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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ELS 사태', 어느덧 1년… "무책임한 은행" 실제 피해자 얘기 들어보니

"상품 판매하려 투자자 유형등급도 제맘대로 상향"… 투자자정보확인서 등 가입 서류 관련 부실 정황도 상당수

1년전인 2023년 12월,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 H지수 ELS 피해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1년전인 2023년 12월,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 H지수 ELS 피해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권유승 기자]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1년전 이맘때 쯤, 홍콩H지수가 5700 이하로 곤두박질치면서 국내 금융권에도 초비상이 걸렸다.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상품과 관련해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 1월부터 만기가 도래한 ELS상품들의 손실이 현실화됐다.

특히 국내 은행권에서 KB국민은행이 압도적으로 홍콩ELS 상품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로인해 KB금융은 올 1분기 결산에서 8620억원의 충당금을 쌓아야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도 홍콩ELS 피해자들의 한 숨과 원망은 오히려 더 커졌다.

'불완전 판매'가 명백한데도 손실의 100% 배상은 이뤄지지않았고, 자율배상 비율에 따라 은행측이 제시하는 금액에 합의해야했다. 합의하지 않으면 소송으로 갈 수 밖에 없는데 이 또한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가.

'홍콩 ELS' 상품을 팔았던 은행들은 "이제 80%이상 자율배상에 이르렀고, 배상금액도 충당금에 반영해 실적에 미치는 영향도 없다"며 한물간 이슈로 취급하면서 애둘러 쟁점을 외면하는 모습이다.

자율배상 협의를 끝낸 피해자는 사안이 종료됐으니 더 이상 신경끄라고 하고, 동의하지 못한 피해자에겐 "그럼 법적으로 해보라"는 식의 매정함만 남았다.

◆고령자에게 더 집요했던 은행원들 '금융 불완전판매'에서 시작된 고통

먼저, 은행들이 고령 고객들을 대상으로 홍콩 ELS 상품을 가입시키기 위해 은행측에서 자의적으로 '투자자 유형등급'까지 조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은행측이 불완전판매를 시인했음에도 이런저런 차감 요인을 적용하면 정작 최종 배상비율은 터무니 없이 적어 "애초에 배상을 할 의지가 있는 것이냐"는 피해자들의 불만도 나온다.

4일 <디지털데일리>가 입수한 국내 한 시중은행의 홍콩 H지수 ELS 배상비율에 대한 한 이의제기서에 따르면, 이 은행은 상품에 대한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시키지 않은 채 고령자를 대상으로 ELS 가입을 종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ELS 피해자의 아들인 A씨는 "파생상품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으신 나이 드신 할머니께 이런 상품을 권유한 불완전판매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분개했다.

그는 "이러한 사례는 과거 OO은행 당시 가입한 상품뿐만 아니라 최근 고령 투자자보호를 위한 다양한 규정들이 도입돼 있음에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며 "해당 상품의 판매담당자와 관리자, 준법감시인의 무책임함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A씨에 따르면, ELS 관련 가입자 투자자확인서 및 투자자정보확인서, 고령투자자체크리스트, 적합성보고서, 상품거래신청서 등이 부실하며 심지어 서명 등이 기재 돼 있지 않은 경우는 물론 내용까지 틀린 경우가 많았다.

A씨는 "가입자인 어머니의 경우에도 준법감시인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하시며 투자자정보확인서 및 투자자확인서 내용도 알지 못하고 판매자가 작성하라는 대로, 서명하라는 대로 하셨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은행의 관리자나 준법감시인이 한 번이라도 어머님을 대면하고 얘기했다면 어머님이 금융에 대해 매우 취약한 고령투자자라는 점을 명확하게 알 수 있었음에도 서류상으로만 잘못 확인함으로써 이러한 사태를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A씨는 기자에게 ▲투자자유형등급 부적합 상품 가입 ▲투자자정보확인서, 상담확인서 부재 ▲투자자확인서, 신탁상품거래신청서 기재 부실 ▲고령자체크리스트, 적합성보고서 부실 등의 사례를 불완전판매 증거로 내세웠다.

◆"판매자가 임의로 자료 작성"'준법감시인' 역할은 어디에?

특히 '투자자 유형등급' 판정기준은 판매자가 투자자의 상황을 파악하고 확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은행 판매자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정해졌다고 A씨는 주장했다.

즉 가입자는 관련 내용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판매자가 임의로 자료를 작성하고 가입자의 이름과 도장만 찍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판매자가 위험등급이 가장 높은 금융상품에 가입시키기 위해 투자자유형등급을 기존 '적극투자'에서 '공격투자' 등급으로 상향 조정한 의혹이 있다고 A씨는 언급했다.

아울러 일부 상품의 투자자정보확인서에는 서명의 대필 의혹 정황까지 제기됐다.

또한 해피콜의 경우 전부 "예"라고 답변하라는 은행직원의 지시대로 형식적인 답변에 불과했다고 A씨는 지적했다.

A씨는 <디지털데일리>와 통화에서 "이것은 처음부터 불완전 판매"라며 "투자자 등급이 어떻게 막 왔다갔다 하나. 4등급이었다가 2등급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3등급으로 내려갔다가… 한동안 2등급으로 지속되던 중에서도 홍콩 ELS 가입을 할 때엔 갑자기 1등급으로 올라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씨는 "이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된 이후 일정 등급이 맞춰지지 않으면 (홍콩 ELS를) 못 파니까 그랬던 것"이라며 "그런데 준법감시인이 확인도 안 했다. 서류에도 투자자가 투자자등급과 상품등급을 자필로 쓰라고 기재 돼 있는데, 그것마저 공란"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은행 본사 직원은 불완전판매를 모두 인정하기 때문에 배상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며 "그런데 해당 배상비율은 최대 45%이고 개별 상황에 따라 차감을 한다는데, 차감을 시작하니 결국 남는 게 없다(5%)"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 해당 은행 관계자는 "고객이 설문지에 답변 기입·제출 후 이를 은행직원이 전산투입을 하면 성향분석 결과표를 고객에게 교부, 확인하도록 절차가 마련돼 있다"며 "즉 은행쪽에서 자의적으로 조정이 불가하다"고 해명했다.

이어 "또한 지점내에서 서류징구 이후 규정에 따라 서류작성 내용을 책임자와 준법감시담당자가 확인하도록 돼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홍콩ELS와 관련해 고객과 은행이 각각 주장하는 것에는 오차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홍콩ELS와 같은 투자상품에 있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은행에 대한 '신뢰'는 힘들어 보인다.

주요 금융지주사들은 연일 '밸류업'을 떠들고 있지만, '홍콩ELS 사태'는 현재 국내 은행들의 부도덕성과 어긋난 성과 경쟁, 후진적 내부통제 관행, 그리고 금융 당국의 총체적 관리 감독 무능이 어우러진 참사로 기록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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