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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액 빼고 다 한국産인데…양극재·음극재·분리막, 美 투자 '딜레마' [소부장박대리]

에코프로 미드니켈 양극재.
에코프로 미드니켈 양극재.

[디지털데일리 배태용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한 관세 정책으로 한국 배터리 소재 업계에 '미국 진출'이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배터리의 소재를 대부분 한국 등 아시아 수입품을 사용하는 만큼, 배터리 단가를 높이는 데 일조할 것으로 전망돼서다. 이 같은 고관세 정책이 언제까지 이어질지와 미·중 간 무역 갈등 등의 불확실성이 커 한국 소재 기업들의 고심도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9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최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일을 '미국 해방의 날로 명명하고, 대부분 국가를 대상으로 한 상호 관세 적용 방안을 발표했다. 3일부터는 향후 모든 수입품에 대해 기본 10% 관세를 부과하고, 주요 무역국에 대해 국가별로 차등화된 개별 관세를 매기는 상호 관세 정책이 발효됐다. 이에 따라 한국은 25%의 상호 관세를 부여받게 됐다.

이 같은 조치는 미국 전기차 시장을 최대 수요처로 삼고 있는 국내 배터리 업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한국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은 미국 내 합작공장 또는 단독공장 등을 통해 현지 생산 체계를 확보한 상태이나, 배터리 제조에 생산되는 소재들은 현지화가 되지 않은 상태다.

업계에 따르면 배터리 4대 소재로 분류되는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 중에서 전해액을 제외한 주요 소재가 대부분 한국과 아시아 지역에서 조달되고 있다. 전해액의 경우, 엔켐이 미국 오하이오와 조지아주에서 총 10.5만 톤(t)을, 동화일렉트로닉스가 8.6만톤 규모의 생산라인을 확보하며 미국 내 공급 기반을 갖췄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배터리 셀에 들어가는 소재가 여전히 한국 등 아시아 중심이기 때문에, 관세가 현실화할 때 미국 내에서조차 가격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다. 안 그래도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둔화) 영향으로,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가격까지 더 비싸지면 전기차 수요 둔화는 더욱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목되는 점은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이 같은 주장을 해왔던 만큼, 고강도 관세 정책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최대 수요처인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 수요 둔화를 막기 위해선 전기차 OEM은 물론 배터리셀, 소재사까지 현지화 작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상호관세 발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상호관세 발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하지만 소재 업체로서는 진출 여부를 당장 결정하기 어려운 상태다. 대규모 투자금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단기간 내 수익성 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미국 정책 방향이 또 뒤집힐 수 있다는 점도 리스크다.

업계 한 관계자는 "양극재만 해도 톤당 5만 달러 수준의 고가 제품이며, 미국에 생산라인을 구축하려면 1조원 이상이 필요하다"라며 "공장 부지, 인건비, 전력비 등 모든 요소가 한국보다 높아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해액은 비교적 진출이 쉬운 편이지만, 양극재·음극재·분리막은 공정이 복잡하고 초기 CAPEX(설비투자비용) 부담이 상당하다"라며 "미국 시장만을 겨냥해 투자를 단행하기엔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글로벌 고객사 요청이 구체화하기 전까지는 선뜻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대차도 미국에 대규모 전기차 생산시설을 건설하는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의 '북미 중심 생산 체계' 전환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배터리 소재 기업들도 중장기적으로는 현지 진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결국 미국 수요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OEM 및 셀 제조사와의 공급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시점엔가 현지화 결단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다른 한 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정책 불확실성과 투자 부담으로 인해 관망세가 이어지겠지만, 미국이 중국산 제품을 정조준하며 배터리 소재에까지 고율 관세를 적용하게 된다면 한국 기업들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것"이라며 "현지 조달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인도네시아산 광물처럼 비교적 저렴한 원재료 수급과 연계한 북미 공장 구축 등이 대안으로 논의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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