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왕진화 기자] 최근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추진 중인 마이데이터(개인정보전송요구권) 제도에 대해 국내 유통기업과 일부 소비자들의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제도는 오는 2025년 3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민감한 개인정보가 해외 기업 등으로 무분별하게 유출될 수 있다는 점, 국내 유통기업 입장에선 사유 재산인 축적 데이터를 무상으로 해외 기업 등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점에서 역차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유통학회(학회장 이동일 교수)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한국인터넷기업협회(회장 박성호, 이하 인기협)가 후원하는 ‘마이데이터 제도와 국내 유통산업의 미래’ 세미나가 29일 개최된 가운데 이 자리에 모인 전문가들 역시 한목소리로 이 제도가 국내 유통업계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앞서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이하 개보위)는 지난해 3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통해 도입된 마이데이터 제도의 후속 입법으로, 개인정보보호법 시행령 3차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며 마이데이터의 본격 시행을 위한 기준 및 절차 등 수립을 추진 중이다. 이 중 제3자 전송의 우선 추진 분야로 의료, 통신과 유통 분야가 포함됐다.
그간 개보위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으로 마련된 마이데이터 제도에 대한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세부 기준을 구체화해왔다. 시행령에 따르면 최근 3년 매출액이 평균 1500억원 이상, 300만명 이상 개인정보를 저장하는 유통업체(통신판매 또는 통신판매중개업자)는 소비자 동의 시 개인정보를 마이데이터 업체에 보내게 된다.
일부 소비자와 국내 유통 기업들은 반발하고 있다. 마이데이터 제도가 데이터의 주권을 소비자에게 돌려준다는 취지에서 시작됐음에도 정작 그 혜택을 누리는 것은 해외 소재 기업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세미나에 나선 발제자 및 종합토론자들 역시 모두가 한목소리로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시행을 준비 중인 마이데이터 정책이 도입될 경우 국내 데이터의 해외 유출은 물론, 데이터 산업에 대한 투자 의지와 국내 유통산업 경쟁력이 저하되는 등 다양한 문제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코스트코 온라인, 유튜브 쇼핑, 구글 쇼핑, 애플스토어, 아마존 등 미국 해외사업자와 이른 바 ‘C커머스’(차이나+이커머스)로 대두되는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 사업자 모두 정보전송 의무자다. 데이터가 오픈되는 순간 국내 유통 산업과 데이터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는 비단 국내 유통기업에만 한정되는 이슈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중소 셀러들의 판매상품이나 마케팅, 주요 고객군, 구매행태 정보 등도 함께 공개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유통기업과 거래하는 중소 납품업체의 정보 유출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정연승 교수는 “기업들이 서비스 운영과 판매활동을 통해 축적한 데이터는 해당 기업의 사유 재산으로 봐야 하며, 이미 많은 국가들에서 데이터 자산의 가치가 얼마인지 평가하는 제도도 도입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도 개보위는 전세계 유통산업과 데이터 자산에 대한 흐름을 무시한 채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며 쌓아온 데이터를 제3자에게 무상으로 전송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마이데이터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마이데이터 제도가 시행될 경우,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제3자인 기업은 국내 스타트업보다는 이를 소화할 수 있는 규모의 해외 기업일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김현경 서울과기대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개인정보보호법학회장)은 “스타트업 기업이 막대한 비용의 마이데이터 서버를 유지 관리하는 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고, 이제 막 데이터를 수집해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려는 스타트업 기업들도 자신의 데이터를 경쟁사에 전송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정 교수는 구글, 아마존 등 해외기업 정보의 중국 유출로 통상 이슈가 일어날 것이라고도 내다봤다. 국내 마이데이터 사업 추진으로 인해 미국 기업의 영업비밀 및 고객정보가 중국에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게 되면 강력한 이의제기 등 통상 마찰이 크게 우려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데이터는 중국 정부 차원의 강력한 인터넷 통제시스템으로 인해 C커머스 각 사에서 자국 데이터의 해외 전송을 차단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 교수는 “미국, 유럽은 국가 간 경제안보 이슈로 데이터 이동권 적용 대상에서 유통을 제외하고 있음에도, 개보위는 국가 간 통상문제에 대한 신중한 고려와 협의 없이 마이데이터 사업을 강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마이데이터 제도가 시행되면) 국가 간 정보공유의 역차별 문제도 발생할 것이기에, 한국만이 아닌 미국과 유럽과도 연대해 이를 논의해볼 문제”라고 주장했다.
김현경 교수는 “규제의 적용이 실질적으로 (국내 유통기업과) 경쟁하는 해외 사업자에게도 국내 사업자와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선 형평성 차원에서 고민해 봐야 된다”고 짚었다.
이동일 한국유통학회 회장은 국내 소매유통에서 36%를 차지하는 온라인 쇼핑 분야의 데이터 공통화가 마이데이터 사업에서 구축되는 데이터 가치를 높일 것이라는 점에 대해선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소매유통업에서 구축되는 2차 데이터는 공공 영역이라기 보다는 민간 사업과 시장 영역에서 만들어진 것이란 점에서 신중하게 접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소비자들이 무심코 한 번 동의한 것만으로 상세한 구매 정보가 무차별적, 지속적으로 국내 참여 기업들에 제공되는 부분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안전과 통제 장치 없이 무차별적으로 개인정보를 상품화하는 마이데이터 제도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러한 우려에도 정부가 추진한다고 하면, (연맹 측은) 소비자들에게 마이데이터의 실상을 알리는 운동을 펼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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