드립니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최근 몇년 사이 학생들이 학교 과제 및 리포트 작성에 AI를 오남용하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어쩌면 편의를 추구하는 인간의 특성상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변화가 인간 고유의 고차원적 인지 능력과 사고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면 어떨까요? 지난 9일 오픈AI의 라이벌 기업인 앤트로픽(Anthropic)이 공개한 '앤트로픽 교육 리포트: 대학생은 클로드를 어떻게 쓸까(Anthropic Education Report: How University Students Use Claude / Kunal Handa 외 13인 연구팀)'는 이런 질문에 관한 흥미로운 데이터와 인사이트를 담고 있었습니다.

ⓒ ChatGPT Image
ⓒ ChatGPT Image

■ 한번 읽어볼 이유

이 보고서는 최근 학생들의 학습형 AI 사용 실태를 가장 실증적으로 분석해낸 점에서 주목됩니다. 지금까지 이와 유사한 연구는 대부분 설문조사나 인위적인 실험 기반으로 이뤄졌습니다. 자연적이지 않았다는 이야기인데요. 이에 앤트로픽은 신뢰성 강화 차원에서 직접 자사의 '클로드 AI' 서비스를 이용하는 실제 대학생들의 대화 100만건을 익명화된 조건 안에서 분석하기로 했습니다. 즉, 이론이 아니라 실제 행동 데이터에 기반한 연구라는 이야기인 셈입니다. 이를 통해 ▲교사 입장에서는 AI 시대의 학생 평가와 수업 설계를 고민하기에 유용하며 ▲교육 정책 입안가에게도 구체적인 정책 기준 마련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학생들 역시 자신의 AI 활용 상황을 돌아보기에 좋은 참고 자료로서 읽어볼 만합니다.

■ 핵심 내용 – "복잡한 생각은 AI에게"

클로드를 사용하는 학생들의 가장 흔한 용도는 학습 콘텐츠 생성(39.3%)기술적 설명 및 문제 해결(33.5%)이었습니다. 이를 교육 심리학자인 블룸의 분류(Bloom's Taxonomy)를 이용해 사용 목적을 분류할 경우 다시 '창작(39.8%)'과 '분석(30.2%)' 작업에 AI를 사용했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둘 모두 '고차원적인 사고 기능'에 해당하는데요. 학생들이 클로드에 요청한 내용의 약 3분의2는 원래 자신이 수행해야 했던 복잡한 인지 및 사고 영역의 문제를 위임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② 앤트로픽은 이 같은 AI 사용의 세부 목적이 '학습'을 위한 것인지 '꼼수'를 위한 것인지는 명확한 구분이 어려웠다고 합니다. 다만 관련 명령에 "머신러닝 문제에 대한 정답을 제공하라", "표절 의혹을 회피하기 위해 문장을 수정해달라" 같은 요청들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는 학생들이 AI를 부정행위에 이용하려 했던 실제적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교육계가 시급히 대응안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③ 또한 앤트로픽은 AI가 학습을 도울 수 있으나 동시에 교육의 본질 또한 흔들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에 '소크라테스식 학습 모드'를 시범적으로 개발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기존의 AI 출력 형태는 주로 '질문→정답' 구조입니다. 반면 소크라테스식 학습 모드는 질문에 대해 곧바로 정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AI가 사용자에게 되물으며 사고를 유도하는 '문답식'이 특징입니다. 이는 교육 현장에서 학생의 비판적 사고력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문제의 정답이 뭐야?"라는 질문을 받은 AI가 "정답은 B"라고 말하는 대신, "좋은 질문이야. 그런데 우선 네 생각에 A와 B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해?"라고 역질문을 던져 학생이 먼저 생각하게 만듭니다. AI는 이어서 사용자가 점진적으로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대화를 해나가는 겁니다.

블룸의 교육 목표 분류학(Bloom’s Taxonomy) 기준으로 조사 대상자들을 분석한 결과 약 70%에 달하는 사용자가 클로드 AI에 '창의성' 및 '분석'에 해당하는 사용 목적을 지닌 것으로 분석됐다. [ⓒ 리포트 본문 中]
블룸의 교육 목표 분류학(Bloom’s Taxonomy) 기준으로 조사 대상자들을 분석한 결과 약 70%에 달하는 사용자가 클로드 AI에 '창의성' 및 '분석'에 해당하는 사용 목적을 지닌 것으로 분석됐다. [ⓒ 리포트 본문 中]

■ 시사점 – '생각의 외주화'를 경계할 때

중립적인 시각으로 보면 본 보고서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표본이 클로드 사용자에 국한되었고 불과 18일 간의 데이터만을 기반으로 분석되었기 때문입니다. 전체 교육 현장에 대한 일반화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기술적, 사회적 측면에서 다양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우선 학생들이 AI에게 분석 및 창작 같은 인간의 고등 인지 기능을 위임하기 시작한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는 현시점의 AI가 단순한 질의응답 도구를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학생들이 AI를 단순한 검색 도구 이상의 '지적 공동 창작자'로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사회적 측면의 시사점은 더욱 중요해 보입니다. 앤트로픽의 우려대로 고차원적 사고의 위임 현상은 이미 생각조차 일종의 '외주'를 맡기는 경향이 학생들 사이에서 관찰되기 시작한 것이니까요. 교육 담당자들은 앞으로 학생들이 AI를 활용할 때 '비판적 사고력'과 '메타 인지'의 훈련 필요성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AI를 썼다고 무조건 부정행위인가?"라는 질문에 대응할 수 있는 새 윤리 기준의 필요성, 이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반영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도 떠올리게 합니다.

끝으로 다음과 같이 비유해볼까요? 오늘날 AI는 학습의 '언덕'을 쉽게 오르도록 돕는 '계단'과 같아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계단이 에스컬레이터였다는 겁니다. 덕분에 학생이 직접 두 발로 걸어 오를 때 키워질 사고력의 근육은 점점 약해지게 됐습니다. 종래에는 고층 계단을 결코 스스로 오를 수 없는 상태에 이를지도 모릅니다. 이런 측면에서 앤트로픽의 이번 보고서는 '우리가 현재 그 계단에 얼마나 올라타 있는지' 실측한 초기 자료란 점에서 적잖은 함의를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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