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내노라 하는 이동통신사들이 총출동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모바일월드콩글레스(MWC)에서 올해도 SK텔레콤은 메인홀 중심에서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을 글로벌에 전파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이한 SK텔레콤은 국내 1위 이통사를 넘어, AI 컴퍼니로 또 다른 패러다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과거 40년을 조망해보고 미래 ICT 개척자로서 SK텔레콤의 비전을 살펴봅니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김문기 기자] “우리가 진출하고자 하는 정보통신사업은 SKMS와 SUPEX를 추구하는 선경으로서는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업영역이라고 확신했다.”
故 최종현 SK그룹 회장의 1992년 1월 신년사 발언이다. 이 해는 최종현 회장이 정보통신사업 진출에 대한 의지를 가시적으로 드러낸 때이기는 하지만, 사실 이미 미래 신사업에 대한 준비를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었다.
선경그룹(현 SK그룹)은 1975년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를 목표로 1980년 11월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다음 단계로의 진화를 위해 장기경영을 목표로 ‘정보통신사업’을 낙점했다. 즉, 체신부가 한국전기통신공사의 공사화 이전부터 선경그룹 내부적으로 정보통신사업에 대한 목표가 세워졌던 셈이다. 물론, 국영 독점화된 정보통신 시장에서 선경이 당장 성과를 낼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위한 투자를 단행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우선 국내 열악한 정보통신 기술을 습득해야 했다. 선경그룹은 1984년 1월 미주 경영기획실에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발족시켰다. 선진국인 미국에서 기술을 경험해보겠다는 취지였다. 이 곳은 당시 최태원 SK 회장이 있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SK 50년사에서도 최태원 회장이 직접 회상한 당시 상황이 묘사돼 있다.
그는 “당시 미국에서는 AT&T와 같은 회사들의 분할이 진행되고 있었고 셀룰러폰이 나오기 시작하던 때였다. 지금처럼 이렇게 성장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지만 꽤 유망해 보였고 리스크도 적어 보였다. 또한 선경그룹이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해서 이동전화를 초석으로 깔고 상황을 봐서 사업을 확대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회장(최종현 회장)께 드렸다. 그 이후로 미국 이동전화회사에 투자를 하고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선진국의 기술 경험을 바탕으로 선경그룹은 1989년 10월 24일 미국 뉴저지 주에 현지법인인 유크로닉스를 설립했다. 국내의 경우 선경은 유공과 함께 이 해부터 독자 추진하던 정보통신 관련 사업팀을 그룹차원에서 경영기획실 산하 사업개발팀에 통합시켰다. 뒤 이어, 1990년 5월 선경정보시스템을 세우고 같은해 10월 YC&C를 출범시켰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1991년 4월 선경텔레콤으로 모든 역량을 집중시켰다.
준비된 자에게 온 기회
‘비자득기(備者得機)’.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사자성어답게 선경그룹에게도 다시 없을 기회가 찾아왔다.
체신부는 1990년 7월 통신사업구조조정안을 내놓고 제2이동통신사업자를 선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영 독점구조를 민간 경쟁구조로 바꾸겠다는 정부 정책방향에 따라 민간에게 기회가 열린 셈이다.
그리고 마침내 1992년 4월 14일 체신부가 제2이동통신사업자 신규허가 신청공고를 냈다. 선경그룹은 기회를 놓칠리 없었다. 다만, 경쟁양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포항제철과 효성, 쌍용, 대한한공, 일진, 맥슨전자, 코오롱, 태일전자 등 8개 업체가 물망에 올랐으나 결과적으로 포철과 쌍용, 코오롱, 동부, 동양 등 6개 그룹 경쟁으로 압축됐다.
선경그룹은 이미 선경텔레콤으로 정보통신 역량을 집중한 상황. 이를 전신으로 별도 회사인 대한텔레콤을 설립하고 컨소시엄명으로 확정했다. 선경텔레콤과 유공해운을 겸임하고 있는 손길승 SK그룹경영기획실장을 총괄로 임명했다. 게다가 정부기관임과 동시에 막대한 자금력, 전국 광전송망을 갖춘 한국전력과 손을 잡았다. 럭키금성(현 LG)의 경우 부산투자금융을 통해 선경에 합류했다. 외국 기술기업의 경우 최종적으로 미국 GTE와 영국 보다폰, 홍콩 허치슨이 컨소시엄에 합류하면서 명실상부 최적의 구성을 갖추는데 성공했다.
최선의 전열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경쟁양상은 나날히 치열해졌다. 분위기가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극심한 과열 때문에 6개 그룹의 사장과 부사장급 이동통신 관련 본부장이 뉴서울골프장에 모여 골프회동을 벌일 정도였다. 과열 분위기를 식히고 공정한 경쟁에 나서자는 모임이었다.
게다가 실제 공모가 시작될 6월 26일 이틀전인 24일 늦은 오후에는 6대 그룹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도 했다. 마치 월드컵 조추첨에 나선듯 ‘순서뽑기’를 위해서였다. 정부 사업공모에 내놔라하는 재벌가 대표들이 1번부터 6번까지 표를 뽑는 진풍경이 연출된 것. 그만큼 극도의 예민한 상황이었음을 반증한다.
또한 특혜시비까지 불거졌다. 최종현 회장의 경우 당시 故 노태우 대통령의 사돈지간이라는 점, 포항제철의 경우 박태준 회장이 집권당 최고위원이라는 점, 코오롱그룹 회장은 정계 유명인사인 당시 故 김종필 민자당 최고위원과 사돈관계에 있다는 점들 때문에 계속해서 많은 설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게 됐다.
이같은 대내외적 어려움에 선경은 ‘진정성’으로 돌파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미 정보통신사업 진출을 위한 준비를 과거부터 해온 저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조치였다. 이같은 결정은 1992년 1월호인 선경그룹 사보 ‘선경’에서 그 배경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최종현 회장은 “‘석유에서 섬유까지’의 수직계열화 완성이 가시화될 즈음인 10여 년 전부터 앞으로 어떤 사업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심사숙고해 왔다”라며, “새로운 사업이라고 해서 아무 업종에나 진출할 수는 없다. 더구나 남들이 하니까 한다는 식은 곤란하다”고 언급했다.
이어, “당시 각광을 받던 가전업계나 자동차 업계의 진출도 고려한 적이 없지는 않지만 이들 분야는 이미 충분한 경쟁체제가 이루어져 있어 기존 업체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하고 국가적으로도 낭비를 초래할 소지가 있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이에 따라 “기존업체와의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고 국가산업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분야를 우선적으로 생각했고 급속히 진전되고 있는 글로벌리제이션 시대에서의 성장 가능성도 고려했다. 이런 분야들 중 정보통신사업을 다음 사업영역으로 선정해 그룹의 중점사업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보통신 분야에서도 하드웨어 부문은 기존의 전자업체가 이미 진출해 있거나 진출이 용이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우리가 경쟁우위를 확보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서, 우선 새로운 분야이며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고 경쟁에서 비교우위의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서비스 및 소프트웨어 부문을 중심으로 가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경, 제2이통사 품다
진정성은 곧 결과로 이어졌다. 6월 26일 접수가 완료된 제2이동통신사업자 공모 결과가 7월 29일 발표된 것. 1차 발표에 생존한 컨소시엄은 신세기통신(포항제철), 제2이동통신(코오롱)과 함께 대한텔레콤(선경)이 이름을 올렸다. 특히 대한텔레콤은 총점 8127점으로, 2위 제2이동통신 7783점, 신세기통신 7711점 대비 큰 격차로 따돌렸다.
손길승 대한텔레콤 대표는 “정부시책에 부응할 수 있는 최상의 사업계획서 작성을 위해 노력했다. 무더운 날씨에도 성의껏 평가에 힘써준 각계 인사들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며 이동통신팀 모든 임직원에게에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8월 20일 체신부가 최종 선정된 컨소시엄을 발표했다. 이 날은 선경이 제2이동통신사업자에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최종현 선경 회장은 20일 서울 여의도 유공빌딩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한텔레콤이 이동통신사업으로 버는 이익은 국민주 형식 등을 빌려 최대한 국민에게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유공이 공개법인으로 이익을 환원하는 게 어렵다면 최 회장이 사재를 털어서라도 갚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세간에서 지적한 특혜 의혹 역시 진정성을 나타낼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굳은 각오였다.
2차 심사결과는 대한텔레콤 8388점. 신세기이동통신 7496점, 제2이동통신 7099점 순으로 역시나 그 격차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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