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백승은 기자] #집 안에 한 남성이 앉아 있다. 곁에 둔 고글 모양의 헤드셋을 머리에 착용하자, 실내 풍경 위로 각종 애플리케이션(앱)이 떠오른다. 스마트폰이나 PC 화면과 차이점은 디지털 콘텐츠와 물리적 공간이 함께 구성된다는 것이다. 눈앞에 나타난 화면은 마치 실제 물체처럼 그림자까지 구현된다. 그러면서도 30미터(m) 화면까지 나타낼 수 있어 공간 제약도 없앴다.
지난 6월 애플이 공개한 ‘비전 프로’의 모습이다. 애플은 내년 상반기 이 제품을 출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전자 및 정보기술(IT)업계는 애플의 시장 진입으로 멀게만 느껴지던 확장현실(XR) 세계가 코앞으로 다가왔다고 본다. XR 및 XR 기기는 스마트폰을 대신할 것으로 전망되는 대표적인 미래 먹거리 중 하나다. 제조업에 강한 한국 기업들이 XR 시장에 맞는 기술력을 갖추고 각종 합종연횡을 통해 시장을 우선 주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XR 디스플레이 산업 협의체 위원장을 담당하고 있는 백우성 셀코스 대표는 지난달 27일 <디지털데일리>와의 만남에서 “어지럼증 없이 몇 시간이고 기기를 착용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고도화된다면, 사실상 스마트폰도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가상 공간에서 소통할 수 있고, 쇼핑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가격만 비싸지 않다면 수요가 상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XR은 주로 머리에 쓰는 헤드셋을 이용해 가상현실(VR)인 메타버스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VR 외에도 현실 세계에 가상의 물질을 덧씌운 증강현실(AR)도 포함된다.
가장 대표적인 영역은 게임이다. 모니터에서 평면적으로만 게임을 접했다면 이제는 화살이 곁으로 날아오는 모습까지 볼 수 있는 것. 화상 회의나 실시간 번역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헤드셋처럼 착용하는 형태를 넘어서 차량용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앞 유리를 증강현실(AR)로 구현한 헤드업 디스플레이(HUD)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말에는 현대모비스가 AR HUD 기술을 시연하기도 했다.
백 대표는 “AR을 활용하면 외부를 볼 수 있으면서도 필요한 정보가 알맞게 등장해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특히 자동차에 접목하면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가능성 있는 영역은 항공이다. 비행기를 탔을 때 모니터 대신 헤드셋을 통해 영화를 보는 식이다”라고 덧붙였다.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나, 현재 XR 기기는 미완성 단계다.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비전 프로의 출고가는 3500달러, 한화로 450만원에 달한다. 백 대표는 “지금 등장한 비전 프로는 모터쇼에서 나오는 ‘콘셉트 카’와 같다. 실제 XR 기기가 대중화되려면 3년은 걸릴 것”이라고 봤다.
XR의 핵심 기술은 디스플레이다. 디스플레이를 얼마나 가볍게 만드느냐에 따라 착용 가능 시간이 결정되고, 성능도 좌지우지된다. 백 대표는 “AR과 VR을 모두 구현하고, 한 번에 2~3시간 착용하고 활동해도 불편함이 없는 수준까지 기술력을 올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디스플레이 자체 기술력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와 제조사, 소부장 기업 등 민관이 함께 XR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경쟁력을 쌓기 위해 타국은 이미 지원책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다. 특히 중국 정부는 이미 지난해 11월 오는 2026년까지 가상현실(VR) 기기를 2500만대 생산하고 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100개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내걸기도 했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역시 지난해 12월 XR 디스플레이 산업 협의체를 구성하고 대응에 나섰다. 디스플레이 기업과 소재·부품·장비 및 광학·시스템 기업 18곳이 우선 모였다.
백 대표는 “한국은 디스플레이 강국으로 꼽히는데도 XR을 구현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XR이 대중화되기 전 국내 기업이 힘을 합쳐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협의체가 만들어졌다”라며 협의체 구성에 대해 설명했다.
협의체에 더해 최근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는 성남시와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한국팹리스산업협회와 손잡고 ‘반도체 팹리스 얼라이언스’를 체결하고 XR 생태계 구축에 집중하는 중이다.
백 대표는 “한국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제조업 분야에서 많은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세밀한 부분으로 들어갔을 때 부족함이 드러난다. 디스플레이 전문가 숫자도 적고, 고부가 디스플레이를 제작할 수 있는 장비 등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정부가 기술 개발 로드맵을 제시하고, 깊게 고민한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와 함께 대기업이 길잡이 역할을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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