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왕진화 기자] 쿠팡이 사전 고지한 랭킹 산정 기준과 무관하게 자체브랜드(PB) 상품을 상단에 노출한 것이 소비자 기만을 통한 부당한 고객 유인행위라고 판단한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에 착수했던 가운데, 13일 역대급 제재를 내렸다.
이날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쿠팡 및 씨피엘비 위계에 의한 고객 유인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400억원을 부과하고, 쿠팡와 씨피엘비를 각각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조홍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이날 브리핑을 열고 “심의 종료일까지 몇 개월이 남았고, 현재 과징금이 ‘잠정’으로 안내됐기 때문에 추후 상당한 수준으로 어느 정도는 약간 증가될 수밖에 없는 그런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조 부위원장은 “개별 사건 조사를 통해 확인된 쿠팡의 검색순위 알고리즘을 조사하고, 그다음 임직원을 유용한 후기 작성과 별점을 부여한 것이 공정거래법상 문제되는 위계에 의한 고객 유인에 법리상 해당이 되기 때문에 공정위가 제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따라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PB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제한된다거나 물가에 악영향을 준다는 거는 전혀 사실이 아니고, 정반대라고 생각한다”며 “오히려 이번 조치를 계기로 해서 소비자들은 보다 저렴하고 품질이 우수한 상품을 상대적으로 합리적으로 구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같은 결과를 쿠팡은 받아들일 수 없는 분위기다. PB상품 매출 비중이 30%인 대형마트는 놔두고 매출 비중 5% 차지하는 쿠팡 PB만 이중잣대로 규제하고 있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특히 쿠팡은 전원회의에서 쿠팡이 사용자 선호도(customer benefit)과 경험을 고려해, 상위 노출 프로모션을 실시했다는 다수 증거들(프로모션 적용 기준)을 제시했지만, 이를 공정위가 외면했다고 보고 있다.
◆“유통업계 고유권한이자, 같은 관행 이뤄져…쿠팡 제재는 역차별”=일부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공정위 시정명령이 불명확하면서도 매우 포괄적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시정명령은 행위중지명령, 행위금지명령, 위반사실 통지명령을 뜻한다. 이를 놓고 사실상 쿠팡의 상품노출 행위를 금지하는 셈이나 마찬가지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쿠팡은 수백만개 직매입 상품과 PB상품을 취급하고 있다. 공정위 주문은 이들 상품에 각각의 노출 기준을 모두 명기하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노출을 중단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이폰 신제품을 노출하기 위해서는 ‘이 제품은 최근에 출시된 신제품이기 때문에 우선 노출한다’는 조건을 반드시 명기해야 하고, 여름철 수박을 우선 노출하기 위해서는 ‘날씨가 더워져 수박을 찾는 고객들이 많아져 우선 노출한다’ 는 조건을 명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어떤 온라인 유통업체도 ‘아이폰’이라고 치면 정품 아이폰 신제품이 먼저 나오기 마련이다. 소비자는 쿠팡에 아이폰 추천을 기대하고 오는데 아이폰 먼저 보여주는 게 기망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이는 불가능한 조치이기도 하다. 결국 쿠팡을 포함한 유통사의 ‘상품진열’ 자유를 막고 규제하는 것이란 목소리의 근거로 꼽힌다.
또한, 쿠팡은 단순한 중개자가 아닌 ‘온라인 리테일러’다.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직접 매입하고 이를 경쟁력 있는 가격과 서비스로 판매하는 것이 리테일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 리테일 시장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으며, 쿠팡의 리테일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4% 수준이다.
국내 리테일 기업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고객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고, 상품진열은 고객이 상품을 마주하는 첫 단계로 고객 상품선택에 있어 중요한 포인트다. 공정위 규제는 쿠팡이 리테일러로서 역할을 할 수 없도록 막는 것이며, 결국에는 사실상 리테일 서비스 로켓배송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란 지적이다.
박정은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정위 판단은 사실상 소비자 혜택을 고려하지 않은 국내 유통산업 발전에 역행하는 규제”라며 “상품 진열은 유통업체의 고유 권한이자 근간으로 전 세계적으로 정부에서 상품 진열 순서를 가지고 규제한 적은 없다. 중요한 시점에 중국 커머스에게 기회를 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소비자들, 공정위 주장대로 ‘보인 순서’부터 살까? 조사 결과 ‘NO’=공정위는 검색 순위가 높을수록 노출이나 판매량이 높고 이는 인위적으로 이뤄진 것이라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은 쿠팡뿐만 아니라 다른 이커머스들을 포함해 업체 추천에만 의존해 사지 않는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공정위 산하기관인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4월 진행한 설문조사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전국 성인 남녀(20~60대) 1만5000명에게 물어본 결과, 소비자의 71%는 ‘제품을 구매하기 전 정보를 검색하고 수집한다’고 답했다. 눈에 보이는 순서대로 사지 않는 것은 소비자원도 확인한 내용이다.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가 지난해 최근 1개월 이내 온라인 쇼핑 구매를 한 전국 20~59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쇼핑몰에서의 구매행태와 PB상품에 대한 소비자 인식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쇼핑 소비자 10명 중 8명이 특정 쇼핑몰이 가장 상위에 추천하는 상품일지라도 바로 구매하지 않았다. 응답자의 79.7%는 “상위 순위에 의존하지 않고, 비교하고 구매한다”고 구매했다.
또한, 쿠팡 측은 임직원 상품평만으로 검색 순위가 올라갔다는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공정위는 각 상품에 있는 임직원 상품평이 순위 상승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쿠팡은 최근 진행된 전원회의에서 전체 PB 상품 리뷰 중 체험단 리뷰 비중은 0.3%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공정위가 내세운 PB상품으로 피해를 봤다는 상품의 상품평은 평균 6756개다. 다만 이중 8개의 임직원 상품평만으로 순위를 끌어올린 과학적, 객관적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공정위는 오프라인 업체가 매출이 최대 4배 상승하고 비중 역시 30%에 달하는 골든존에 PB를 진열하는 것은 외면한 채 쿠팡만을 타깃으로 역차별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 공정위는 이번 사건 전원회의에서 상품진열 규제를 타 유통사 유사 사례에 충분히 적용 가능함을 시사한 바 있으며, 전원회의를 앞두고 진행된 이례적인 기자간담회에서 참여연대도 유사한 사례에 대해 직접 고발할 수 있음을 예고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이번 쿠팡 제재로 똑같은 상품진열 관행을 갖고 있는 거의 모든 타사 이커머스에 대한 규제가 불가피하며, 나아가 유통업계 전반의 ‘진열’이 규제 받을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쿠팡 측은 이날 뉴스룸을 통해 “가격이 싸고 배송이 편리해 많은 국민들의 합리적 선택을 받은 쿠팡의 로켓배송이 소비자 기망이라고 주장하는 공정위의 결정은, 디지털 시대의 스마트한 소비자의 선택권을 무시한 시대착오적이며 혁신에 반하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이어 “전세계 유례없이 ‘상품진열’을 문제삼아 지난해 국내 500대 기업 과징금 총액의 절반을 훌쩍 넘는 과도한 과징금과 형사고발까지 결정한 공정위의 형평 잃은 조치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행정소송을 통해 법원에서 부당함을 적극 소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쿠팡과 공정거래위원회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번 공정위 판단은 한국 유통사 성장에 있어 규제기관의 판단이 산업 발전에 어떠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라며 “공정위의 PB 제재로 결과적으로는 고객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볼 것이며, 국내 기업에 대한 투자 위축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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