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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위기극복] 글로벌 패권주의 속 韓 소부장, '첩첩산중' 위기 뚫을 방안은

글로벌 경제 위기와 정치적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새해가 밝았다. 급변하는 글로벌 패권 경쟁, 국내 규제 변화, 기술 혁신의 흐름 속에서 각 산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이 구체화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신기술과 시장 변화에 대응한 전략적 전환을 통해 산업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것이 대한민국에 숙제로 다가오고 있다. <디지털데일리>는 신년 기획을 통해 대한민국이 미래의 불확실성을 돌파하고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실질적 해법을 제시하고자 한다.<편집자>


HBM3E 16단.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반도체·배터리 등 국가전략첨단산업을 향한 국가전이 본격적인 양상을 띠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 발생한 정치적 위기가 우리 산업계의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주요국 정책 대응을 위한 외교·교섭 역량이 내려앉으며 각 기업의 대응력이 시험받고 있어서다.

반도체는 12·3 비상 계엄 사태 및 탄핵 정국 돌입으로 계류된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통과,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수출 변수 대응이 중점적인 과제로 꼽힌다. 배터리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비롯해 전기차 보조금 철폐, 현지 공장 수익성 확보 등이 가장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 메모리 양극화 현상 지속…자국 우선 기조, 장기적 부담으로

반도체 업계는 지난해 떠오른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 열풍에 따라 기존 메모리 공급 판도가 바뀌는 양상을 띠고 있다. 기존에는 범용 제품군인 PC와 모바일, 고성능인 서버가 축을 이루며 상승-하강 사이클을 반복하는 형태를 띠어왔다. 신규 업체의 진입 여부와 재고 과잉·수급 차질에 따라 시장 가격이 형성되면서 제품별 가격 차이도 유사한 흐름을 보여온 것이다.

하지만 맞춤형 개발·수주 구조가 중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입지가 커지면서 매출 구조도 수주 산업인 시스템반도체와 유사한 형태로 변해가는 모습이다. 시황에 따라 가격이 형성되는 것이 아닌 고객과의 협상을 통해 가격이 고정되는 물량이 늘어난 만큼, 이 경쟁에서 누가 승리하느냐가 한해 실적을 판단하는 바로미터가 됐다는 의미다.

HBM의 성장세에 따라 메모리반도체 시장도 격랑에 빠진 모습이다. PC, 모바일 제품군은 고금리·고물가 및 경기침체 지속에 따라 강한 하강 사이클을 탄 반면, HBM은 잇따른 수요로 탄력적인 공급이 이어지는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졌다. 특히 중국 창신메모리(CXMT) 등이 범용 메모리 시장에 확대 진입하면서 HBM 등 고성능 제품군 외 수익 구조가 상당히 약화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 가운데 미국, 중국, 유럽 등을 위시한 국가전이 펼쳐질 경우 정책적인 수익 구조 악화 리스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주요 반도체 수출국인 미국, 중국 등이 자국중심주의를 펼치면 펼칠수록, 내수 기반이 약한 반도체 기업들은 HBM을 비롯한 전 영역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올해 출범을 앞두고 내세운 보호무역주의와 관세 장벽 등이 반도체 산업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 현지로 끌고 오겠다는 기조는 바이든 행정부와 유사하지만, 유인책을 쓴 이들과 달리 트럼프 행정부가 수익성 압박을 무기로 적극 활용할 여지가 있어서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10~20%의 보편관세가 적용될 경우 대미 수출 효과가 크게 감소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산업연구원은 이를 분석한 보고서에서 보편관세 부과시 한국 대미 수출 감소 효과가 최소 9.3%에서 최대 13.1% 수준일 것으로 내다봤다. 이중 반도체 수출은 최소 4.7%에서 최대 8.3%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반도체 산업은 자동차를 제외한 타 업종 대비 비교적 감소 수준이 낮으나, 한국의 최다 수출 품목인 점을 고려하면 적지않은 타격이다.

미중 무역 갈등으로 반도체 내재화에 나선 중국으로의 수출도 약화될 우려도 있다. 이미 중국은 반도체 칩과 제조 장비 등에서 자국 기업들을 대거 육성한 상황이며, 한국을 비롯한 외산 장비 비중을 낮추고 있다. 이 상황에서 첨단 핵심 장비 영역이 없는 국내 입장에서는 더 이상의 판로 개척이 어려울 수 있다는 부담이 따르고 있다.

얼티엄셀즈 3공장 전경 [ⓒ얼티엄셀즈]

◆ 美 정책에 휘둘리는 배터리…中 영향력 확대 우려

배터리 산업에서는 미국 행정부의 정책 결정이 더욱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배터리 3사가 대규모 공장을 미국에 짓고 있는 상황인 데다, 전기차 수요가 정책적 변화에 따라 움직이고 있어 관련 혜택 변동이 매출에 직접적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이후 전기차 구매 보조금 폐지, 배터리·핵심 광물 관세 부과 등의 안을 고려하고 있다. 구매 보조금이 폐지되면 현재 내려앉은 전기차 시장의 반등 여지가 줄어들 수 있다. 그만큼 배터리 생산량이 회복하지 못하며 투자 부담을 떠안는 처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배터리 3사의 미국 내 대규모 투자가 아직도 이뤄지는 점을 고려하면, 생산 수준에 못 미치는 수요로 인한 고정비·가동률 저하 우려가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배터리·핵심 광물 관세 역시 배터리 생산에 대한 원가 상승을 부추길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배터리 핵심 광물은 대다수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상황이며, 올해와 내년을 기점으로 미국 및 미국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을 중심으로 판도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FTA 체결국을 포함해 관세가 매겨진다면 투자는 투자대로, 생산원가 부담은 부담대로 떠안을 수 있다는 관측이 지속되고 있다.

이를 회피하기 위해 미국 현지에 생산 기지를 마련한 광물·소재 기업도 우려가 적지 않다. 판매 제품에 대한 무역 관세가 없는 대신 높은 물가와 인건비를 감당해야 해서다. 관세 정책이 시행될 경우 소비재·식료품 등 다방면의 물품 가격 상승이 예상되는 만큼, 현지 공장을 설립한 기업에게도 그 부담이 더해질 수 있다.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이 폐지되고 광물 관세가 현실화되면 중국의 시장 영향력이 강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의 저가 전기차를 견제할 수단이 사라져 전기차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은 물론, 중국 주도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확대 판도를 저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현재 미국과 유럽은 중국 전기차에 관세를 매기고, 광물·소재 부문에 제한을 둠으로써 전세계 시장 진출의 문을 좁혀둔 상황"이라며 "다른 국가의 수출품에 관세를 두고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한다는 것은 자국 전기차의 구매 이점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중국 중심의 전기차·배터리·소재 진입을 배제하기 힘든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전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2[ⓒ연합뉴스]

◆ 韓 외교 컨트롤타워 공백…탄핵 정국 종식·자국 지원법 통과가 해법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와 미국 등 주요국 변수가 다가오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탄핵 정국 진입에 따른 외교 공백이 가장 큰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최고 외교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황이 벌어졌고, 국무총리 탄핵안 통과에 따라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 겸 부총리가 국정·경제·외교 현안을 모두 챙겨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권한대행의 권한대행' 체제가 굳혀진 만큼 현 정부와 실리적인 외교를 위한 방안을 추진하는 한편, 기업·의회·공공기관 등이 자체적으로 외교 접촉을 늘리는 다각적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정상 외교가 힘든 상황에서 '코리아 패싱'이 현실화되는 만큼 이 부담을 나눠야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다.

탄핵 정국이 빠르게 종식돼 대외 신인도 및 리스크를 줄여야한다는 관측도 있다. 불안한 정국으로 원화 가치 하락과 대외 신인도가 하락할 경우 해외 수출이 대다수인 반도체·배터리 기업 타격이 불가피한 만큼, 정국을 안정화해야만 정상적인 기업 운영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금융시장을 활용해 상장을 앞둔 소재·부품·장비 기업들도 탄핵 정국이 시작됨에 따라 기업공개(IPO) 일정을 미루는 등 관련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는 탄핵 정국 안정화와 함께 반도체특별법을 비롯한 첨단전략산업 지원 방안이 빠르게 채택돼야 한다는 입장도 견지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이 국가전 양상으로 돌입하며 대만·일본·미국 등 주요국이 현지 투자 기업에 세제 혜택·보조금 등을 늘리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관련 지원제도가 미비해서다. 현재 반도체특별법을 포함한 조세특례제한법 등은 비상계엄 여파에 따라 지난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정부와 국회는 관련 상황의 시급성을 고려해 반도체특별법 등을 빠르게 제정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반도체특별법, 국가기간전력망확충법, 고준위방폐장법, 해상풍력법 등 국가 미래 먹거리 사업법을 1월 국회에서 일괄 처리하자는 안을 냈고, 주 52시간제 적용 기준으로 반대를 취하던 야권에서도 이를 처리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 역시 관계부처 합동으로 낸 '2025년 경제정책방향'에서 반도체특별법 제정 지원과 추가 재정·세제를 지원하는 안을 구체화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특별법이 통과돼야만 세제 혜택은 물론, 보조금 등 국내 생태계 기반을 다질 수 있는 논의와 협의가 시작될 수 있다"며 "조속한 통과가 이뤄져야만 때늦지 않은 AI, 첨단 분야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개별 기업이 미국 현지 공장의 수익화를 위한 원가절감 구조 개선을 추진하는 한편, 고전압 미드니켈·LFP 등 신규 중저가 배터리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고성능 전기차 수요가 되살아나지 않는 상황인 만큼, 중국 진입이 어려운 시장을 노려 중저가 배터리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겠다는 목표다.

정부에서도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의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통상 대응체계를 마련하는 한편, 정책금융 공급 확대를 위한 인프라 조성과 공급망 안정화 기금 등을 마련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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