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경북 울산시 소재 대학, 연구기관들의 차세대 전기차(EV) 및 2차전지(배터리) 대응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단순한 기술 연구, 기업과의 협업 수준에서 나아가 실제 현장과 견줘도 모자라지 않은 수준의 인프라 개선이 진행 중이다. 울산시도 이를 적극 지원하고 있는 가운데, 시내 배터리 소재·기술개발 및 유망 기업 지원, 인력양성 등 다각적인 경쟁력 제고에 속도가 붙은 모습이다.
<디지털데일리>는 지난 13일 울산에 방문해 울산과학기술원(UNIST, 유니스트),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기연), 울산테크노파크(UTP) 등 시내 첨단기술 연구기지를 둘러봤다. 기업과 달리 ‘이론에만 강할 것’이란 기존 학계나 연구계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는 경험이었다.
◆ 국내 대학가 최고 수준의 배터리 연구시설·인력 갖춘 UNIST
유니스트는 2014년 교내 111동에 2차전지 산학연구센터를 마련하고 현재 ‘배터리 R&D센터’란 이름으로 운영 중이다. 배터리 분야 전문 교수진만 8명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다. 연구실당 대학원생 수도 10명~20명 규모로 일반적인 대학 연구실과 비교하면 서너배 크다. 2차전지 연구에 대한 유니스트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보유한 전문연구 시설도 국내 대학 중 가장 앞선다. 특히 타 대학에서 찾아보기 힘든 대규모 ‘드라이룸(Dry room)’을 갖추고, 최근 이를 고도화하고 있다. 드라이룸은 습도에 민감한 2차전지 주요 소재들의 연구개발과 생산 과정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고안된 저습도 청정공간이다.
현재 가동 중인 기존 2차전지 연구용 드라이룸을 비롯해, 전고체전지를 비롯한 차세대 배터리 연구를 위한 드라이룸, 2차전지 고도분석 지원 드라이룸 등 총 3개의 실로 구성된다. 차세대, 고도분석실은 현재 부지 정리와 장비 도입 등이 순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해당 사업은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가 공모한 ‘2022년도 차세대 2차전지 상용화 지원센터 구축사업’에 울산시가 최종 선정돼 확보한 국비가 투입된 건이다.
실제 둘러본 일반 드라이룸 내부는 여타 연구실과 비슷해 보이지만 이름에 걸맞게 공기 중 수분이 1% 미만으로 관리되는 특수공간이다. 이곳에선 기본적인 수준의 2차전지를 실제 제조할 수 있는 장비를 보유하고 다양한 연구와 실험이 진행된다.
이어 차세대 2차전지 연구용 드라이룸은 연내 착공이 이뤄진다. 마찬가지로 2차전지를 직접 제조하고 평가할 수 있는 시설들이 갖춰지며 전고체전지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전고체전지는 기존 액체전해질을 고체화해 화재 위험이 낮고 에너지 밀도는 높일 수 있는 ‘꿈의 배터리’로 분류된다. 고도의 기술력과 연구시설이 필요한 만큼 유니스트가 이를 지원할 계획이다.
고도분석실에서는 대당 10억원을 호가하는 첨단 장비들이 투입된다. 차세대 전지 연구 결과물에서 확인 가능한 다양한 현상들을 분석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유니스트 관계자에 따르면 이는 민간 대기업 연구실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다.
고도분석실이 갖추게 될 강점은 ‘비파괴 검사’ 기술이다. 완성되거나 실제 사용 상태에 있는 2차전지를 해체하거나 자르지 않아도 검사 장비에 직접 물려 다양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유니스트는 2차전지에 대한 평가와 테스트, 분석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다. 보통 평가 단계가 끝난 후 분석이 이뤄지는 만큼 연구 효율이 큰 폭으로 개선될 것이 기대된다.
동시에 유니스트는 대학 본연의 기능에 맞춰 연구활동에도 매진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내 최다 규모의 연구진을 갖추고 동시에 인력 양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급 연구실을 갖추는 것보다 이를 다루고, 분석할 수 있는 고급인력 양성 또한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사업 종료 후에는 2단계 사업으로 연구 중심형, 실무 중심형 인재로 나눠 집중 육성하는 사업이 이어질 예정이다.
◆ 차세대 배터리 대규모 원스톱 지원센터 짓는 '에기연'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기연) ‘울산 차세대 전지 연구개발센터’의 인상은 유니스트와 비슷한 듯 달랐다. 보다 규모가 크고 정돈된 드라이룸 등의 연구시설, ‘탄소중립형 2차전지 건식극판 연속시 제조설비’ 등 구체화된 연구과제를 운영 중이었다. 기초 연구단계를 넘어 기업이 개발한 소재의 소량 샘플 생산을 지원하는 연구용 설비도 갖추고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끈 건 에기연 3층 대형 공간에 들어설 차세대 2차전지 연구시설이다. 아직 본격적인 설비와 공사가 이뤄지기 전이지만, 이날 현장에서 본 어떤 연구시설보다 큰 규모로 만들어질 것이 예견됐다. 이 시설 역시 울산시 2차전지 상용화 지원센터 구축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다.
완성 직후에는 2차전지 소재 합성부터 전극 제조, 완성된 셀을 평가하는 전 과정이 한 공간 안에서 이뤄진다. 더불어 대기 중에서 할 수 없는 정밀분석 공간 등을 두루 갖춘 원스톱 지원센터가 된다. 주요 연구대상은 전고체전지와 리튬메탈전지 등 차세대 2차전지다.
에기연에 따르면 차세대로 분류되는 2차전지 제조 공정은 아직 구체적인 공정이나 콘셉트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에기연에서도 차세대 2차전지 중심의 신규 지원센터를 구성하는 데 있어 많은 고민과 논의가 따르고 있는 대목이다. 다만 성공적으로 완공될 경우 관련 공정 연구와 테스트 등을 원스톱으로 실행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지원센터가 될 전망이다.
에기연의 계획대로라면 지원센터의 정식 오픈은 2025년이다. 그러나 연내, 혹은 내년 초까지 주요 장비가 갖춰지고 시운전이 시작되면 기업과의 실제 협업이 가능한 수준의 가동도 가능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또한 유니스트와 달리 기업이 직접 지원센터 공간을 빌려 보안을 유지하면서 셀을 제작하고 분석해 볼 기회도 제공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드는 것도 에기연의 숙제 중 하나로 고민되고 있다.
◆ 시험 제조부터 실증까지...배터리 기업과 직접 일하는 'UTP'
UTP는 전국 19개 지역에 위치한 ‘테크노파크(TP)’ 울산지부다. TP는 지역 내 산·학·연과 유기적인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지역 실정과 특성에 맞는 산업발전 전략을 모색하는 거점기관이다. 특히 기업지원 프로그램에 강점이 있으며 UTP는 전국 주요 TP 가운데서도 가동률 85% 이상으로 가장 활발하게 운영 중인 곳이다. 전지 분야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갖춘 전문가들이 시비와 국비 등으로 지원된 첨단 장비를 토대로 실제 효용성 높은 기업지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UTP는 원래 소형전지에 특화된 곳이다. 그러나 최근 기업과 시장 수요에 발맞춰 중대형 전지 실증 지원을 위한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관련해 눈에 띄는 변화는 UTP 부지에 건설 중인 전기차용 각형 배터리 제조평가 시설이다. 실제 삼성SDI가 시제품을 실증하는 파일럿 장비와 동일한 장비를 구입해 실효성 높은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2024년 말 장비 도입 등이 완료된다.
또한 주요 제조기업들과 긴밀한 연결고리를 마련해 소재 기업들이 완제품 제조사로부터 실증을 받는데 걸리는 기간을 대폭 단축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실제로 UTP 내에는 과거 실제 스마트폰에 탑재된 소형 배터리 제조공정 설비를 비롯, 사용이 끝난 전기차용 폐배터리의 잔존 수명 등의 데이터를 연구하는 시설도 갖춰져 있었다. 이를 통해 고가의 실증 시설을 갖추기 어려운 중소업체의 실증을 대신하고 피드백 해주는 일도 진행되고 있다.
◆ 배터리 인프라 A to Z 한 곳에... 역시 '공업도시 울산'
이밖에도 울산시에는 국내 대표 완성차 제조사인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배터리 제조사 삼성SDI, 고려아연과 이수스페셜티케미컬 등 관련 소부장 분야의 여러 강소기업들이 자리잡고 있다. 탄탄한 기업 생태계와 함께 유니스트, 에기연, UTP 등 학교와 연구 및 실증 기관들의 역량도 위와 같이 독보적이다. 이들의 촘촘한 연계를 통해 가장 밑단의 기초연구부터 ▲인력양성 ▲기술연구 ▲완제품 개발과 실증에 이르는 산업 인프라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있다. 첨단 하이테크 도시를 꿈꾸는 공업도시 울산의 2023년 현주소였다.
한편 이달 말 ‘배터리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최종 선정을 앞두고 울산시도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그간 경쟁 지역들 대비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실전 특화단지 운영에 중요한 인프라를 두루 갖춘 울산의 ‘뒷심’ 또한 주목할 만한 관전 요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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