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문대찬기자] 국내 게임업계가 연초부터 벌어진 표절 공방으로 들썩이고 있다. 국내 대표 지적재산(IP) 중 하나인 ‘리니지’ 표절 여부를 놓고 엔씨소프트(이하 엔씨)와 레드랩게임즈, 카카오게임즈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모습이다.
엔씨는 리니지 IP 관련으로만 이번이 세 번째 소송인데, 유사한 게임성을 가진 게임이 시장에 범람하자 IP를 보호하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적극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 “리니지W 종합적인 시스템 모방 vs 통상적 게임 디자인”
엔씨는 지난 22일 레드랩게임즈가 개발하고 카카오게임즈가 퍼블리싱하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롬’이 ‘리니지W’의 콘텐츠와 시스템을 다수 모방했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양사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및 부정경쟁행위에 대한 소장(민사)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엔씨는 롬이 글로벌 전장을 앞세운 콘셉트와 더불어 아트와 UI(사용자 인터페이스), 연출 등에서 리니지W의 종합적인 시스템을 무단 도용했다고 주장했다.
롬은 전 세계 이용자가 참여하는 대규모 전장을 핵심 매력으로 내세운 작품으로, 27일 한국을 비롯한 대만, 일본, 태국 등 글로벌 10개 지역 동시 출시를 앞두고 있다.
엔씨 관계자는 “MMORPG 장르가 갖는 공통적, 일반적 특성을 벗어나 창작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엔씨소프트의 IP를 무단 도용하고 표절한 것이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레드랩게임즈는 MMORPG에서 사용하는 통상적인 디자인일 뿐 표절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엔씨가 필요한 부분만 짜깁기해 과장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맞서기도 했다.
레드랩게임즈는 23일 “이미 개발단계에서 게임의 법무 검토를 진행했으며, 일반적인 게임 UI의 범주 내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엔씨가 주장하는 저작권 침해 부분은 오랫동안 전 세계 게임에서 사용해 온 ‘통상적 게임의 디자인’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엔씨가 “롬의 부분적 이미지를 짜깁기해 유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소송 제기 및 그에 대한 과장된 홍보자료 배포 행위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엔씨는 롬이 디자인 등 개별 구성 요소 뿐 아니라 이를 선택·배열·조합한 종합적인 시스템 역시 리니지W와 유사성이 짙다고 거듭 강조했다.
예컨대 롬에는 리니지W의 ‘변신’과 ‘마법인형’에 해당하는 ‘코스튬’과 ‘가디언’이 있다. 해당 장비 등급이 일반-고급-희귀-영웅-전설-신화 등급으로 분류된 점, 동일 등급을 합성해 상위 등급으로 진화 가능한 점 등 성장 콘텐츠 상당수가 닮아있단 것이다.
이밖에 일정 단계까지 장비의 소실 없이 ‘안전 강화’가 가능하고, 일정 단계 이후 확률에 따라 강화 실패 및 아이템 파괴가 가능한 점도 리니지W를 모방했다고 보는 근거다.
◆ 엔씨, 리니지 관련 소송만 세 번째… ‘리니지라이크’에 견제구
엔씨는 리니지와 관련한 표절 소송을 이번으로 세 번째 단행하고 있다. 2021년 웹젠의 ‘R2M’이 ‘리니지M’을 모방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는 엑스엘게임즈가 개발하고 카카오게임즈가 서비스하는 ‘아키에이지워’ 대상으로도 소송을 벌였다.
엔씨의 이러한 행보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엔씨가 리니지 시리즈의 독특한 시스템을 앞세워 국내 시장에서 막대한 매출을 거두자,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게임 업계에선 이를 차용한 이른바 ‘리니지라이크’ 게임이 속속 등장했다. 자연스레 리니지 IP 경쟁력이 약화됐고, 이는 해당 IP 의존도가 높았던 엔씨의 전반적인 성장세 둔화로 이어졌다.
엔씨는 지난해 법원으로부터 R2M이 리니지M의 종합적인 시스템을 모방했다는 판결을 이끌어낸 바 있다. 재판부는 당시 리니지M에 구현된 시스템이 경제적 가치를 지닌 무형의 성과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다면서 R2M의 행위가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R2M의 서비스 자체가 금지된 것은 아니다. 웹젠은 가처분 신청을 통해 관련 서비스를 이어가고 있다. 롬 역시 예정대로 출시 및 서비스가 진행될 예정이다.
엔씨는 서비스 가처분 신청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앞서 넥슨과 아이언메이스간 가처분 신청 기각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법적 판단과는 별개로 법원에서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엔씨가 표절 소송에 적극 나선 건, IP 보호를 위해 던지는 견제구로 풀이된다. 유사한 작품을 준비하는 게임사에 부담을 안기는 일종의 액션인 셈이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강경 대응을 통해 리니지라이크를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업계 성장이 뒷걸음질하면서 향후 IP 가치를 놓고 소송전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게임사들은 최근 법률 전문가를 경영 일선에 배치하고 있는데, 각종 규제 뿐 아니라 빈번해진 IP 분쟁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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