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토종 인공지능(AI) 반도체를 대표하는 두 팹리스(설계) 업체 리벨리온과 사피온이 합병을 결정한 가운데, 고성능 AI 반도체의 주요 수요자인 국내 클라우드 업계도 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국내 클라우드서비스기업(CSP)들은 정부 ‘K-클라우드 프로젝트’를 통해 엔비디아 독주에 맞선 AI 반도체 국산화에 힘을 보태고 있던 상황으로, 향후 팹리스 업체들과의 합종연횡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리벨리온과 SK텔레콤은 올해 3분기 중 리벨리온과 사피온코리아간 합병을 추진하고 연내 통합법인을 출범할 계획이다. 사피온코리아는 SK텔레콤이 최대주주로 있는 사피온의 자회사이자 사업회사다. 합병은 리벨리온이 존속법인으로 남고 사피온을 흡수하는 형태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리벨리온과 사피온은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아닌 신경망처리장치(NPU)에 주력하는 AI 반도체 기업이다. GPU 시장에선 엔비디아가 압도적 경쟁력으로 군림하고 있지만, NPU 시장에선 아직 그만큼의 강자가 없는 만큼 두 국산 기업의 행보가 주목돼 왔다.
NPU는 대량 연산을 병렬 처리로 동시에 수행한다는 점에서 GPU와 같지만, AI 연산에 특화돼 좀 더 효율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시장을 주도하는 엔비디아 고성능 GPU가 비싼 가격과 품귀로 수급이 어려워지며 대체제로 떠오르는 추세다.
국내 CSP 3사의 경우 고성능 컴퓨팅 연산 능력을 갖춘 AI 데이터센터 확보가 중요해짐에 따라, 고성능 GPU는 물론 국산 업체들이 만드는 NPU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네이버클라우드는 자사 스타트업 육성 기관 D2SF를 통해 발굴한 퓨리오사AI, KT클라우드는 그룹 차원에서 투자한 리벨리온, NHN클라우드는 SK텔레콤과의 협력관계에 따라 사피온의 NPU를 각각 쓰고 있다. 사실상 ▲네이버클라우드-퓨리오사AI ▲KT클라우드-리벨리온 ▲NHN클라우드-사피온 등으로 협력구도가 삼분된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리벨리온과 사피온 합병이 당장 CSP 3사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해부터 정부가 추진하는 ‘K-클라우드 프로젝트’ 일환으로 이들 기업 모두가 ‘AI 반도체 팜 사업’의 공동 컨소시엄으로 연합전선을 형성해놨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K-클라우드 프로젝트는 국산 AI 반도체로 클라우드 기반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실증 사업으로, 지난해부터 2030년까지 8262억원 규모로 진행된다. 그중 1단계 사업에 해당하는 AI 반도체 팜 구축·실증 사업은 2025년까지 민간 데이터센터와 광주 AI 집적단지에 각각 NPU 팜을 조성하는 게 골자다.
당시 정부는 사업자들의 경쟁 관계가 고착화될 것을 우려해 CSP 2곳 이상과 AI 반도체 기업 2곳 이상씩 포함할 것을 사업 참여 조건으로 내걸었고, 이에 CSP 3사와 팹리스 3사가 기존 협력구도를 깨고 공동 컨소시엄으로 참여를 결정했다. 전략적 투자 관계를 떠나 다양한 NPU 탑재로 인프라 경쟁력을 높이고 국산 AI 반도체도 활성화하자는 대승적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실제 NHN클라우드의 경우 올해 들어 자사 데이터센터에 적용할 국산 NPU 공급사로 사피온에 이어 리벨리온까지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제는 리벨리온과 사피온이 합병하게 됐으니 앞으로 양사 제품 포트폴리오가 어떤 방식으로 통합돼 제공되는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이번 합병 이슈와 별개로 국내 CSP와 AI 반도체 기업간 합종연횡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CSP 관계자는 “AI 반도체도 결국은 여러 업체들 중에서 최종 승자가 나올테지만, 지금은 엔비디아라는 공동의 적이 있는 상황에서 힘을 합쳐야 한다는 위기의식으로 서로가 협력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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