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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누굴 구하면 방송시장이 사나

[디지털데일리 강소현기자] “누굴 구해야 전체 방송시장이 살 수 있겠냐”. 최근 홈쇼핑사의 블랙아웃(송출 중단) 사태를 두고 학계전문가들에 물었다.

시장에서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업자는 없지만, 유료방송 플랫폼을 우선 구해야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물건을 만들어도, 물건을 팔 가게가 없으면 되겠냐는 것이었다.

CJ ENM 커머스(CJ온스타일)는 지난 5일 자정 딜라이브와 아름방송, CCS충북방송에서 송출을 중단했다. 홈쇼핑 송출수수료를 두고 홈쇼핑과 케이블TV(SO) 사업자가 갈등을 이어온 가운데 송출 중단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처음이다.

양측의 입장은 분명하다. 송출수수료는 홈쇼핑이 방송채널에 편성된 대가로 유료방송 사업자에 지급하는 것인데, CJ온스타일은 8VSB의 가입자 비중이 높아 매출 개선이 어렵다며 송출수수료 인하를 요구해왔다. 반면 유료방송사는 홈쇼핑사가 방송 채널에서 모바일 구매를 유도해 방송 매출을 줄이는 눈속임을 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사업자 중재에 나서야하는 정부 앞엔 난제가 떨어졌다. 가장 큰 문제는 방송시장에 누구 하나 힘들지 않은 사업자가 없다는 것이다.

케이블TV 사업자는 그 중에서도 맨 앞자리에 내몰렸다. CJ온스타일의 홈쇼핑 송출 수수료의 인하안을 수용하는 경우 향후 사업 전개를 보장하기 어려울 정도다. 업계에 따르면 CJ온스타일인 요구한 인하율은 무려 60%~70% 수준이다.

물론, CJ온스타일이라고 쉬운 상황은 아니다. 2022년 TV홈쇼핑 7개 업체들의 방송 매출액은 3.7% 감소하면서, 2020년(1.8%)과 2021년(2.5%)에 이어 3년 연속 역성장을 이어갔다.

CJ그룹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유료방송 플랫폼에 콘텐츠를 제공한 대가로 받는 ‘콘텐츠 사용료’를 두고 같은 그룹사인 CJ ENM이 유료방송 플랫폼과 갈등을 겪고 있다. 즉, 유료방송 플랫폼에 더 받을 수 없다면, 주는 것을 줄이자는 취지다.

하지만 학계 일각에선 이번 사태가 업계 내 ‘약한고리’를 건드렸다는데 분노한다.

방송시장에서 거래 구조에 대한 반발의 표현으로 종종 ‘송출 중단’ 카드를 제시해 왔지만, CJ온스타일이 송출을 중단한 논리는 빈약하다. CJ온스타일은 해당 사업자들의 경우 ARPU(가입자당평균매출)가 낮은 8VSB(8-Vestigial Side Band) 가입자 비중이 커 송출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8VSB는 방송을 전송하는 기술적 방식으로 실제 홈쇼핑사의 매출과는 무관하다. 예컨대 사과를 대중교통으로 운반하든, 자가용으로 운반하든 사과를 파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겠는가. 가게는 사과만 잘 팔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비자가 운반방식을 따지겠는가. 그렇지 않다.

더욱이 다른 사업자와 비교해 송출을 중단한 3곳의 8VSB 가입자 비중이 높은 것도 아니다. 이에 업계는 홈쇼핑사가 송출수수료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자 영향력이 약한 세 사업자를 인질 삼았다고 보고 있다

방송시장 내 재원은 순환하는 구조로, CJ그룹도 플랫폼의 몰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플랫폼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콘텐츠를 편성할 플랫폼도, 콘텐츠 사용료를 줄 사업자도 사라진다는 것을 말한다.

CJ온스타일은 언제든지 반대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시장 내 주도권이 다시 플랫폼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는 경우 이번 사태는 향후 CJ그룹에게 '전례'라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2020년에도 CJ ENM은 딜라이브를 상대로 송출중단을 검토한 바 있다.

국내 방송시장에서 CJ가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지만, CJ만 홀로 살아남는다면 무슨 의미인가. 상생의 고민이 필요한 때다.

재원 분배의 적정성은 분명 검증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안일하게 대처해온 정부의 잘못도 배제하긴 어렵다. 시장 내 갈등은 이미 수차례 예고됐다. 시장이 어려워지면서 한정된 재원을 둘러싼 방송사업자 간 갈등은 격화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 사태만 해도 4년 전 CJ ENM-딜라이브의 상황과 닮았다. 2020년 CJ ENM은 딜라이브에서 송출 중단한다고 말했고, 이에 정부는 분쟁중재위원회를 열어 중재에 착수했다. 당시 학계에선 데이터 기반한 대가 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아직까지 정부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지 못했다.

홈쇼핑 송출수수료는 물론, 재원과 관련해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은 이미 만들어진 상황으로 남은 건 정부의 의지와 추진력이다. 학계에선 소관 부처들의 담당자도 여러번 바뀌면서 논의가 하염없이 지연된 가운데, 지속 가능한 콘텐츠 생태계 마련을 위해선 소관부처의 고민과 적극적인 노력, 사업자의 협력 의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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