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제조분야의 산업적 가치가 중요해졌고, 그에 따라 소재·부품·장비(소부장)산업에 대한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미중 패권경쟁에 따른 아시아 지역의 변화와 유럽연합(EU)의 적극적인 공세로 인해 우리나라는 제품만 생산해 내는 위탁국가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해외 정세에도 흔들림 없는 K제조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물밑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소부장 강소기업 육성을 통한 경쟁력 제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부장 미래포럼>은 <소부장 TF>를 통해 이같은 현실을 직시하고 총체적 시각을 통해 우리나라 소부장의 과거를 살피고 현재를 점검하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숙제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우리 정부가 미국, 중국, 유럽의 첨단기술산업 육성 경쟁에 발맞춰 대응안으로 내놓은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선정이 심사 막바지에 이르렀다.
배터리 특화단지는 ▲충북 오창 ▲경북 포항·상주 ▲울산광역시 ▲전북 새만금 등 총 5개 지역이 공모에 참여했다. 이미 선정지역의 윤곽이 보이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부문과 달리 배터리 특화단지는 아직도 최종 선정지로 어느 지역이 꼽힐지 오리무중인 상황이다. 그만큼 각 지역별 특색과 강점이 뚜렷하며, 지자체간 유치 경쟁도 치열하다.
특히 배터리 산업이 반도체에 이은 한국의 차세대 첨단기술분야 주력 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만큼, 첫 배터리 특화단지 지정에 대한 상징성 또한 크다. 지역 입장에선 향후 수십년간 지역을 대표할 신성장 동력 확보, 중장기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 등 기대효과가 크다.
오창은 한국 배터리 제조사 중 세계 시장 점유율 1~2위를 오가는 LG에너지솔루션의 마더팩토리가 위치한 지역이다. 모회사 LG화학도 오창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으며 고품질 양극재를 생산한다. 글로벌 주요 양극재 제조사로 꼽히는 에코프로 그룹의 연구개발 거점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주요 장비·부품업체인 엔에스, 더블유스코프, 케이에스엠메탈스 등이 오창에 투자하거나 계획을 앞두고 있다. 충북 전체로 넓히면 배터리 모듈과 팩, 배터리 제어부품, 고체전해질 제조사 등 배터리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기업들이 충북과 오창 전반에 있다. 특히 오창은 이미 2차전지 소부장 특화단지로 지정된 바 있다. 그럼에도 기술 초격차 확보과 글로벌 경쟁력 제고 차원에선 특화단지 지정을 통한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단 입장이다.
울산은 다른 경쟁 지자체들 대비 완성도 높은 인프라가 강점으로 꼽힌다. 국내 주요 공업도시답게 전력 공급, 폐수 처리 등 대단위 생산공장이 들어설 때 필수적인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충분히 준비돼 있다.
이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기업이 국내외 투자처를 물색할 때 인프라 수준과 지원 여부를 중요하게 판단한다는 점, 이것이 실제 투자 후 준공과 가동에 이르기까지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충분한 지역 강점으로 분류된다. 울산 내 기업으론 글로벌 배터리 제조사인 삼성SDI가 있으며 주요 소재, 산학 연구기관과의 연계 구조가 치밀하게 짜인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전북 새만금은 국내 최대 간척지로 ‘땅부자’로 통한다. 새만금개발청이 별도로 존재할만큼 이미 정부의 관심과 지원, 체계적인 관리 조직이 있는 지역이며 광활한 대지를 무기삼아 최근 2차전지 기업들이 신규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다. 기존 경쟁지역들이 이미 조성된 산단, 개발제한구역 등으로 인해 대지 확보가 어렵고 비싼 땅값이 문제가 되는 반면 새만금은 이 점에서 자유롭다.
향후 배터리산업 성장에 따른 생산능력 확대 측면을 고려할 때도 새만금의 확장성은 강점으로 꼽힌다. 중장기적으론 새만금산단을 중심으로 항만과 항공, 도로 등이 새롭게 조성되고 있어 교통과 물류 측면에서도 편의를 기대할 수 있다.
상주는 경쟁 지자체들 대비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작다. 교통편이 용이하고 국내에서 보기 드문 배터리 음극재 특화지역이란 점에서 차별점은 있다. 관련해 SK머티리얼즈와 미국14테크놀로지스 합작사인 SK머티리얼즈그룹포틴이 1조원을 상주 청리일반산업단지에 투자해 만들어진 생산 공장이에서 올해 하반기 실리콘 음극재 생산이 시작될 예정이다. 또 상주시는 청리산단과 인근 지역인 공성면 용안리, 평천리 등에 200만㎡의 2차전지 전용 클러스터를 조성해 산·학·연 협력 생태계를 만들겠단 계획이다.
포항은 배터리 특화단지 지정에 가장 적극적인 지자체로 분류된다. 경쟁력도 충분하다. 배터리 완제품 제조사는 없지만 포항에는 국내 철강·소재사업의 강자인 포스코그룹이 있다. 포스코 계열 양극재 자회사인 포스코퓨처엠은 국내에서 양·음극재 동시 생산이 가능한 유일한 기업이다. 또다른 글로벌 양극재 제조사 에코프로도 그룹 내 주요 배터리 생태계 자회사들을 포항에 수직계열화한 형태로 구축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의 차세대 시장인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들도 다수 포진한 만큼 시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과 지역 내 연계 전략을 핵심 비전으로 내세운 모습이다.
한편 ‘잡음’도 있었다. 배터리 특화단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존 계획과 달리 복수지역이 클러스터 형태로 선정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다. 특히 포항과 울산광역시를 묶는 초광역권 클러스터 선정 가능성을 두고 지자체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많은 상황이다. 울산은 배터리 특화, 포항은 양극재 특화로 신청한 가운데 하나의 클러스터로 묶는 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효율적인 공생이 될지, 선택과 집중을 저해하는 판단이 될지는 예단이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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